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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스마트

무표정한 사마리아인

김상순 변호사(서울종합법무법인)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선(善)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모 교수님의 형법학원론 교과서를 법대 재학시절에 읽던 때였다.

"우리 형법은 '선(善)한 사마리아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일반적 보호의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보호의무 없는 자가 요부조자(要扶助者)를 돕지 않더라도 유기죄(遺棄罪)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구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뭐지? 사마리아인들은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건가?' 잠깐 머리 속으로 몇 가지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사법시험 형법 기초문제로 꼽히는, '물에 빠진 내 아들을 구하지 않은 경우와 옆 집 아들을 구하지 않은 경우의 각 형사상 죄책'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간 단어였다.

그리고 십년여가 지난 어느 시점에 이를 반어적으로 제목지은 어느 경제학자의 저서가 인기를 끌면서 다시 등장하기는 하였던 것 같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사진기는 폰카라는 이름으로 전화기 속으로 들어왔고, 심지어는 캠코더까지도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뿐인가. 즉석에서 동영상을 편집하여 인터넷에 게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패러디 동영상이 넘쳐나더니 이제는 각종 폭로동영상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때 지하철 안에서 어르신들을 향하여 반말과 욕설을 해대는 여대생에 대한 동영상, 동물을 심하게 학대하는 사람에 대한 동영상 등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동영상들을 본 후 5분쯤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촬영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찍는 대신 말리거나 따끔한 훈계를 할 생각은 못했던 것일까' 말 못할 여러 사정들이 있었으리라 선해(善解) 못할 바 아니다.
다만, 가끔씩은 무표정한 사마리아인 말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지하철 안에서 만나고 싶다.

@bizzaz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