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위상이 커지면 책임도 크다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매년 12월 중순이 다가오면 유엔본부는 그 해 유엔총회 일정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여유로운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런데 심야까지 유엔본부 회의실에 불을 밝히고 긴장감 속에 회의가 계속되는 곳이 있다. 유엔 전체의 예산과 행정을 맡고 있는 총회 산하의 5위원회가 바로 그 곳이다.

유엔 사무국, 기타 유엔 기관들, 평화유지활동, 기금 및 프로그램의 연간 예산을 회원국 간의 논의를 거쳐 심의하고 최종 결정하게 된다. 대략 이러한 부분을 모두 합하여 연간 120억 달러의 규모에 달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4조원이 조금 넘는다. 특히 3년마다 유엔 예산의 규모와 성격을 결정하게 되어 회원국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엔의 예산은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충당된다. 회원국의 분담금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첫째 사무국과 관련 기구의 소요 경비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정규 분담금'이 있고, 둘째 평화유지활동과 관련되어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평화유지활동(PKO) 분담금'이 있으며, 셋째 유엔아동기금(UNICEF) 또는 세계식량프로그램(WFP) 등과 같이 유엔의 특정 프로그램이나 기관에 대한 '자발적 기여금(voluntary contribution)'이 있다. 정규 예산은 2010년, 2011년분을 합하여 52억 달러, 평화유지활동 예산이 73억 달러, 구유고와 르완다 전범재판소를 위한 예산이 5억4,000만 달러 정도이다. 그 합계를 내보면, 유엔의 연간 예산이 대략 120억 달러에 이른다. 그 이외에 특별 분담금이 있는데, 뉴욕 유엔본부의 리노베이트 공사로 소요되는 1,900억 달러와 같이 임시로 소요되는 유엔 예산을 회원국들이 충당하게 된다.

유엔의 각 회원국이 내야하는 정규 및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분담금을 산출하는 방식은 세계 경제에서 회원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하게 된다. 다만, 인구가 많아 1인당 국민소득이 낮거나 외채의 비율이 높은 경우에는 그 부담을 줄여주게 된다. 평화유지활동 분담금의 배정은 추가적인 조정을 거치게 되는데, 우선 5개의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정규 분담금의 비율에다 약 25%의 초과 부담을 하게 되며 최빈국(least-developed countries)의 경우에는 정규 분담금의 10% 정도만을 부담하도록 한다.

2008년도 기준으로 미국의 분담금이 전체 정규 예산의 22%를 차지하는 반면, 아직 중국은 3.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목한 점은 일본이 경기 침체 등으로 2000년 이래 계속하여 그 비율이 감소하고 있으며, 중국은 아직 총액은 적지만 가파른 속도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안보리 개혁 등의 이슈에서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유엔에서 기존의 경제력을 토대로 한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이다.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은 유엔 분담금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른바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경제적, 정치적 격차로 인한 '남북문제'가 유엔에서도 심각하다. 2008년 기준으로 유엔 정규 분담금은 미국 22%, 일본 19%,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캐나다가 32%를 부담하여 주요 선진국들이 4분의 3을 내고 있다. 그런데, 130여개 개도국 그룹인 'G77'은 전체 분담금의 15%도 내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내는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개도국들은 유엔이 개혁을 빌미로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과 예산을 조정하고 선진국들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워런 세이치 유엔 사무차장보가 유엔의 가장 큰 숙제를 선진국과 개도국 회원국간의 이해관계 충돌이라고 지적했다. "192개 회원국이 있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다양한 지역그룹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유엔은 전 세계에 조직이 퍼져 있고 지역마다 상황이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사무총장이 회원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여 끌고 갈 수도 없고, 결국 전체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끊임없는 논의와 협상이 필요하다" 앞으로 유엔이 풀어가야 할 과제인 셈이다.

"위상이 커지면 그만큼 책임이 크다" 이제 우리나라도 유엔 분담금을 세계 상위 10위권 수준으로 내고 있다. 유엔 회원국이 192개국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상위권이다. 정규예산의 2%대이기는 하나, 실제로 기존 서구의 선진국을 제외하면 멕시코와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눈에 띈다. 더구나 앞으로 우리의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일본의 경우, 2차 대전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토대로 유엔재정을 미국과 함께 책임지는 주요국이 되었다. 2008년까지 미국과 일본의 일반 예산 분담금이 전체의 40%를 넘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의 모임인 'G7'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며 많은 돈을 개도국에 원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어떨까? 유엔에서 지켜보건대, 일본이 과연 재정적 기여 수준에 걸맞는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위상이 커지고 그에 따라 재정적 기여가 확대된 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분담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고 어깨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곳에서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헌신하는 역할을 나누어 맡아야 한다. "인류에 대한 기여(contribution to humankind)"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리더가 되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세계의 평화와 안전, 인권 보호, 기아와 가난의 해결, 기후변화 등 인류 앞에 주어진 과제가 우리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