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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변호사 20년

김일두 변호사(서울) - 제3000호

변호사 간판을 건지 10년이 되었을 때 「辯護士 10年」이란 글을 써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되어 이 글을 쓰는 날이 변호사 개업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변호사 20년이라 하여도 백로 변호사가 될 때까지는 아직도 10년이나 더 남았으므로 20년이 자랑거리도 될 수 없고, 자축할 일도 못되는 것이나 나로서는 검사 30년과 합하면 꼭 50년의 법조생활을 한 것만은 사실인지라 반백년의 내 법조생활을 오늘따라 더욱 되돌아 보게 된다. 되돌아 보되 재조때 보다는 재야 20년 생활을 먼저 되돌아 보게 된다. 재야 때를 되돌아 본다 하더라도 내가 되돌아보는 시야는 매우 좁은 편일 것이다. 왜냐하면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도 아니고 공증인가 합동사무소나 국제변호사를 여럿 두고 있는 국제법률사무소 같은 로펌도 아닌 1인 성주의 변호사 사무실인데다가 그것도 법원이나 검찰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이사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같은 한 가옥에 35년이상을 살고 있고, 변호사 사무실도 개업 때 남쪽의 남산을 바라보는 K빌딩에 간판을 건 그대로 20년 동안 지켜왔으니 변호사로서 우리나라 변호사 사회를 두고 이렇다 할 말도 별로 없는 측에 속할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변호사 직역의 확대와 전문분야화로 변호사의 활동무대가 여러모로 다를 뿐 아니라 비분쟁적 법률사무에만 치중하고 있는 비지니스 로여와 소송변호사인 코드 로여와도 그 업무분야와 활동무대가 각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재야법조계를 되돌아 본다는 것도 제격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소송사건을 수임하여 온 나같은 코드로여는 일반적인 변호사와 다름없는 5W의 변호사에 해당될 것이다.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성문법(Written law)인 법조문에 능통하여야 할 것이고, 둘째로 이 법원 저 법원 이 법정 저 법정으로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 하고(Walking), 셋째로 법정에서 자기 맡은 사건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재판날짜나 선고날짜를 기다려야 하고(Waiting), 넷째로 소송관계서류나 변론서를 부지런히 써내야하고(Writing), 그리함으로써 보수도 받고(Wage) 이래서 5W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소송변호사의 일과로 되어 있을 것이니 말이다. 나 역시 이같은 5W 변호사로서 20년을 보내왔다. 그러면 20년 동안 변호사 개업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고 내용도 모르는 사람의 질문도 받을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변호사 20년의 나의 손익계산은 내 사무실을 근근이라도 그동안 유지해 왔다는 그 자체가 나의 수익이었다고. 80이 다 되도록 법률사무소의 문을 닫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사무실에 출퇴근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나에게는 이른바 큰 돈벌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때인데 변호사가 큰 돈벌이하는 직업인줄로 알고 얼마만큼 순익을 보았느냐고 묻게 되어 있단 말인가. 많은 순익을 올렸다고 하는 변호사도 개중에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내가 오늘 재야생활을 되돌아 보는 것이 변호사 수입여부를 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에게 20년의 변호사 생활이 어떠했더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변호사란 참으로 고되고도 고민도 많은 부자유한 직업인이다”라는 말을 확실히 하고 싶다는데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내 아는 어느 대법관이 생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법관은 자기 피와 자기 살을 깎아내려가면서 판결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되겠더라”고. 이 말은 대법관 뿐 아니라 모든 법관 그리고 우리 모든 변호사들의 고역을 대변하여 주는 말이었다고 지금도 종종 그 분의 말이 생각나고 있다. 변호사는 법관이 아니면서도 사건을 하나 맡으면 그 사건이 끝나는 몇 달 동안이고 몇 년이고 간에 끊임없는 고역을 치루어야 하며 그 해결책에 늘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되고, 그런 것이 급기야는 큰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여 부자유한 변호사 직업에 환멸을 느끼는 때도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기대하고 소기했던 대로의 판결이 되지 아니하고 엉뚱한 판결이 되어졌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담당법관에게 당장 뛰어가서 견해의 항거를 하고 싶은 때도 나에게는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변호사직업에는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때도 있어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나의 형사변론이 무죄의 판결을 내리게 한 것도 많아 그동안 「억울타 난 罪없어」라는 무죄변론집과 그 속편의 2권을 출간하기도 하였고, 법률무료상담과 무료변론도 많았다 하여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였던 것도 나로서는 변호사직에 보람을 느끼는 일들이기도 하였고, 근년부터서는 라이온스클럽 회장자리 등 라이온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의 공익활동에도 해당될 것이고, 그런 활동을 계속하여 오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변호사직이 위세당당하였던 권위적인 지위에서가 아니고 법률에 어두운 시민과 약한 사람에게 봉사하자는 법률서비스 지향에 부흥되는 일이기도 하여 자위를 저으기 느끼기도 한다. 변호사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거창한 표방보다는 사회생활이 점점 복잡하게만 되어갈수록 모든 국민이 법률을 지키자는 운동에 변호사가 무엇보다도 앞장서는 선두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여 보게 된다. 오늘 어느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변호사 직에 종사할 것이냐?”고. 나의 답은 이랬다. “내 팔다리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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