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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투자 중국법률] 춘추결옥 : 중국의 재판전통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중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워낙 의외의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성격이 느긋한 중국사람 변호사라면,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意料之外 情理之中)"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들을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얼마전, 천진에서 소송을 진행하다가 겪은 일이다. 상대방이 S전자에서 받을 납품대금을 가압류하는 데 성공하여 거의 끝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본안소송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대방회사가 가압류된 납품대금을 S전자로부터 지급받아 직원들 급여로 나누어주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담당인 민사재판부의 법관이나 집행재판부(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집달관을 따로 두지 않고, 법관이 집행을 담당한다)의 법관에게 확인해봐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도, 상대방회사로부터 들려온 소식은 확실히 그 납품대금을 받아와서 직원들 급여로 나누어주었다는 것이어서 추가로 확인해봤더니, 집행재판부의 다른 법관이 직접 S전자로 가서 납품대금 중 일부를 내놓으라고 해서 받아내고, 그 돈을 상대방회사에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개략적인 경위는 정법위원회의 위원이 법원의 고위층에 '사회적약자(弱勢群體)'보호를 모토로 삼는 중국에서 직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해결해주라는 의사를 전달했고, 그 말을 들은 법원고위층은 즉시 집행부의 한 법관으로 하여금 S전자로 가서 가압류된 돈의 일부를 받아 상대방회사에 가져다 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보호라는 명분과 정법위원회 위원의 한 마디에 가압류된 채권을 아무런 법적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것도 법집행의 최후보루인 법관이 받아서 전달해주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은 결국 우리측의 강력한 항의에 가압류되어있던 잔여물품대금을 즉시 법원이 받아와서 우리측에 전달해주는 것으로 끝이 나서, 다시 한번 법적 절차를 어기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의 한 현지법인이 중국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황당하게 패소한 일도 있었다. 지방대리점인 중국회사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제기한 건인데, 상대방도 돈이 없어 지급하지 못했지만 돈이 생기면 갚겠다고 채권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원고패소였다. 하도 황당하여 현지법인의 담당자가 법관을 찾아갔더니 법관의 대답은 "당신네 회사는 돈이 많으니 이 돈을 받지 않아도 문제없지만, 이 중국회사는 그 돈을 지급하면 망한다. 내가 우리 동네회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한국의 은행을 대리하여 중국의 외상투자기업지분을 가압류하려 한 적이 있는데, 그 외상투자기업은 한국, 홍콩, 중국의 세 주주가 투자한 합자회사이며 홍콩측 투자자를 대표하여 홍콩투자자의 오너가 법정대표인 동사장으로 있었다. 그는 유명한 홍콩의 소위 '애국인사'로 중국의 정협(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까지 지낸 거물이었다.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더니 사건수리를 담당하는 법관(중국은 사건수리를 담당하는 법관이 별도로 있다)이 아예 소장접수를 받아주지 않으려 했다. 이유는 '애국화교'이자 훌륭한 분이 동사장으로 있는 회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내 손으로 접수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겨우겨우 소장을 접수시키고 나니, 관할권조항의 효력과 해석을 터무니없게 문제삼더니, 결국은 '불편한 법정지이론'까지 끄집어내어 소를 각하해 버렸다. 최종적으로 성고등법원까지 항소해서 바로잡기는 했지만, 소송외적 요소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을 했었다.

이런 일들을 겪다보면, 중국은 성문법으로 규정된 법률의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상위의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우스개처럼 한 얘기가 생각난다: "중국은 헌법 위에 공산당 정책이 있고, 공산당 정책 위에 지도자의 말씀이 있다" 결국, 등소평의 남순강화와 같은 지도자의 말씀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말이다. 확실히 중국에서는 문서로 된 법률법규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겉으로 드러난 규칙 즉, 현규칙(顯規則)보다는 숨어있는 규칙, 즉 잠규칙(潛規則)이 더 작용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중국을 중국답게 하고 숨어있어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과연 어떤 것일까?

결국 그것은 중화법계의 역사가 남겨놓은 전통이 아닐까 한다. 중화법계는 영미법계, 대륙법계, 아랍법계와 구분되는 몇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사법보다는 공법이 중시되고, 절차보다는 실체가 중시되고, 행정과 사법이 통일되어 있고, 황제의 말한마디가 법을 만들기도 없애기도 한다는 등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재판에서 적용하는 원칙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한무제때 동중서에 의하여 확립된 "춘추결옥(春秋決獄)"이 있다.

춘추결옥은 인경결옥(引經決獄)이라고도 하는데, 재판을 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성문법을 적용하지만, 유교경전에 명시된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유교경전의 원칙에 따라 재판하고, 성문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중서는 주로 공자가 썼다는 <춘추> 등 유가경전에 나타난 공자의 뜻이 실현되도록 재판실무를 통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는 유방이 개국한 이래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시(國是)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나라가 법가의 법치(法治)를 선택하여 백성들의 불만을 사서 단기에 멸망하였으므로, 한나라로서는 법가의 법치를 표방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나라초기의 양대세력인 공신파와 외척파들이 선호하는 유가와 도가는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을 지향하는 황제가 받아들이기 적절하지 않았다. 즉, 공신파가 선호하는 유가의 덕치(德治)는 지방분권적 제후국을 지향하므로 황제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외척파가 선호한 도가의 무위자연은 사실상 황제에게 실제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어서 역시 황제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법가는 유목민족을 기반으로 하고, 유가는 농경민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치구안(長治久安)을 위하여는 반드시 유가와 법가를 통합하는 어떤 체제를 만들어내서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을 아우른 통일제국은 분명 분열하고 말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꿰뚫어보고 있던 사람은 동중서(董仲舒)였다. 그는 한무제에게 유가, 법가, 도가, 음양가 등 제자백가의 이론을 짜집기하여 통합한 새로운 체계를 제안한다. 그의 이론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첫째, 인간세상의 이치는 자연세계의 이치와 같다(천인감응), 둘째, 자연세계의 이치를 보면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지만 가을에는 만물이 고사하는 등 상생상극으로 변화한다(음양오행). 셋째, 인간세상도 한가지 이치로 다스릴 수는 없으며, 봄이 오면 덕으로 다스리지만, 가을이 오면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덕주형보). 이러한 이론적 기초 위에서 그는 진나라의 법률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되 다만, 진나라의 법률 중에서 유가경전 즉, 공자님 말씀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을 것을 주장했다. 그러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나라법률상으로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범죄를 고발하지 않는 것은 범죄이지만, 공자의 말씀 중에 '부위자은, 자위부은(父爲子隱, 子爲父隱)' 즉, '아비는 아들의 잘못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비의 잘못을 숨겨주는 것이 바른 것이다'라고 한 말에 따라, 부자간에는 서로 범죄를 고발하지 않더라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둘째, 또 한가지 사례는 갑이 을과 싸우고 있었는데, 을이 갑을 칼로 찌르려고 하자, 갑의 아들인 병은 몽둥이를 들어 을을 때린다는 것이 부친 갑을 때려버렸다. 이에 대하여 동중서의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춘추>의 뜻은 '논심정죄(論心定罪)'즉, 동기나 정황을 살펴서 범죄여부를 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좋은 뜻으로 한 경우는 법을 어겼더라도 형을 면제해야 하고, 나쁜 뜻으로 한 경우는 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위의 사례와 같은 경우에는 부친을 때린 것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동중서가 춘추결옥의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한 것은 지금 중국의 재판방식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즉, 중국은 자체적인 수요에 부합하는 법제도를 정비할만한 연구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동중서 당시 유가의 이론에 맞는 법률체제와 제도를 정비할만한 능력과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것과 유사하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체계와 제도가 이미 확립된 서방의 법률법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방에서 받아들인 법률법규가 중국 나름의 원칙에 어긋나는 경우가 발생하면, 법률법규의 문구가 어떻게 되어 있더라도 그 법률법규를 적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버린다. 즉, 법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즉 중국의 법치는 rule by law이지 rule of law가 아니다.

이러한 점들이 중국에서의 소송을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성문법을 적용하지 않고, 잠규칙(潛規則)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판결문에는 그런 내용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은 판결문에서 성문법의 적용하지 않는 조문을 아예 언급해버리지 않고 지나가거나, 그와 관련된 당사자의 주장에 대하여 아예 판단을 하지 않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엉성하거나 황당한 논리로 적용을 배제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이라면 판단유탈로 문제되겠지만 중국은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하여 중국에서 소송을 하려면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점이 더욱 많다. 한국에서라면 그저 법률법규 및 법이론적인 분석에 주력하면 되겠지만,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고려까지 덧붙여야 한다. 물론, 정치적인 고려에는 정책적인 측면과 인적인 측면이 둘 다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서의 소송은 다이내믹하다.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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