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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이 기다리는 여성 대통령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2010년 9월14일, 유엔본부는 긴장 속에서 반기문 총장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0년 7월 유엔의 여성 인권, 권익 통합기구인 '유엔 여성(UN Women)'의 출범이 유엔총회에서 결정된 이후, 바로 그 수장이 정해지는 날이었다. 2006년부터 설립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된 끝에, 유엔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유엔여성의 설립결의안이 지난 7월 통과되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유엔 여성조직이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유엔여성의 출범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기존의 유엔 내 여성조직 4개가 합쳐지면서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다. 유엔여성발전기금(UNIFEM, 76년 설립), 여성조직향상국(DAW, 1946년 설립),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국제연구훈련원(INSTRAW, 76년 설립),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실(OSAGI, 97년 설립)이 통폐합되어 총괄, 운영하면서, 기존의 2배에 가까운 연간 5억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게 된다.

앞으로 이러한 조직을 토대로 유엔 내의 여성 이슈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지원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분쟁 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 피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을 경우, 평화유지군 활동과 여성 인권 보호 활동이 긴밀히 연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계에서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 채택 이후 여성 권익 신장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계 여성들의 삶을 개선할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제시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유엔 여성'의 초대 수장은 누구로 결정되었을까? 유엔 내 최고위직의 하나인 사무차장급(USG: Under Secretary General)으로 새롭게 임명되는 것이었다. 기존 4개 여성 조직의 대표들이 모두 국장급이었던데 비하여, 한층 힘이 실린 것이다. 각국의 여성 대통령, 외교장관 등 유력한 여성계 인사들이 후보에 올랐다. 반 총장은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전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를 임명한다고 발표하였다. 바첼레트는 2010년 3월 지지율 84%의 인기 속에 퇴임한 성공한 대통령이다.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본인도 망명과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독재에 항거한 정치인이며, 소아과 의사 출신이기도 하다. 반 총장은 "바첼레트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유엔여성이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임명의 소감을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유엔 여성'의 초대 집행이사국(executive board)을 맡게 되었다. 지난 11월10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이사국들이 참여한 선거에서 아시아 지역의 10개 중 하나로 선출되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당초 이란을 포함한 10개국이 지역그룹의 승인을 받아 선거 없이 선출이 확정되는 분위기였으나, 일부국가가 이란의 집행이사국 적격성을 문제삼는 등 논란 속에 동티모르가 출마하여 결국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이란은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54개국 중 19표를 얻는데 그쳐 유엔여성 초대 이사국 진출이 좌절되었다. 치열한 외교전의 한 장면이었다. 유엔여성의 집행이사국은 총 41개국으로 구성된다. 지역별로 아시아 10개국, 아프리카 10개국, 동유럽 4개국, 라틴아메리카 및 캐리비안 6개국, 서구유럽 5개국이 구성되며, 유엔총회 결의에 따른 공헌국 6개가 포함된다. 새롭게 출범한 유엔 여성 통합기구인 만큼 앞으로 이사국들의 역할이 크리라고 본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가 여성 인권과 지위 향상을 위한 롤 모델로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저개발국의 경우, 빈곤이 확산될 때 여성은 출산과 육아 등으로 더욱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경험이다. 하이티 지진과 같은 재난과 아프리카 지역 분쟁의 경우 여성과 아동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특히나 최근 콩고에서 르완다와 콩고 반군에 의해 자행된 180여명의 여성 및 아동에 대한 집단 강간사건은 충격적이다. 여성 인권의 차원에서 유엔의 역할이 집중되어야 할 분야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취임 이후 전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2009년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특별기고한 "더 이상의 잔혹한 범죄는 없다"는 글은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유엔에서 지역분쟁이나 여성, 인권의 문제를 부딪칠 때마다 그 상황이 필자에게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의 고마(Goma)라는 도시에서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만난 18살 소녀의 이야기를 기고문에서 전하고 있었다. "최근 콩고 동부지역에서 보았던 일련의 사건들은 저를 경악하고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만난 18살 소녀가 제게 충격적인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하순, 소녀가 살고 있던 작은 도시에 제복을 입은 무장군인들이 나타났고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어느덧 네 명의 남성들에게 사로잡혔고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다른 여성들에 의해 발견된 그녀는 죽기일보 직전의 상태였고 서둘러 지역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반 총장이 그 소녀를 만났을 당시, 그녀는 자신에게 행해진 잔혹한 행위의 결과로 질과 직장의 벽을 포함한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 감염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것은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콩고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성폭력이 전쟁을 향한 무기처럼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 총장이 그 병원을 방문했던 토요일에 무려 10건에 달하는 '피스툴라(fistula, 강간 폭력으로 성기가 망가져 소변이 질로 흘러나오는 병)' 수술 일정이 잡혀 있었다고 한다. 2008년 한해 동안 그 병원에서만 4,800여명에 달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료가 있었고, 그 중 절반은 미성년자였다는 것이다. 그녀를 치료하던 "아프리카를 치료하자(HEAL Africa)" 소속 한 의사는 매일 이러한 사건을 경험한다고 하면서, "그녀의 외상은 치료할 수 있겠지만, 영혼의 상처도 치료해 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억울한 수치스러움으로 인해 가족들과 마을에서 추방당한 후 앞으로 모든 것을 혼자 이겨나가야 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여성을 향한 이러한 폭력은 어떠한 형태와 상황, 어떠한 정치적 지도자와 정부에서도 묵인되어서 안 됩니다. 지금이 바로 변화될 시점이며 우리의 목소리를 높입시다." 반 총장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여성을 향한 성폭력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이고 유엔이 지켜내고자 하는 모든 가치에 반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범죄자들이 상당수 아직도 형벌을 면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초 유엔은 콩고의 정치와 사법부 지도자들에게 종전의 강간 사건과 군대 내의 고문을 자행한 범죄로 명백하게 고발된 5명의 고위급 군장교의 명단을 제출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향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 중 4명은 지금까지 군에서 고위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의를 위해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서 분노와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다. 이러한 현실은 명백히 바꿔야 한다. 국제사회 모두가 변화를 위한 관심과 노력에 나서야 할 때다. 나 자신을 포함, 우리 젊은이들도 이러한 인류의 문제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공분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한다. 우선적으로, 유엔이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여성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내기를 소망한다. 콩고 동부의 130만 난민을 포함, 고통받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들의 삶을 재건하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