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독자마당, 수필, 기타

(수상) 역사의 교훈

김창영 법무사(서울) - 제2997호

1) 새천년의 21세기를 세인은 정보화시대라 칭한다. 20세기까지는 세계각국이 지구촌 여러 곳에 산재하여 각기 자국의 이익사항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정보산업의 발달로 인하여 바다가운데의 외딴섬에서의 일도, 또 국경의 담장을 높이 쌓고 어두운 야간에 이루어진 일도, 심지어는 땅을 파고 지하에서 계획된 일까지 모두 제3자가 외지에서 소상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넓은 지구촌이 거리감이 없이 가깝게 되고 국내적으로 비밀리에 잠행한 일들이 국외에 밝히 노출되는 광명한 세상이 되었다는 게 20세기와 달라진 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광명한 21세기에 아시아 부락에 있는 일본이라는 마을에선 지금까지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비행을 삭제하거나 변조미화하려는 일을 획책하고 이에 대하여 인근 국가의 비난과 시정요청도 묵살하려 하고 있어 세계인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 참으로 21세기의 넌센스라 할 일이다. 2) 역사란 거울에 비쳐진 사물과 같이, 사실 그대로가 기록되는 것이며 자국민에게 이익 되는 사실만 기록하고 불이익 사실은 누락시키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사실도 기록하여 다시금 과오에 대한 되풀이가 없게 하고 지난날의 잘못이 있다면 떳떳하게 사죄함이 역사가 요구하는 인류의 정도인 것이다. 오늘날의 일본처럼 잘못을 사죄할 줄도 모르고, 사실을 변조 삭제의 방법으로 왜곡함을, 단지 섬나라 민족의 편협성이라고 도외시하거나 방관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3)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사건은 어제오늘에 우발적으로 발생된 사건이 아니고, 그들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여 온 사건인 것이다. 그 첫 시도는 교과서 검열의 주관 관서인 일본정부의 문부성이 1960년도 말에,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시에 비밀리에 창설한 일본군 제731부대 세균전부대가 사람을 생체실험 한 사건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한 것을 삭제하려 하다가 일본 최고 재판소의 판결로 위 생체실험사건의 교과서 삭제는 위법이라고 판단이 내리자 일본 문부성의 삭제시도는 중단되고 말았고 이것이 최초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인 것이다. 위의 세균전부대에서 생체실험 대상자가 일본인이 아닌 것은 자명한 일로써 포로로 잡혀온 적군사병을 실험동물인 흰쥐나 토끼 정도로 생각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천인 공노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일본이 제2차 대전에서 패전하자 이러한 비행을 교과서에 수록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종전 후 일본이 경제부흥을 이루고 경제대국이 되자 위와 같은 생체실험의 부끄러운 사건을 감추고자 한 위의 첫 시도는 실패작이 되고만 것이다. 4) 사람이 자기의 치부를 감추려함은 하나의 본능이겠지만 치졸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크다. 일본인이 한국을 강제 침략한 1910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까지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하여 저지른 만행중 일본인이 가장 감추려하는 몇 가지 일만 예시해본다. (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가혹한 식민지정책이 시행되자 한국인은, 항일독립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미년(1919년)에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억압하려 혈안이 된 일본인은 1919. 4. 15. 일본육군중위 아리타가 인솔한 군인과 경찰이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의 제암리교회에 기독교인 30명을 소집하여 교회에 가두어 넣고 그 출입문을 폐쇄하고 총격을 가하여 교인을 살해하고 그 증거를 인멸하고자 그 교회를 방화한 후 교회 인근의 가옥 30채도 모두 방화하였는바, 이 만행에 대하여는 종전후 일본인 기독교도가 몇 사람 와서 사죄하였을 뿐이다. (나) 1923. 9. 1.에 일본의 관동지방에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른바 ‘관동대진재’라 하는 바 일본인은 지진이 나자 이때를 기하여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키려하고 있고 우물물에 독약을 살포했다고 루머를 퍼트려서 일본인은 한국인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였다. 그 시신이 6천여구에 달한 것이다. (다) 중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중국 남경을 함락시킨 1937년 12월부터 그 다음해 1월까지 사이에 일본군은 중국인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이 당시 살해된 숫자는 무려 34만명이고 도로상에 방치된 시체를 어느 자선단체에서 수습하여 매장한 숫자가 총 155,337구이었고 이중에서 어린이 시체가 859구 부녀자 시체가 2,127구였다는 바, 더욱 가공할 일은 중지(中支)파견군사령관 마쓰이 휘하의 장교들이 100인 참수의 경쟁을 벌여 최고 수훈자가 106명을, 차수훈자가 105명을 참수한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특히 한 손에 일본도를 들고 다른 손에 참수한 중국인 머리를 들고 자랑스럽게 사진촬영을 한 일본장교의 후손과 가족이 그 사진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면 그런 부류가, 또한 참수의 최고 기록을 세운 일본군 장교의 후손들이 자기 선대의 만행을 영웅시한다면 그런 부류가 바로 요즈음에 일컫는 일본의 극우 보수파라기보다는 옛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자들 일 것이다. (라) 2차 세계대전중인 1944. 8. 23. 일본정부가 공포·시행한 여자 정신대 근로령에 의하여 여자 정신대가 창설되었지만, 이를 일본인은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설사 그런 사실이 있다면 민간인의 상행위에 불과하다고 변명한다. 전쟁말기에 최전선을 민간인이 장사를 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서, 이 당시 정신대로 끌려간 한국여성은 10만명에 이른다 하는 바, 이에 대하여 양심 있는 몇몇 일본 여성의 개인적인 사죄가 있었을 뿐이다. 5) 일본은 그들 스스로 자기들 나라를 신의 나라라고 선민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왕도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이라고 칭하는 일본국왕이 선전포고한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신의 체통은 존재할 자리를 잃고만 것이다. 그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경제부흥이 되자 경제대국이라 자만하고 다시 일본인은 신의 선민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경제불황이 10년이나 지속되었지만 안간힘을 써도 그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21세기는 세계인의 이목이 아시아에 집중된다함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라는 사실에 일본인의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자존심 즉 선민의식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내세울만한 아무런 자랑거리도 없게되자 해뜨는 중국을 부러워하는, 해지는 일본인의 귀소처는 옛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생각케 하는 환상에 빠지게 한 것이다. 힘이 쇠진한때의 군국주의 회귀 분위기에 편승하여 동경도 지사 이시바시의 선동 발언이 상당한 인기를 얻자 이를 재빨리 감지한 고이즈미 총리가 군국주의 회귀 발언을 서슴없이 발설하여 인기를 얻고 있고, 또한 미국의 공화당 정부가 아시아의 샛별인 중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본을 부추기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을 지지하는 듯한 안개를 뿜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명사회가 칼로 참수하는 야만시대로 결코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군국주의의 회귀를 원하는 일본인도 불원 환각상태에서 깨어날 것이며 적어도 일본인중에는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반대하는 20~30%의 지성인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리우는 거짓은 일시적으로는 가리울 수 있으되 언젠가는 거짓이 벗겨지기 마련이다. 즉 거짓으로 치부를 가리운다 해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 수천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가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