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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이병호 변호사 ① 판사시절의 회고

이병호 변호사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판검사 나 변호사 자격취득 경로를 보면 일제시대의 고등문관시험 사법 과 합격,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간이법원판사임용시험 합격, 판 검사특별임용시험 합격, 사법요 원양성소입소시험 합격, 군법무 관임용시험 합격 등 다양했다.

나는 제8회 고등고시사법과에 합격한 후 사법관시보 임용을 바 랬지만 이루어지지 못해서 수습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일년의 수 습기간을 거쳐 1959년7월29일 수습변호사 실무고시에 합격, 변 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바로 변호 사 개업을 할만한 형편이 아니었 고 그러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군법무관을 자원 하기 위해서 전북병사구사령부 를 찾았다. 내 말을 들은 담당자 의 말은 입대 대상자도 기피하는 데 연령초과로 입대대상이 아닌 사람이 굳이 입대하기보다는 다 시 사법관시보를 지망하여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법무부법무 국 金永千국장을 찾아가 수습변 호사 실무고시에 합격되었지만 사 법관시보 수습을 하고 싶다고 지 원했다. 다행이 내 희망이 받아들 여져서 1959년9월12일 사법관시 보로 임용되어 1960년 4·19 학생 의거, 이승만 박사의 대통령 하야, 7·29 총선과 장면정부의 출범 등 소용돌이 기간에 사법관시보를 마 치고 1961년1월17일 광주지방법 원 소년부지원 판사로 임용됨으로 써 법조에 입문하게 되었다.

소년부지원 판사로 임용되었 지만 첫 근무지는 순천지원 판사 직무대리로 발령이 났다. 부임한 지 5개월 만인 1961년5월17일에 대법원장 선거를 하게 되었다. 지 원장이 대의원으로 선거를 위해 서 상경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5·16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 인 해서 대법원장 선거는 무산되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법원 장 선거논의는 사라졌다.

5·16 혁명으로 많은 법관들 이 해임되고 그해 10월 판검사들 은 혁명정부 주도아래 국립공무 원훈련원에서 특별교육을 받게 되었다.

당시 교재의 차례를 보면 혁명 입법해설, 민사실무, 형사실무, 검찰실무 등으로 되어있다. 법 원·검찰의 고위직도 함께 교육 을 받았는데 군대식으로 합숙하 며 일석점호(日夕點呼)를 받던 기 억이 새롭다. 그 다음 해인 1962 년에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판 검사 특별교육을 받게 되고 역시 군대식 합숙훈련이었다. 당시 교 재의 차례를 보면 국제정세의 분 석과 후진국의 정치적 경향으로 되어있고, 그 첫머리에는"본 교 제는 본원의 연구 이외의 타 목적 에 사용하거나 그 내용을 공무원 이외의 타인에게 누설함을 금하 고 학생의 연구를 위하여 제공하 는 강사 개인의 견해이며 따라서 본 교육원의 공식견해는 아니며, 교재의 복제 또는 복사가 필요할 때는 본 교육원장의 승인을 얻어 야 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20여 년의 판사생활을 통하여 많은 사건을 다루었지만 통상의 민·형사사건 처리에 매달렸을 뿐, 특별히 들추어 말할만한 사건 은 기억에 없다.

판사로서 한참 일하던 때의 내 일상은 어떠했을까. 오래된 일기 몇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1968년7월12일: 어제 벌교 사 는 나모군이 나를 찾아왔다. 보통 학교 동창이지만 얼굴마저 잊은 지 20여 년, 그렇게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저녁식사를 함께 하 잔다. 박절한 말 같았지만 필시 사건을 청탁하기 위함인 듯한 느 낌이어서 선약이 있어 안되겠다 고 사절하였다.

구속영장 청구기록을 살펴보느 라 하오 8시 가까이 되어서 집에 돌 아와 저녁밥상을 받기 직전 나모군 이 또 찾아왔다. 피곤해서 만날 수 없으니 다음에 만나자고 사절하였 다. 얼마나 나를 욕하였을까.

영장관계도 그렇다. 내 입회서 기의 보조를 보고 있는 오군이 오 모피의자의 영장을 기각하여 달 라는 부탁이다. 자기 친척이라는 것이다. 사안인즉 피해액은 11만 원, 보험회사 외무원으로 종사하 면서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금 을 가로챈 혐의이다. 두 차례에 걸쳐 기소중지 되었는데 보험회사측에서 손해를 배상하고 구상 을 받으려고 본사에서 지사로 재 기수사를 의뢰하도록 지시가 있 는 사안이다. 영장을 기각해주면 다시 행방을 감추도록 도와주는 꼴이 될 것 같다. 오군을 도와주 고 싶기는 했지만 부득이 영장발 부를 하고 나니 마음이 쓸쓸하다. 또 하나, 병무청의 병역법위반 사 건관계다. 사건 수임 변호사가 선 처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 반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구속수사 함이 옳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기록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피의자가 누구에게 무 엇을 부탁해서 누가 무슨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탈 하였다는 구체 적 사실의 적시가 없다. 뿐만 아 니라 피의자는 현직 공무원이며, 소속장이 피의자의 신병을 보증 한다는 확인서가 첨부되어 있다. 병무청 직원에게 부탁하여 병역 을 면제시켜주겠다는 대가로 돈 을 받았다는 브로커는 영장을 발 부하고 공무원은 기각했다.

1968년7월18일: 어제는 전남 고등학교에 갔다. 제헌절 기념식 장에서 학생들에게 유익한 몇 마 디 말을 하여달라는 것이다. 강요 한 교장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분인데 사양하지 못하고 단상에 올라갔다.

일상생활을 정의에 알맞게 할 일이요,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아는 기상을 가져야 한다는 요지 로 약30분간 말하였다.

나오는 길에 생각하지도 않은 사례금 10,000원을 봉투에 넣어 서 준다. 굳이 사양하지 않고 받아 가지고 와서 딸아이에게 주었다.

2003년 08월 07일 (제3192호)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