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④ 제주도 비상사태

선우종원 변호사

전쟁의 전세는 날로 긴박해져 북괴군은 대구 포위작전에 나섰다.

대구는 당시 유엔군사령부를 비롯해 정부의 각 행정기관, 군수 물자의 보급창과 함께 동부비행 장이 있었다.

만일 대구가 적의 수중에 들어 간다면 정부는 제주도로 가야 할 판국이었다.

이미 일부 참모들이 제주도로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는 루머 가 돌 정도로 정세는 날로 심각 해졌다.

그런데 천도 후보지로 지목되 어 온 제주도에 난데없는 비상사 태가 벌어졌다.

8월21일 새벽2시에 조병옥 내 무장관의 긴급 등청명령이 내려 졌다.

난 당시 치안국 정보수사과장 이라는 특수한 자리에 있었던 만 큼 조 장관과도 수시로 만났었다.

내무장관실에 들어가니 신성 모 국방장관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 러져 있었다. 조 장관은 나를 보 자마자"선우 과장, 바로 경찰관 7백명을 지휘해 제주도로 가줘야 겠소"라고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지금 대구방위에 총동원되어야 할 시 기에 제주도라니요? 게다가 제주 도에 경찰병력을 7백명이나 빼돌 려야 하는 긴급사태라도 벌어졌 습니까?"라고 물었다.

조 장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 했다." 그렇소. 방금신장관이지 금 제주도는 완전히 적의 수중에 들어 갔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줬소. 선우 과장이 책임지고 처리 해 주길 바라오"

나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시 제주도에는 이미 해병대사 령부가 자리 잡고 있었고 또 현지 경찰국에서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어떠한 보고도 없었단 말인가.

필시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장관님 그건 곤란합니다. 지 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7백명이나 되는 경찰을 거느리고 적과 대결 한다는 것은 저에게 무리입니다. 저는 사상검사 출신으로 군 작전 에는 문외한입니다"이 말을 옆 에서 듣고 있던 신 장관은"직속 장관의 명령을 일개 과장인 주제 에… 가라면 갈 것이지"라고 쏘 아 부쳤다.

그러나 나는 그곳 실정을 내 눈 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장관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민완경찰관 5·6명을 데리고 잠 입해 사정을 알아보고 대책을 세 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조 장 관은 결국"좋소 잘해 보시오"라 고 허락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민완경찰관 3명과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거지로 변장한 채 미 군용기편으로 제주도를 향해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제주도의 상황 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우리 들은 가까운 성당을 찾아갔다. 주 임신부는 아일랜드인이었는데 난데없이 우리들이 성당으로 들 이닥치는 것을 보고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치켜들고 나가라고 쫓 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 행색이 거지이기 때 문에 그런다는 것을 알고 영어로 말을 건넸다". 우린 대구에서 왔 는데 사정이 있어서 변장을 했으 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일랜드 신부는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영어를 하는 거지는 없 다고 판단했는지"일단 들어오 라"고 했다.

나는 신부에게 정부에서 밀령 을 받고 이곳 사정을 알아보러 왔 다고 말하니 신부는 그제서야 의 심을 풀고 사람을 시켜 홍모 회장 을 불러오라고 했다. 홍 회장이 오는 동안 신부가 해준 이야기는 정말로 끔찍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이곳 상황 은 말이 아닙니다. 어제도 한 사 람이 재판도 없이 총살당했습니 다. 그리고 오늘도 14명이 총살 당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빨리 막아야 합니다. 빨갱이도 아닌 사 람을 빨갱이라고 마구 잡아 죽이 는 일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에 홍 회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홍 회장은 눈물을 흘리 며"선우 과장님은 정말 천주님 이 보내신 사도이십니다. 빨리 수 습해 주십시오"하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제주도에서 말장사를 하던 이 모씨가 해병대 정보과 끄나풀과 만나는 자리에서 평소 감정이 안 좋은 이곳 지방법원장과 지방검 찰청장, 학교장 등 각 기관장들이 소위'인민군 상륙환영준비위원 회'라는 반정부 단체를 결성해 비밀리에 지하조직을 펴고 있다 는 허무맹랑한 사실을 조작했다.

이 허위조작 사실을 특급기밀 이라고 생각한 정보과 끄나풀은 그 길로 해병대사령부에 달려가 보고했다.

비상이 걸린 해병대사령부는 제출된 명단에 있는 인사들을 주 정공장으로 모조리 잡아 들였고 경찰의 무전시설까지 압수했다 는 것이다. 그래서 내무부와의 연 락도 두절된 것이었다.

'제주도가 완전히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그릇된 정보의 출처 를 가려낸 우리 일행은 이성주 제 주도경찰국장을 극비리에 만나 진상을 확인하고 내무장관에게 보고키로 했다.

나는 또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해병대사령부로 가서"내무부장 관 특명을 받고 진상을 살피러 왔 는데 피해자들에 대한 증거를 보 여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신모 해병대정보과장은"본인 들이 이미 자백했습니다. 무슨 증 거가 또 필요합니까?"라고 사무 적으로 대답했다. 나는"심한 고 문으로 얻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조사할 기 회를 주십시오. 또 경찰 무전시설 봉쇄도 풀어주시오"라고 강력하 게 요구했다.

그 뒤 나는 대구에 있는 조 장 관과 몇 번 무선으로 제주도내 실 정을 보고한 결과, 조 장관으로부 터"선우과장이 소신껏 하시오" 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까지 실황조사 보고에만 그쳤던 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다시 사령관을 만나"일을 가 장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군·검·경 3부 합동수사본부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 게 해서 구성된 합동수사반은 연 일 강행군을 하며 각자 맡은 분야 에서 소임을 다했고 사건의 진원 을 캐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조사결과 사건을 조작한 말장 수와 그 장단에 놀아난 정보원, 그리고 주둔군사령부 정보과장 이 육군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되 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무고하게 처형당 한 한 명을 뺀 나머지 14명의 죄 없는 인사들은 다시 푸른하늘을 볼 수 있게 됐다.

하마터면 무고한 사람들의 억 울한 죽음을 당할 뿐만 아니라 내 가 인솔하고 갔을지도 모를 경찰 7백명과 해병대간 전투가 벌어졌 다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참으로 아슬아 슬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나는 이렇게 2주간의 특별조사 를마치고 무사히 대구로복귀했다.

2003년 04월 21일 (제3164호)
리걸에듀

카테고리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