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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② 남로당 총책 김삼룡, 정치고문 이주하 체포

선우종원 변호사

나는 일본 출장 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남로당 총책인 김삼룡과 정치고문인 이주 하의 행방을 찾던 중 1950년3월초 당시 김삼룡의 비 서인 김형륙을 체 포했다. 주 1회 접 선하기로 되어 있 는 필동'가두연 락선'에서 잡혀 우리 손으로 넘어 온 김형륙은'모든 일이 끝났다' 는 듯 자기가 알고 있던 비밀을 하 나 둘씩 털어 놓기 시작했다.

김의 진술로 드러난 김삼룡의 아지트는 수사진의 습격을 받았던 효제동 반찬가게를 비롯해서 이태 원, 공덕동 등 일곱군데나 됐다.

수사진은 낮에는 농림모에 수염 을 붙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김삼룡의 생활을 보고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아지트 를 지키고 있는 주인은 모두 여인으 로서 다시 말해 김삼룡의 소실 노릇 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매 일밤 지하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여 러 여인의 품속에서 즐기는 호화판 생활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효제동 아 지트 관리자인 여인이 대한부인 회효제동분회의 부회장이었으니 그 누가 남로당의 총수인 김삼룡 이 그 곳에 숨어있으리라고 상상 이나 했겠는가?

마침내 3월24일을 거사일로 잡고 신중하게 체포작전을 폈다.

나는 잠복해 있던 형사로부터 김삼룡이 자전거를 끌고 효제동 아지트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는 보고를 받았다. 검찰과 시경수 뇌부는 김삼룡을 체포하기 위해 재빨리 병력배치를 하고 3월15일 자정을 기하여 출동명령을 내렸다.

효제동 아지트 근처 요소마다 형사들을 배치하고 오제도 검사 와 홍민표 경위에게 진두지휘를 맡겼다. 또 집주위 뒷담은 동원된 경찰학교 학생들에게 맡겼다.

이렇게 철통같은 태세를 갖추 고 출동한 수사대가 효제동 집을 덮치고 보니 김삼룡의 행방이 묘 연했다. 방이라곤 2개 밖에 없고 블록으로 쌓은 뒷담은 높이가 한 길 반에 위에는 철조망까지 둘러 있어 어디도 도망갈 곳이라곤 없 는 상황이었다.

뒤꼍으로 달려간 수사대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도 망칠 수 없는 곳처럼 보였던 뒷담 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요란한 대문소리에 놀란 김삼룡은 잠옷바람에 뒷담을 힘껏 발로 차고 뚫어진 구멍으로 빠져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허점이었다. 뒷담 경비를 맡았던 경찰학교 학생들은 담이 무너지는 줄 알고 놀라서 모두 도망쳐버렸으 니 더욱 기막힌 노릇이었다.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 는데 골목길을 자세히 살펴보니 핏자국이 보였다. 용기를 얻은 수 사진은 핏자국을 따라 추격에 박 차를 가했지만 동숭동 뒷산인 낙 산에서 핏자국은 이미 빗물에 씻 겨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수사진은 시경 사찰과분실로 연 행한 김삼룡의 처와 절름발이 청년 에게 김삼룡의 행방을 채근했다. 그 절름발이 청년은 김삼룡이 자주 간다는 예지동 집을 알려줬고 수사 진은 지체없이 그 집을 덮쳤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거물을 잡게 됐다. 바로 우리가 그처럼 찾았던 이주하를 잡은 것이었다. 이주하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 온 지식인으로서 남로당에서는 드물게 보는 인텔리였다.

이렇게 이주하를 체포해 사찰 과분실로 연행하는 도중 차 안에 서의 그의 행동이 수상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었 다. 수사관들은 육감으로'아차 독을 먹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한뒤 즉각 의 사를 불러 강제로 위세척을 했다. 순간 이물이 쏟아져 나왔다.

"차라리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이주하의 독백이었다.

이런 소란속에서도 수사진의 초점은 김삼룡의 행방을 쫓는데 집중됐다.

당시 치안국 수사진에는 큰박이 란 별명을 가진 송영달이란 전향 자가 있었는데"이제 부상당한 김 삼룡이 갈만한 곳은 북아현동 모 의사집 밖에 없다"고 추리했다. 그 의 추리는 그대로 들어 맞았다.

치안국 수사대는 3월15일 마침 내 이한영 경감 지휘아래 북아현 동 모의사집을 덮쳐 남로당 당수 격인 김삼룡을 체포했다. 김삼룡 은 남창동에 있는 치안국사찰과 중앙분실로 연행됐다. 거기서 옛 동지인 전 남로당 서울시당 부책 이였던 홍민표 경위와 대면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미안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 는 홍 경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 렀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대한민 국 전복을 위해 힘을 합쳤던 동지 가 이젠 정반대에서 얼굴을 맞대 고 있었으니 그들의 심정은 착잡 하였을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삼룡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홍경위가먼저입을열었다"이젠 서로 입장이 다르게 되었으니 여러 가지로이해해줘야하겠습니다"

"알겠소..."이 말은 김삼룡이 체포된 후 말한 첫마디이자 유일 한 말이었다. 잡혀온 직후부터 김 삼룡은 수사관의 어떠한 물음에 도 그저 픽하고 웃을 뿐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했었다.

취조의 방향은 대남유격대와 남 로당의 비상연락선을 알아내는데 에 있었으나 김삼룡의 굳게 닫힌 입은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수사 진은 마지막 방법으로 효제동에 있는 3살난 아들과 처를 시켜 전 향해서 함께 살도록 권유도 했으 나 그의 입을 여는데는 허사였다.

이에비해 김삼룡 체포단계에서 우연히 잡히게 된 남로당 정치고 문 이주하는 검거된 후 심경의 변 화를 일으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북은 1950년6 월 중순 갑자기 평화호소문을 소지 한 2명의 특사를 파견하는가 하면 조만식 선생과 김삼룡·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제의해 왔다. 이에 이승 만 대통령은"조만식 선생을 먼저 보내주면 두명을 보내주겠다"는 회신을6월23일방송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틀 뒤인 6월25일 새 벽 북괴군은 일제히 38선을 넘어 남침을 했다.

2003년 04월 14일 (제3162호)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