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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① 북로당의 사살검사 암살지령

선우종원 변호사

1950년 남로당 중앙당부에 대 한 본격적인 수사를 위해 서울시 경사찰과 홍만표 경위가 특별수 사반을 만들어 수사에 착수할 무렵이었다.

당시 서울고검 검사 겸 서울지 검 검사로 근무하던 나는 일본과 홍콩, 하와이의 한국공관에 침투 해 있던 이북 정치보위부 공작원 이거나 이들에게 포섭되어 있다 는 직원의 명단을 입수, 그 명단 을 가지고 외무부로 달려갔다.

그 때가 1월10일 경이었다.

장관 비서실장 유태하씨는 내 보 고를 듣고 허둥지둥 어디론가 사라 졌다. 한시간이나 기다렸을까? 다시 돌아온 유 실장은 퉁명스럽게 "일본대표부에 공산당이 침투했다 면 빨리 잡아와야 할 것 아니오. 여 권과 비용 전부는 부담할 터이니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준비를 하시 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집무실로 돌아와 오제도 검사와 일본에 갈 채비를 했다. 당 시 일본에 가면 공안조사청에 가 서 남로당 총책인 김삼룡과 정치 고문인 이주하의 행방을 알아 볼 수 있는 동시에 재일교포들의 사 상동향도 살필수 있는 기회였다.

여권과 여비는 단 이틀만인 12 일에 발급되었고 바로 다음날인 13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미 군용 기를 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정 도로 당시의 여권은 타블로이드 판만한 종이에 영문과 국문으로 된 인쇄물로 조잡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난 그 여권을 주머니에 제멋대로 접어넣고 다녔다.

비행시간도 엉망이어서 이륙 하기 전날 밤에 집으로 전화가 와 "시간이 바뀌었으니 상오 4시까 지 비행장으로 오십시오"라고 하 는 바람에 새벽바람을 맞으며 비 행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런데 제멋대로인 이 비행기 시간이 나에겐 생명의 은인이 되 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아무튼 일본으로 건 너간 나와 오 검사는'마루젱'이라 는 책방에 들러 일본시사통신사에 서 내놓은 연감을 들춰보고 아연 실색했다.

'朝鮮'란을 펼쳐보니 남한의 내용은 이북의 3분의 1도 안되는 데다 북쪽은 지상낙원이고 남쪽 은 도둑과 정치혼란 속에 민중은 도탄에 빠져있다는 기가 찬 내용 뿐이었다.

우리는 몹시 흥분해 그 연감을 사들고 호텔에 들러 주먹으로 죄 없는 연감만을 박살내며'나쁜놈 들'을 연발했다.

다음날 일본검찰청으로 가서 우 리는 검찰총장의 면회를 신청했다.

'이와무라'라는 60세가 넘은 노 신사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본 론에 들어가자마자 대뜸 항의와 함께 불만을 털어 놓았다. "일본의 연감이 이렇게 우리를 멸시할 수 있습니까?"하니까 그는 고개를 끄 떡이며"젊은 검사들이 그런 기백 마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옳은 말씁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너 무나 교포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 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이북 방송 밖에 안 들립니다. 게다가 대 부분이 김일성 사진을 집에 걸어 놓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우리는 되먹지 않은 변명이라고 생각하면서 호텔로 돌아와 라디오 를 틀어보니 과연 이북방송이 다 른 일본방송과 함께 깨끗이 들리 는 것이 아닌가? 뿐만아니라 교포 자녀들도 하나같이 줄넘기를 하면 서 공산당 노래를 했고 집안 곳곳 에는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튼 일본 출장의 최대 관심 사였던 김삼룡과 이주하가 일본 에 없다는 심증을 굳힌 우리는 남 한 어디엔가 그들이 은신하고 있 다는 확신을 가지고 귀국했다.

여기서 좀전에 미뤄놓았던 내 생명의 은인이 된 비행기 시간 이 야기를 하기로 하자

나와 오 검사가 일본출장에서 돌아와 처음 등청을 했을때 이주 영 검사가 찾아와"어떻게 도일했 던 성과는 좋았습니까?"라고 물었 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나를 반기 기보다는 심각한 기색이 짙었다.

"덕분에 잘 다녀왔는데요 어째 몸이 불편하신가? 안색이 안 좋 으신 것 같네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선우 검사와 오 검사의 암살지령을 받 은 놈이 잡혔습니다"

"뭐요?"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만일 선우 검사가 1월13일 떠나지 않 았다면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 을 겁니다"

이 검사의 말에 난 좀더 구체적 인 내막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 검사가 대충 알려준'사상 검사 암살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일본에 출장간 사이 가두 연락을 하는 수상한 자를 발견해 잡았는데 그 자가 털어 놓은 사실 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당시 남로 당 대남유격대 총책 이승엽(6.25 당시 서울시인민위원장=시장)의 특별지령을 받은 북로당원이 나 와 오 검사의 집 근처 약도와 내부 구조를 상세하게 그린 그림을 가 지고 암살하려고 남하해 온 사실 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는 여러차 례 현장 답사 끝에 상오8시경에는 내가 집근처 골목어귀를 지나간 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13일 아침 나를 암살하기 위해 골목길에서 기다렸으나 내가 끝내 모습을 나 타내지 않자 10시까지 기다리다 철수하고 만 것이었다.

만일 비행기 시간이 변경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 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순간중 의 하나였다.

鮮于宗源변호사 약력
1942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졸업, 1943년일본고등문관시험사법과합격, 1946년 서울지검 검사, 1948년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장, 1950년 내무부 치안국 정보수사과장, 1951년 국무총리 비서실장, 1960년 한국조폐공사 사장, 1963년 변호사 개업(서울), 1968년 중앙선거관리위원, 1971년 국회 사무총장, 1976년 변호사 재개업(서울), 1981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2003년 04월 10일자 (제3161호)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