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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야기

[한자이야기] 중(中)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중(中)은 사물의 중앙, 곧 가운데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글자입니다. 글자의 생긴 모양도 口를 치우침 없이 반으로 갈라 놓은 형태입니다. 세로로 그은 획이 口의 좌나 우로 치우쳐 있으면 中이 아닙니다. 중(中)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일곱 가지 정이 있습니다. 이 마음 속에 있는 감정도 얼굴에 드러나면 이미 중(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中)에 맞추어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로 한 쪽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기주의도 나오고, 반대로 이타주의도 나왔습니다. 맹자보다 조금 앞선 전국 시대에 양자(楊子)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머리털 한 오리만 뽑으면 온 세상이 모두 행복해진다고 해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묵자(墨子)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겸애설을 주장했습니다. 양자와 정반대 생각을 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갈리어 가루가 되더라도 남이 이롭게 된다면 이를 실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극단적 이타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나 묵자는 모두 中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러자 또 자막(子莫)이라는 이가 있어, 집중(執中)을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중도를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타(利他)나 이기(利己)로 치우치지 말고 그 중간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모두 한 때를 풍미했던 분들입니다. 좌를 주장하면 우가 나오고, 우를 내세우면 좌가 나옵니다. 또 중도를 주장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중도는 中자의 함축된 뜻을 살리려 한 것이지요.

언뜻 보면 자막이 말한 집중(執中)이 가장 그럴사 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집중도 굳어지면 하나의 고집(固執)이 되고 맙니다. 권(權)이 없으면 이것도 집(執)이 됩니다.

비유하자면 공부방 하나만 보면 그 중앙은 공부방의 가운데이지만, 집 전체로 볼 때 집의 중앙은 거실쯤이 됩니다. 언제나 공부방 가운데가 중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느 하나를 고정하여 중도를 주장하면 좌나 우를 주장함과 다름이 없습니다. 中은 사안사안마다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알맞은 중(中)을 지키기가 이처럼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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