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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99% 유죄판결' 러-日에 부는 변화의 바람

김민조 변호사(서울지방변회 사무차장)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러시아의 유죄판결률은 1951년 이후 매해 평균 99%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99.7%를 상회한다. 러시아와 일본의 이처럼 높은 유죄판결률은 오랫동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당해 국가 내에서도 '기소할 사안만 기소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상당한 자성론이 있어왔다. 최근 들어 양국의 높은 유죄판결률에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그 발단이 된 사건을 간략히 소개해드린다.

그동안 러시아 법원이 99%의 높은 유죄판결률을 보여 왔던 가장 큰 이유는 피고인의 무죄석방이 곧 판사의 부패로 인식되는 사회적 선입견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더 내셔널지에 따르면 다수의 피고인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는 법원 내외에서 부패의 의심을 받게 되고, 이는 곧 당해 판사를 면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유가 된다. 때문에 판사들은 무죄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강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고, 결국 법원으로부터 독립된 시민참여 재판을 통하여 사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자 배심제가 재도입되었다. 러시아의 배심제는 1993~94년 러시아 사법개혁의 주요 골자로 9개 지역에 시범 시행된 이래, 지난 2010년 1월 체첸 공화국을 마지막으로 러시아 전역에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전직 검사 Sergei Tsirkun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인터뷰를 통해 검사로 재직하던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기소했던 사건 중 무죄판결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설사 증거가 미흡하다 할지라도 판사는 피고인의 무죄에 백퍼센트의 확신이 있지 않는 한 절대로 무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판사는 무죄와 싸우는 최전방 군인과 다름없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 사법부의 독립은 여전히 요원할 뿐이고, 차라리 배심제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러시아 배심재판은 시행 이후 줄곧 15~20% 수준의 높은 무죄판결률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배심제는 과연 선일까? 러시아 배심제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러시아 배심재판의 높은 무죄판결률은 배심원의 비전문성과 편향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단적인 예로 비정상적인 배심원단 교체와 뇌물 스캔들로 악명 높은 Bankov 사건을 들 수 있다.

러시아의 대부호 Bankov와 Poddubny는 1999년 유령회사를 통한 미화 200만달러 상당의 담배밀수, 돈세탁, 사기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을 맡게 된 첫 번째 배심원단 중 일부는 평결을 내리기 바로 전날 건강상 문제 있음을 이유로 사임하였는데, 실은 검찰 측의 무리한 외압 때문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 새로이 구성된 두 번째 배심원단은 2005년 2월 두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리고, Bankov 및 Bankov의 변호인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죄기념 초호화 축하파티를 즐긴 것이 발각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검사는 항소하였고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환송했지만, 세 번째 배심원단 역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참고로 러시아는 이중위험금지원칙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바, 러시아 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배심원이 내린 유죄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비율은 5~8%에 불과한데 비해, 무죄판결에 대한 파기환송비율은 무려 50%에 이르고 있다. 이 외에도 오랫동안 구소련의 독재에 억압되어 정부와 수사기관에 적대적인 배심원들의 심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예단을 가지게 한다는 점, 배심재판 비율이 전체 형사재판의 0.05%에 불과하다는 점도 러시아 배심제가 극복해야 할 한계로 지적된다.

세계적으로 높은 유죄판결률을 보이는 또 하나의 국가는 일본으로, 쿄도뉴스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사형 또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재심에서 무죄로 석방된 예는 단 6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99.7%의 유죄판결률, 90%에 달하는 자백률의 주요 원인으로는 지나친 관료주의, 고압적 수사, 미결구금의 압박 등이 꼽힌다. 특히 일본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경찰은 2일간 피의자를 구금할 수 있지만, 검찰 송치 1일, 구류청구 및 연장 각 10일씩을 모두 합하면 기소 전 최장 23일간 피의자를 경찰서 유치장에서 구금할 수 있어 실제로 대다수의 피의자가 이 과정에서 강한 피로와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자백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 및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일본 내에서 꾸준히 계속되어 왔고, 최근에는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스가야 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재점화 되었다.

스가야 토시카즈(63세)는 4살된 여아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7년간 무고하게 수감되었던 전직 유치원 셔틀버스 운전기사이다.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스가야는 1심 공판절차에서부터 고문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음을 주장하며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살해된 여아의 옷에 묻어있던 체액과 DNA 형질이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에 따라 1993년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2000년 최고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그의 무죄를 확신한 변호인은 2002년 독자적으로 기소 당시의 증거물에 대하여 DNA 재감정을 실시하였고, 체액과 스가야의 DNA 형질이 불일치 한다는 최종결과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하였다. 최근 DNA 식별 기술은 4조7,000억명 중 1인을 구별해 낼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2010.3.26. 재심 판결 선고일, 우츠노미야 지방재판소의 사토 마사노부 재판장은 "당시 DNA 감정은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정할 수 없어 그 결과 역시 유죄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스가야의 자백 또한 DNA 감정결과를 본인에게 알려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점, 당시의 취조 상황 및 형사의 강한 어조에 반박하지 못하는 스가야의 내성적인 성격 등을 종합해볼 때 허위인 점이 분명하다"고 설시한 후 "스가야씨의 진실 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17년 반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소중한 자유를 빼앗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판사석에서 기립하여 고개를 숙였다.

사실위주의 자료, 편집된 인터뷰, 숫자로 점철된 통계 너머에는 언어나 숫자가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저마다의 굴곡진 사연과 역사가 숨어있다. 피고인 변호사와 고급 요정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배심원, "내 인생을 보상해 달라"며 벅차게 울던 주름진 노인…. 어떤 진실은 가을밤보다도 더 서늘하고 애절한 듯하다.

minjo.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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