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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골프의 에티켓과 바비 존스의 아마추어리즘

김민조 변호사(서울지방변회 사무차장)

어린 시절, 위인전 읽는 것을 꽤 좋아했다. 위인전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위인들의 뛰어난 업적보다 오히려 꼬마 에디슨이 헛간에서 알을 부화시키겠다며 달걀을 품고 있었다든지, 황희 정승이 노비들의 싸움에 '그래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구나'라고 했다던 과연 범상치 않은 일화들 때문이었다.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 위인전, 특히 자서전 읽는 것이 시들해졌는데, 대개 일화라는 것이 후세에 의해 꾸며지거나 과장된 것일 거라는 걸 인지하면서부터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주 흥미 있게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가며 읽은 전기가 있었으니, 바로 '바비 존스'에 대한 것이다. 그 시작은 캐나다 변호사협회지에 실린 '골프와 법조인: 하늘이 맺은 인연' 칼럼부터였다. 아우디 콰트로컵 세계 결선전에 캐나다 대표로 참가하게 된 버지니아 엔젤 여성변호사는 위 칼럼을 통해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 골퍼로서 바비 존스를 꼽으며, 골프를 치는 법조인에게 다음과 같은 10가지 에티켓을 제안한다.

1. 최선을 다해 쳐라
이른바 클라이언트 골프가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져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2. 준비된 골프를 쳐라
골프에 있어 신속성은 생명이다. 차례가 되었을 때 바로 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3. 상대방을 배려하라
골프를 잘 치는 이일수록 반드시 상대방에게 먼저 tee off 할 것인지를 정중히 묻도록 한다. 의뢰인보다 먼저 장타를 날려 필요 이상으로 그를 기죽일 필요는 없다.

4. 점수에 연연하지 말라
지나친 경쟁은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 의뢰인의 공이 홀 근처에 있을 때 먼저 'gimme'를 제안해 주는 센스는 미덕이다.

5. 핸드폰의 전원은 끄라

6. 화를 참으라

7. 속임수를 쓰지 말라
골프는 심판이 없는 스포츠이다. 스스로 룰을 지키는 것이 골프의 기본이며, 하물며 법조인이라면 중언의 필요가 없다.

8. 의뢰인보다 먼저 사건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

9. 당일의 스케줄을 미리 확인한 후 상대방에게 알려라
게임 시간이 어느 정도일지, 게임 후 저녁은 함께 할 것인지, 그리 가깝지 않은 이일수록 당일의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

10. 그리고, 침묵하라
골프에 있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최선의 매너는 상대방이 공을 칠 때 침묵하고 바라봐 주는 것이다.

법조인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게임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류에서 사람의 손으로 공이 나아갈 자리를 만들어 골프라는 게임을 처음 시작한지 600년의 세월이 지난 이래, 골프역사상 필드 위 최고의 신사로 불리워지는 바비 존스(Bobby Jones, 1902~1971). 그는 1923·1926·1929·1930년 US 오픈, 1924·1925·1927·1928·1930년 US 아마추어, 1926·1927·1930년 British 오픈, 1930년 British 아마추어에서 우승한 골프 천재다. 28세가 되던 해인 1930년에는 당시 4개 메이저 대회였던 US 오픈, US 아마추어, British 오픈, British 아마추어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는데, 이는 오늘까지도 깨지지 않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절정의 순간, 돌연 은퇴를 선언한 바비 존스는 은퇴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시합에서 더 이상 게임을 즐길 수 없다. 이제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라는 심플한 답을 남겼다.

흥미롭게도 그가 세운 불세출의 기록은 모두 아마추어 골퍼로서 이뤄낸 것이었다. 골퍼로서 전성기였던 1920년대, 그는 3개의 유수대학(조지아텍, 하버드, 에머리 로스쿨)에서 전혀 다른 세 가지 분야(엔지니어링, 영문학, 법학)를 순차적으로 전공하고, 조지아 텍에서는 수석졸업, 에머리 로스쿨에서는 1년차를 마치고 곧바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성과까지 거머쥐었다. 2대에 걸친 법조집안의 아들로서 핸섬한 외모, 풍부한 지성, 가족애와 신사도까지 미국인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그가 동서고금을 넘어 지금까지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추앙받는 진짜 이유는 위와 같은 스펙 이외에 그가 보여준 진정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어원은 'amator', 라틴어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 변호사로서 생업을 유지하며 평생 아마추어로 남아 골프를 사랑했던 바비 존스의 아래 일화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1925년 US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 선두를 지키며 우승을 목전에 둔 순간, 바비존스는 골프채를 조정하면서 실수로 공을 건드렸다고 한다. 이를 눈치 챈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는데, 그는 스스로 공을 건드렸으니 한타 친 것과 다름없다고 고백하고 1점 벌타를 받았다. '당신의 공이 움직이는 것을 본 바 없다. 그러니 그대로 게임을 진행해도 좋다'라는 경기위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며 한 점을 깨끗이 포기하겠다던 그의 고집은 결국 동점을 허용하여 연장전 끝에 패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경기가 끝난 후 페어플레이를 칭찬하는 기자들의 멘트에 그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규칙대로 경기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은행에서 강도짓을 안했다고 칭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담담히 답했다고 한다. '골프가 한 번에 한 타를 치는 운동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 나는 수십 년이 걸렸다'라던 그의 말은 지금도 기본의 중요성을 알리는 예로 유명인의 연설에 자주 인용되는 명언이다.

힘든 시절일수록 위인이 그립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을 갖추고도 겸손함과 정직함, 일과 생활의 조화를 잃지 않았던 바비존스의 성공신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자네는 어머니를 위해 하버드에 입학했고,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가 되었고, 아내를 위해 은퇴했네. 그렇다면 자네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오랜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가 설립한 오거스타 국립골프클럽. 1933년에 개장된 이래 전 세계 골퍼들의 드림 코스로 일컬어지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마스터즈'라는 지구 최대의 골프대회가 열리고 있다.

프로 법조인으로 오늘 하루도 수고하신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 아마추어 리그는 안녕하신지요. 그 안부를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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