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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같고도, 다른 두 여성 연방대법관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2010년 여름, 미국 연방대법원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8월6일,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에서 미국 역사상 112번째의 신임 대법관을 소개하는 순간, 뒤편의 빨간색 자켓을 입은 그녀는 더욱 눈에 띄었다. 주인공은 바로 50세의 엘리나 케이건 신임 대법관이었다. 미국 대법원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 트로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 3명이 동시에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미국 대법원 역사에서 여성으로 샌드라 데이오코너 전 대법관(2006년 은퇴)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
yor) 대법관에 이어 4번째로 대법관에 올랐다. 더구나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고, 40년만에 판사 경험이 없이 대법관에 올라 더욱 화제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케이건 대법관을 소개하면서 "그녀는 대법원의 결정이 우리 민주주의의 특징을 결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의 상황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녀에 대한 상원의 인준은 역사적 전진의 상징입니다. 나는 아버지로서 두 딸의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원하며, 미국인의 자부심으로 우리 대법원이 이전보다 더욱 우리 국민들을 담아내고 대표하며 반영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너무나 기쁜 순간입니다"고 감격을 피력했다. 케이건 대법관의 인사말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그녀를 직접 리셉션장으로 안내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미국 사법부와 행정부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명한 2명의 대법관은 공통점이 많다. 두 분 모두 여성 대법관인 점도 그렇고, 공교롭게도 모두 뉴욕에서 태어났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다. 진보성향을 지니고 있고 상원 인준과정에서 민주당의 당파적 지지(partisan vote)를 받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 대법관의 성장과정과 법조 경력은 상이하다. 2009년 임명된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뉴욕 브롱스의 빈민가 출신이다. 히스패닉계 이민 2세로 어려운 환경에서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비교적 이념적 색채가 적어 부시 행정부에서 연방항소법원 판사에 지명되었다. 맨하튼 검찰을 포함, 판사와 검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에 비하여 케이건 대법관은 1960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변호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마친 그녀는 시카고법대 교수직을 거쳤으며, 최초의 여성 하버드법대 학장을 지내면서도 군 복무 중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기호를 밝히지 못하도록 한 정부 조치는 인권보호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는 등 진보적 성향을 보여 왔다. 케이건 대법관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법률자문역을 담당했고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는 송무차관(soliciter general)으로 발탁되어 일하는 등 워싱턴과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연방 상원의 인준 과정에서도 두 대법관은 작은 차이를 보였다. 케이건 대법관에 대한 인준 투표에서 찬성 63표, 반대 37표가 나왔다. 5명의 공화당 의원과 2명의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의 찬성표에 가세했다. 2009년 8월, 소토마요르 대법관 인준 투표에서는 의료개혁법안 등을 둘러싼 치열한 여야의 대립 속에서도 상황은 조금 나았다. 9명의 공화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 케이건 대법관의 인준 표결 이전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그녀의 정치적 입장이 대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상당히 염려하였다. 켄터키주의 미치 멕코넬 의원은 "미국인들은 누구나 정치가 법원의 문 앞에서 멈추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지방의 작은 사건을 다루는 법원이나 대법원이나 같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민적 신망을 받는 미국 최고 법관을 국민의 대표인 상원이 인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당파적 표결 결과가 계속되는 것은 왜일까? 최근 공화당 의원들만이 오바마 행정부 이후 그의 대법관 지명을 유독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부시 행정부 시절 지명된 새무엘 엘리토 주니어(Samuel A. Alito Jr) 대법관에 대한 인준 투표 결과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오히려 정당별 지지가 나눴다. 찬성 58표, 반대 42표로 단 4명의 민주당 의원만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당파적 표결의 결과는 연방대법원 구성이 그만큼 미국 정가에서 양보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신직 9명의 연방대법관은 정권의 시한을 넘어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두 명의 뉴욕 출신 여성 대법관을 미국은 가지게 되었다. 이분들을 포함, 세 명의 여성 대법관들이 연방대법원에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진보 진영의 리더였던 폴 스티븐스 대법관의 후임으로 취임한 케이건 대법관이 당장은 보수와 진보의 지렛대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겠지만, 단순한 이념의 대립을 넘어 미국 내 여성과 인권, 소수자 보호 등을 위한 혜안으로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