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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넛지(Nudge)

여미숙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

"엄마, 그거 취소하면 안 돼요?"

내가 장기기증서약을 했다는 말을 들은 딸아이가 아주 심각하게 묻는다. 운전면허증에 표시되는 거면 취소할 수도 없느냐고….

장기기증이라고 하니 거창한 거 같지만 내가 서약한 건 그저 사후각막기증과 뇌사후장기기증뿐이다. 워낙 겁도 많고 엄살도 많은지라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든가 아니면 시신 전체를 기증한다든가 하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주일예배 때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면서 신청서를 주길래 큰 고민없이 체크만 해서 낸 거였는데, 나한테는 죽은 다음의 일이지만 우리 아이한테는 직접 겪어야 하는 일이라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너무 일찍 불쑥 말해버린 게 미안하기도 하고, '넛지(Nudge)'의 저자가 장기기증을 활성화하는 방법의 한 예로 든 일리노이주의 당사자승인등록제(당사자가 승인하면 장기기증시점에 유족의 추가적인 동의가 필요없는 것이 핵심이다) 같은 것이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5월31일 개정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장기이식절차를 간소화하고, 장기구득기관제도를 도입해 장기기증설득, 뇌사자발생신고, 뇌사판정, 장기적출 등 일련의 과정을 관리하며, 뇌사판정도 간소화하고, 또 유가족 동의요건도 완화하여 장기기증 활성화에 넛지를 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도 지금은 걱정스러워하고 있지만 나중에 컸을 땐 엄마가 장기기증했다는 사실이 자신도 장기기증하는 데 넛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재판상 화해나 조정을 하면 인지액의 1/2을 환급해주는 것도 화해를 하게 하는 일종의 넛지가 될 수 있을 텐데, 분노와 원망을 안고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 원만한 결론에 이르도록 어떻게 넛지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그나저나 원래 근시에다 조만간 노안도 찾아올 텐데 나중에 과연 내 각막이 쓸모가 있긴 할는지 살짝 걱정이 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