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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본부의 뜨거운 여름나기 - 팔레모 협약과 ICJ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7월의 뉴욕, 유엔본부의 여름은 뜨겁게 시작되고 있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주요 회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7월 중순이면 조금은 여유를 갖는다. 실제로 몇 주씩 출신지를 방문하는 등 휴가를 떠나는 직원들도 꽤 있다.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주요 일정으로 미뤄두었던 현장 방문 등 행사를 갖기도 한다. 그런 유엔본부에서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안보리에 회부된 지 한 달여를 지나면서 주요국들과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물밑 협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주하게 여름 맞이를 시작하는 유엔본부에서, 최근 있었던 법률 관련 현안을 돌아보기로 한다.

# 6월 중순 유엔본부 총회장에는 다소 생소한 주제의 고위급 회의가 개최되었다. 유엔 국제조직범죄협약(UN 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출범 10년을 기념하는 회의가 개최된 것이다. 2000년 12월 이태리 팔레모에서 협약이 전격적으로 합의되어 일명 '팔레모 협약'이라고 불리운다. 알리 트레키 유엔총회 의장의 주재로 진행된 회의에 이태리와 프랑스의 법무장관, 멕시코의 외교장관 등의 고위급과 반기문 사무총장, 유엔마약범죄사무국(UNODC, UN Office for Drug and Crime) 코스타 국장 등이 참석했다.

'팔레모 협약'10주년회의 참가 · 한국의 이행입법 정비 등 설명

본 협약은 조직범죄 척결을 위한 각종 입법조치, 국제협력 등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인신매매 방지의정서, 불법이민 방지의정서, 총기류규제 의정서 3개를 두어 범죄조직이 주로 개입하는 범죄에 대한 상세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 적용범위가 워낙 광범위해서 사실상 형사 일반법적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조직범죄단체 개입 여부를 불문하고 체약국 국내법상 법정형이 징역 4년 이상의 모든 범죄에 적용되며, 미국의 조직범죄단체처벌법(약칭 'RICO')을 모델로 삼아 법인 형사처벌, 공모죄 인정 등 영미법적 요소를 담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번 회의 참석자들은 조직범죄가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며 국가 안정을 저해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팔레모 협약이 그 대응의 핵심적 도구로 역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이태리 등은 협약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응에 대한 검토 매카니즘 필요성을 강조하며, 조직범죄 척결과 관련하여 자국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타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대표로 참석한 스페인은 협약의 서명과 비준 완료 내지 이행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우리나라 대표로 총회 연단에 오른 필자는, 세계화에 따라 조직범죄의 속성이 변화하며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팔레모 협약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국제적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차원에서 2011년을 목표로 이행입법 정비와 비준을 서두르고 있으며, 그간 자금추적 시스템 정비, 범죄예방 및 형사사법 관련 국제워크숍 개최 등의 노력을 설명하였다. 특히 한국에서 개최될 2011년 제4회 국제검찰총장회의를 소개하고 국제형사사법 시스템 강화 및 국제협력의 장이 될 것이라고 알리자 각국의 관심이 이어졌다.

우리의 경우, 협약 이행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00년 본 협약 및 의정서에 모두 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국내법 정비를 이유로 비준을 미루고 있다. 협약 출범 10년이 가까워 오면서 당사국이 154개국에 이르러 국제적인 보편적 규범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협약의 내용상 국내법 정비가 시급하다. 범죄단체 지원죄와 사법방해죄를 도입하고 자금세탁 전제범죄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의 단계적 행위를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추고 초국경적 조직범죄 척격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는 데 우리가 뜻을 모아야 할 때다.

# 지난 6월29일 국제사법재판소(ICJ :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재판관 보궐선거가 있었다. 유엔총회와 안보리에서 각각 동시 선거를 실시했는데, 중국의 전 외교부 조약국장 출신의 쉐한친(Xue Hanqin) 대사가 단독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중국의 시지우앙(Chi Jiuyong) 전 재판관의 사임에 따른 잔여임기의 보궐선거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ICJ 재판관을 1석씩 배정받는 관행을 존중하여, 안보리에서 15개 이사국 전체의 지지를 받았고 총회에서도 152개국 투표, 150개국의 찬성표를 받았다.

ICJ의 재판관은 어떻게 후보 추천되어 선출될까? 먼저, 헤이그 소재 상설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의 각 국별 재판관단이 재판관 후보를 추천하게 된다. 그 명부에서 안보리 및 유엔총회가 각각 독자적으로 투표를 진행하여 절대 다수표(absolute majority)를 얻은 후보자가 선출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나라 4명의 PCA 재판관단은 중국측의 후보 추천 요청을 받고 자체 검토를 거쳐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접수하는 절차를 거쳤다.

국제사법 재판관 보궐선거 · 중국 외교부출신 단독출마

이로서 퇴임하는 시지우앙 재판관은 올해 83세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재판소장을 역임하면서 국제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선출된 55세의 여성 외교관 출신의 쉐한친 재판관에 대한 기대는 새롭다. 주로 외교부에서 근무하였지만 북경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8년 중국 변호사시험을 합격한 국제법 전문가라는 점에서,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ICJ는 유엔총회, 안보리 등과 함께 6대 유엔의 부속기관이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창설에 합의된 이후, 45년 6월26일 유엔의 최초 회기에서 유엔헌장과 함께 채택된 ICJ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재판소는 분쟁 당사국의 분쟁에 대한 사법적 판단 외에도, 유엔총회 및 안보리를 비롯한 유엔 기구의 요청에 따라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제시할 수 있다. 결국,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제법에 근거한 구속력 있는 사법적 판단을 제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다만 판결의 구속력은 당사국에게만 미치며, 사건은 1심으로 종결되고 상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안보리·유엔총회 동시투표 · 150개 국가서 찬성표 얻어

2009년 유엔총회에 제출된 ICJ 보고서에 의하면, 동시에 6건의 사건을 심리할 정도로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해 평균 2~3건 정도의 사건 처리가 되었으나, 최근에는 계쟁사건이 다양화, 복잡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처분(provisional measure)을 신속하게 인용하는 등 사법절차로서의 효율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Georgia v. Russian Federation 사건의 인종차별철폐협약 적용에 관한 분쟁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2개월여만에 가처분 결정이 인용되기도 하였다. 다만 아직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사건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법절차를 통한 국제분쟁의 해결이라는 방식이 낯선데다가, 강제관할권(compulsory jurisdiction)을 수용한 국가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ICJ의 강제관할권을 수용한 국가는 현재까지 66개국이고,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금년 5월 일본은 호주로부터 포경(whaling)에 관한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ICJ에 제소를 당했다. 호주의 일방적 제소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심히 유감스런 일이나 법률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제환경단체와 호주 정부는 지속적으로 일본의 폭탄작살 등을 이용한 포경행위를 비난해 온 바 있다. ICJ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당사국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강제관할권을 수락한 국가간에는 한 국가의 일방적 제소로도 사건이 회부될 수 있다. 호주와 일본은 각각 강제관할권을 수락한 국가로서, 호주의 일방적 제소로 관할권이 성립한 것이다. 앞으로 ICJ에서 양국간의 법률적 공방 및 결과가 주목된다.

이제까지 있었던 ICJ의 일부 판결에 대하여 사법적 판단을 벗어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재판관 1석씩을 배정하는 관행도 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2009년 유엔총회에서 투표 방식이 유엔총회와 안보리에서 동시에 실시되어 절대 다수표를 받아 당선되므로 안보리 이사국의 경우 사실상 2표를 행사하게 된다는 점에서 유엔헌장상 모든 회원국의 주권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한 국가가 제기하기도 했다.

재판관 15명 임기는 9년,  3년마다 선거… 5명씩 교체

이러한 ICJ 재판부는 9년 임기의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3년마다 실시되는 선거로 5명씩 교체되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관은 각 출신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외부의 정치적, 외교적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재판소에 제기된 경우, 당사국 국적을 가진 재판관은 오히려 그 사건에 출석할 권리를 가진다(ICJ 규정 제31조 제1항). 물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송에 참여하는 당사국이 자국 국적의 ICJ 재판관이 없을 경우 그 사건에 한하여 관여하는 임시재판관(ad hoc judge)을 선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시재판관은 반드시 당사국의 국적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다른 재판관과 완전히 동일한 조건으로 사건의 모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그러나, ICJ에 제소된 사건에 당사국 국적의 재판관 관여를 전제로 임시재판관 제도를 둔 것에 비추어 보더라도 자국적의 재판관 진출은 중요하다. 현재 지역적 배분의 아시아 몫 재판관은 단 2명 뿐으로, 일본과 요르단 재판관이 활동 중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왕세자비 부친 히사시 오와다가 ICJ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제적 역할관계에 비추어 우리의 재판관 진출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유엔 개혁 차원에서 ICJ 재판관 증원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를 위해 우리 법조 전체의 지속적인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