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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잡종강세(heterosis)"

신우철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오는 25일이면 한국전쟁이 만 60주년을 맞는다. 어쭙잖던 나라꼴을 그나마 풍비박산 내버린, 동족간 한바탕 어리석은 불질이었다는 데 새삼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참화의 잿더미 속에 향후 대한민국 발전의 불씨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도 또 다른 일면의 진실이리라.

지연·혈연이 얽힌 신분제의 근간을 아래로부터 뒤흔들어 평등사회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유엔군의 참전을 계기로 기층 수준에서부터 국제사회와의 접촉이 전면화되었다. 전쟁이라는 엔트로피의 대폭발 상황에서 안팎으로 '총체적 잡탕'의 형국이 조성되었다고 할까.

생물의 세계에서는 잡종강세와 잡종약세의 사례가 모두 발견된다고 하지만, 법제의 세계에서는 잡종강세가 진실 쪽에 가까운 듯하다. 헌정제도만 두고 보더라도, 순수한 대통령제가 성공한 사례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의회의 구성에서도 비례대표제와 다수대표제를 적절히 혼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법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4단계 법원조직과 사법연수원 제도는 전전(戰前)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각각 수입·가공된 것이며, 법관 10년 임기제는 전후 일본국헌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적법절차의 사법원칙을 담은 헌법 제12조의 이중부정 구문은 영국의 마그나카르타가 그 원전이며, 근년에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의 혼성모방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2원적 경쟁시스템이 위헌심사의 활성화를 낳은 것도 결국 '잡종의 힘' 아니겠는가. 그 구체적 제도형성에서도 잡종은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헌법 제107조의 '재판의 전제성' 개념은 오스트리아헌법에서 들여왔고, 헌법재판관 선임에서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의 '3·3·3 배분방식'은 이탈리아헌법에서 들여왔다.

○○식(式) 또는 ○○형(型)이란 레테르가 도저히 달라붙지 않는 '총체적 잡종'의 우리 법제. - 이것이야말로 해방과 건국 이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발전시킨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시야를 넓혀보면, 뺏고 뺏기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베끼고 베껴지는 제도의 역사는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법조양성에서의 순혈주의야말로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잡종의 힘을 거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로스쿨제도는 과연, 우리 법조에 건강한 '잡종의 피'를 공급하는 파이프가 되어줄 것인가? 로스쿨 신입생들의, 그야말로 '잡탕'인 기말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다시금 교차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