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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밝은 창 아래서 향 피우고

구본진 진주지청장

조선 왕실에서 의료를 담당했던 석농 김광국은 서화수집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수집한 화첩에 유한준이 붙인 발문 '석농화원발'에는 "갑자년(1744년) 여름 나는 와룡암으로 상고자(尙古子)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면서 서화를 논했다"라고 써 있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들은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서화를 감상하는 것이 일상적인 취미생활이었다. 시를 짓거나 서화를 감상할 때는 향을 피웠고, 손님이 오면 향을 피워놓고 차를 대접했다.

지방에서의 지청장 생활은 무미건조하고 때로는 심신이 고달프기도 하다. 이럴 때 마음을 달래기에는 향만한 것이 없다. 조선시대 신흠도 "깊은 산중에 고상하게 깃들여 살자니 향로에 향 사르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퇴근해서 관사에 돌아오면 우선 향로에 아주 순한 가루향을 넣고 불을 지핀다. 가루향을 피우는 건 조금 불편하지만 자연을 호흡하려면 이만한 것이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향 내음이 코 끝에서 조금씩 느껴지는데 마치 난꽃 향기처럼 달콤하다. 송나라의 주희가 '향계(香界)'에서 "신통한 향기는 고요하지만 더욱 통하네"라고 하였는데 이런 향이 아닐까 싶다.

향을 피우면 마음이 안정되고 잡념이 사라져서 오랫동안 책을 보아도 힘들지가 않다. 조선의 선비들이 책을 읽거나 불경을 베껴 쓸 때 항상 향을 피웠고 고승들이 참선을 하면서 향을 피웠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몸에 향을 발랐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에서는 은행과 회사 사무실에서 레몬향을 계속 맡게 하였더니 업무효율이 올라갔다는 보고가 있다.

향을 가까이 하면 소화도 잘 되고 건강이 좋아진다. 히포크라테스는 "매일 식물의 향으로 목욕을 하면 장수에 도움을 준다"고 하였고 중국 최초의 의학서인 '황제내경' 등에서 향에 의한 치료를 치료방법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1차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화학자 레이나이마리시는 화상을 입은 군인에게 향을 맡게 하였다가 신기한 치료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향치료법'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향은 절에서나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바친 세가지 예물 중에 침향이 포함돼 있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는 성체에 침향가루를 발라 안장했다.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에서도 향을 피우고 조선왕실에서도 침향을 피웠다. 누구 표현대로 '광란의 시기'에 향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향은 멀리서도 맡을 수 있고 오히려 멀리서 더 맑게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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