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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스위스의 꽃 직접민주주의

김민조 변호사(서울지방변회 사무차장)

아름다운 스위스.

스위스를 가보았건 가보지 않았건 스위스가 주는 이미지란 무언가 깨끗하고 청명한 것. 들꽃이 만개하고 잔디가 푸르른 언덕에서 하이디가 요들송을 부르는 나라.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사랑하는 이와 거닐고 싶은 곳.

이토록 아름다운 스위스에서는 동물마저도 격이 다른 삶을 사는 걸까? 지난 3월7일, 스위스에서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사로잡은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 바 투표의 이슈는 동물학대사건에 대하여 동물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를 26개의 칸톤(일종의 州)에 의무적으로 도입하자는 내용이었다.

동물학대사건 동물측 대리, 동물변호사법안 결국 부결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스위스는 동물을 위한 복지가 세계에서 가장 잘 입법화된 국가이다. 무려 180쪽에 달하는 스위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스위스에서는 돼지나 금붕어와 같이 사회성이 있는 동물을 한 마리만 키운 경우 벌금형에 처하게 되고, 말과 젖소는 정기적으로 외부에서 운동을 시켜주어야 하며 애완견의 주인은 적절한 사육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심지어 이름조차 생소한 아프리칸크로우드개구리를 키우려면 상시 18~22℃의 온도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규정까지 존재한다.

이번 동물변호사법안 주민발안은 총 14만4,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투표자의 70.5%가 반대함으로써 입법이 좌절되었다. 이미 동물을 위한 복지법이 충분히 제정되어 있고 동물변호사까지 의무화할 경우 이를 충당할 세금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힘을 얻은 까닭이다.

그런데 위 동물변호사법안이 특히 주의를 끌었던 것은 그 아이디어의 흥미로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와 같은 이슈를 놓고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는 시스템의 특이성에 있다. 즉, 그동안 헌법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주민투표, 주민발안제가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일견 소소해 보이는 이슈에까지 유효하게 시행되고 있다는 데 대한 일종의 놀라움이다.

2009년 크레디트 스위스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스위스 최대의 히트작이 무엇인가 하는 개방형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답한 것은 쵸콜렛도, 시계도, 은행도 아닌 직접민주주의였다. 실제로 지난 150년간 전 세계에서 실시한 국민투표 총수의 절반은 스위스에서 이루어졌으며, 1848년 스위스 연방이 출범한 이후 연방차원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만도 500건에 달한다고 한다.

소소한 이슈에도 주민투표, 1848년 이후 500건 실시

스위스 연방에서 실시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제도에는 주민발안(initiative)과 주민투표(referendum)가 있다. 주민발안제는 18세 이상 선거권자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제안된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이를 최종 채택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서, 유권자 스스로 법률안을 형성하고 그 채택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주민투표제는 유권자 5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이를 채택할지 거부할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제도라는 점에서 주민발안제와는 차이가 있다. 참고로 스위스의 인구 총수는 약 760만명이다.

스위스에서 주민발안과 주민투표가 실시될 경우에는 투표통지서와 함께 이슈가 되는 법률안에 대한 전문가집단의 찬반 의견은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당해 법률안 시행에 필요한 예산과 추후 경제효과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류더미가 함께 배달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투표자들은 법률안에 대한 찬반입장을 정하고 투표에 임함으로써 정책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동전의 양면을 가지고 있듯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 2월호 타임지에 따르면,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폐해 중 하나는 극우세력 및 다수의 보수세력에 의한 밀어붙이기식 주민발안에 따른 입법 부작용이었다. 일례로 2009년에는 무슬림을 적대시하는 우파로부터 회교도사원의 지붕에 뾰족탑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안되어 투표자 57%의 찬성을 얻어 입법화되기도 했다.

주민발안 입법 부작용 많아, 직접 민주주의 우려 소리도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다수의 스위스 정치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게 황당무계하고 사소한 이슈까지 국민투표에 붙여짐에 따라 국가적 비용 소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위 동물변호사법안 또한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스위스인들 사이에서는 한눈에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알프스 산을 제거할지 여부도 국민투표에 부쳐보자는 자조적인 농담도 유행한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은 평균 43% 내외라는 전반적인 투표율 저조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나마 최근 몇 년간 가장 첨예하게 종교적, 이념적인 다툼을 이끌어냈던 위 무슬림 사원 뾰족탑금지 법안마저 55%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67억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파란별 지구,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스위스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총총이는 발걸음으로 투표소에 들러 '26개 칸톤에 동물변호사를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투표용지에 동그라미를 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왠지 그 모습마저 더욱 동화 같은 것이 아무래도 스위스 최대의 히트작은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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