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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아이티, 예일로스쿨 그리고 '헤럴드 高' 만나기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 지난 1월13일, CNN 방송은 아이티(Haiti) 지진 사태를 하루 종일 보도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아이티가 직면한 자연 재해는 인간 문명의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극심한 피해를 남겼다. 수도 포르트프랭스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수천만 명의 피해자들이 가족과 안식처를 잃었다. 아직도 23만 명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상태인데다가, 백만 명 이상은 치안이 불안한 상태에서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티 91년 유혈쿠데타 발생 2만 여명 목숨 걸고 美로 탈출

사실 아이티는 이러한 자연 재해가 아니더라도 독재로 인한 빈곤에 고통받는 국가였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1990년 첫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유혈 쿠데타로 실각했고, 2000년 다시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4년간 거듭된 군사반란으로 결국 망명하여 남아공에 체류 중이다. 200년 역사에 유혈 쿠데타가 30번 넘게 일어날 정도로 정정이 불안했다. 인구의 8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남미 최악의 빈곤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군부의 집권은 종료되었으나, 장기간의 정치 혼란으로 부패가 만연하고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뉴욕의 유엔본부는 아이티 강진으로 인한 피해 소식에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미 아이티에서 유엔은 7,000명의 평화유지군과 경제적 지원을 위한 많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유엔 건물의 붕괴로 직원 37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아이티를 방문하여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구조 및 수색작업을 살펴보았다. 국제사회의 아이티에 대한 지원 약속도 이어져, 3억 6,000만 달러에 달하는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유엔의 수장으로서 전 세계를 향해 아이티에서 인류가 직면한 고통과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과 관심을 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 1991년 9월, 아이티에는 유혈 쿠데타가 일어났다. 1990년 첫 민주 선거로 당선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실각하고, 그 지지자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이 고문당하는 등 정치적 참극이 벌어졌고 아이티인들은 조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낡은 고기배 등에 몸을 실은 아이티인들 2만3,000명이 목숨을 걸고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다.

美 난민 인정 않고 송환·수용, 예일대 로스쿨생들 법적 대응

그러나, 아이티를 떠난 정치 난민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경제적 난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미국의 이민국은 이들을 해상에서 아이티에 송환하거나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했다. 국제사회도 가난한 중남미의 소국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미국의 이중적 난민정책에 분노한 예일 로스쿨의 학생들이 헤럴드 고(Herold Koh, 한국명 '고흥주') 교수를 찾아가 소송 제기를 상의하며 도움을 청하게 된다.

고 교수가 보기에, 로스쿨 학생들의 취지는 좋았지만 그들은 미국 법무부를 상대로 싸움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수천 명의 법률가와 엄청난 자료를 확보한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 법조인들의 법정 다툼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것 자체였다. 이해관계자인 아이티 난민조차도 자신들을 돕겠다는 학생들을 믿지 않았다. 소송의 중심에 섰던 고 교수는 1985년 예일 로스쿨의 교수가 되었으니 아직 학계에서 자리를 잡던 중이었을 것이다. 특히 당시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중요한 임명직에 오를 후보로 평가받았던 상황이므로 더욱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도움 요청받은 헤럴드高 교수 정부상대 소송 쉽지 않은 결단

이미 아이티 난민에 대하여 법적 구제를 거부하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 그 기판력을 넘어서야 하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이 행정부의 난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사실상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고 교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8개월에 달하는 소송 기간 동안 로스쿨 학생들은 좌절과 고통이 반복되는 과정을 딛고 일어선다. 15명의 로스쿨 학생들을 비롯하여 총 80여명이 달려든 노력으로, 결국 1심 법원으로부터 관타나모에 억류된 아이티인들의 미국 입국 결정을 이끌어내는 승소를 거두었다.

법정다툼 18개월… 1심 승리, 억류 아이티인 구제절차 진행

물론 대법원에서 기각되어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 소송의 영향으로 당시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수용되어 온갖 불이익을 받던 수많은 아이티인들에 대한 정상적인 법적 구제절차가 진행되는 나름의 결실을 갖게 된다.

로스쿨 학생들과 교수가 국제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먼 나라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권 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브란트 골드스타인의 'Storming the Court'은 이러한 실화를 논픽션 문학으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홍승기 변호사 역, '치열한 법정'). 저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 교수가 "그저 똑똑한 엘리트가 아닌 무한한 인류애를 지닌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 2009년 9월17일, 작은 거인은 오바마 행정부의 최고 법률 자문의 자리로 돌아왔다. 헤럴드 고 교수가 예일대 로스쿨 학장을 거쳐 국무부 법률고문(legal advisor)으로 상원의 인준을 거쳐 취임한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역대 최고위급에 임명된 것이다.

예일대학 로스쿨 학장 거쳐 오바마 행정부 법률고문으로

차관급이라는 위상도 그렇지만,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의 역할과 비중이 남다르다. 수하의 법률팀은 70여 명의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다.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만을 위한 중요한 국제법 자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 학장의 다양한 경험과 활동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날 거행된 취임선서식에는 어머니 전혜성 박사와 가족, 동문 등 총 4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수많은 2세, 3세 한국계 젊은이들이 미국에서 법률가의 길을 선택하였지만, 공직을 통한 헌신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많지 않았던 탓에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가을 유엔총회 기간,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특유의 겸손한 태도는 어머니 전혜성 박사의 가르침, '덕승재(德勝才)'에서 우러나는 듯 했다.

고 학장의 아버지, 고광림 박사는 장면 정부 시절 외교관으로 미국에 왔으나 군사혁명 이후 망명하여 법률을 공부하였고 예일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강단에 섰다. 6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어머니 전혜성 박사도 사회학 박사를 취득하고 예일대 강단에 섰다. 고 학장은 6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두 번의 수술을 받는 역경을 극복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그의 경험과 가족사가 그를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아이티 난민 법정 투쟁과 같이 쉽지 않은 길을 걷도록 했으리라.

지난 3월말,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 총회에 참석한 그를 만난 것은 더욱 감격스러웠다.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으로서는 최초로 ICC 공식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침략범죄 관할권 행사 등과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와 재판소간의 역할 조정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그의 등장은 전 참석자들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향후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와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헤럴드 고가 서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美정부의 양심 지키는 역할 '글로벌 리더십' 발휘 기대

특히, 그는 지난 부시 행정부 하에서 벌어졌던 국제법의 좌초현상(breakdown of international law)을 진단하고 미국 정부의 양심을 지켜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9.11. 이후 미국에 제기된 인권과 국제법 관련 문제들, 예를 들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테러리스트에 대한 군사법원 관할권, 무인공격기를 이용한 테러리스트 은신처 공격의 합법성 등의 산적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9년간 축적된 해묵은 논쟁거리들이긴 하나,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한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의 발휘라는 측면에서 해법이 기대된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 국무부의 외교 전략이 '법적 수단을 활용한 스마트 파워(smart power)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버드대학의 조지프나이 교수가 주창한 스마트 파워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배합이 기본이다. 그 과정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것은 물론이다.

# 고 학장이 예일대 강의시간에 아이티 사건을 두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과정은 사람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을 구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를 구하기도 합니다." 우리 젊은 법조인들도 국제적 이슈에 가슴을 열고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봉사와 헌신할 수 있는 열정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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