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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 유감"

신우철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법서 속의 '다수설'에 의심의 눈길부터 던지는 습벽은 어쩌면 최루탄 연기 속에 형성된 학창시절의 반골기질 탓인지도 모르겠다. 천성이 그렇다보니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치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헌법 제49조의 '다수결 원칙'이야말로 우리 입헌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며, 법전 속 모든 법들의 정당성의 원천이건만, 그 압도적 위력이란 한낱 '숫자의 허상'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록은 역작 '국민합의의 분석: 입헌민주주의의 논리적 기초'에서 다수결 민주주의의 허상을 꼬집어낸다. 선거구의 완전한 다양성이 보장되는 상황이라면, 전체 국민 50%의 찬성만으로 국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으며, 그 중 과반수의 찬성으로 입법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결국 국민 25%의 찬성으로 입법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가설이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46.1%에 불과했다. 우리 선거제도가 상대다수대표제를 취하여 과반수득표를 요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균 55% 지지로 당선된다 하더라도 전체 국회의원이 반영하는 '민의'는 25% 남짓의 수치다. 게다가 18대 국회의원들의 본회의투표율은 69.8%로 미국 상원의 97.6%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가운데 다시 과반수로 결정되는 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이란 최악의 경우 8.75%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된다.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형식적 법률'이 국민 10분의 1의 의사조차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 참담함! 여기서 나는, 민주주의란 '머리를 때리는' 힘의 원리가 아님은 물론, '머리수를 헤아리는' 수의 원리만도 아닐 거라고 생각해본다. 사람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깃든 '이(理)와 심(心)의 원리'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일 것이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페더랄리스트 페이퍼>에서 그토록 경계했던 것도 입법부에서의 무분별한 다수의 찰나적 열정 아니었던가.

법률가의 임무가 '법을 말하는 무생명의 입'에 그쳐서는 안 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의 지배'란, 법전 속의 글자들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법률가의 이성과 심성으로써 힘의 논리, 수의 논리를 당해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정치가들의 예비등용문인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예비법률가들의 머릿속과 마음속이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지 뜬금없이 걱정이 앞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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