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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초임판사

박영재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

봄기운이 연인처럼 감미롭게 다가오던 어느 날, 초임판사 시절 모셨던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안하셔서 연락처도 모르고 있던 차에 오랜만에 전화를 받아 반가운 마음으로 안부를 여쭙고 제 근황을 말씀드리면서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그 때 중학생이던 자제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레지던트가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는, '그렇구나, 어느새 세월이 그만큼 흘렀구나' 라는 생각 한편으로, 애틋한 초임판사 시절의 기억이 아지랑이같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오늘처럼 맑고 밝았던 봄날,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겁먹은 모습으로 부임한 첫 법원에서, 부장님과 선배 법관들로부터 들었던 법관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앞으로 해야 할 바람직한 재판에 관한 말씀. 그리고 그 말씀보다 더 와 닿았던, 해박한 법률지식 속에 녹아 있는 그분들의 순수한 마음과 세심한 배려.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만 앞서던 필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신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나도 저분들처럼 실력을 갖추면서도 따뜻한 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길지 않은 판사 이력을 되돌아보면, 배석판사 시절 어려운 사건의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힘들어 했던 때가 있었고, 재판장이 되어서는 어떻게 공평하면서도 멋있게 재판을 진행할지, 올바른 결론을 내려 분쟁을 잘 해결할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고민했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자부심을 갖고 판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버팀목은 선배들에 대한 동경과 초임판사 시절의 그 각오였던 것 같다.

지난 2월22일자로 법조경력 5년 이상인 신임판사 28명, 이번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9기 신임판사 89명이 이미 판사의 길에 들어섰고, 법무관을 마친 52명이 신임판사연수를 마치고 4월1일자로 새로 판사로 임명된다.

서산대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눈에 쌓인 들길을 걸어갈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를 말라. 내가 밟고 가는 발자국이 뒤따르는 사람에게는 길이 되느니라(踏雪野中去 不雖胡亂行 / 今日我行跡 隨作後人程)."

지금 나는, 나를 이끌어주셨던 많은 발자국들을 기억한다. 반듯하고, 정의로우며 따뜻한 발자국들…. 그래서 이 봄날, 나도 내가 따라왔던 그 발자국들처럼 언제 어디서든, 어지럽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 하나, 다시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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