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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미국법원, 다양성 그리고 판사되기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미국에서 최초의 한국계 연방법원 판사가 곧 탄생한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2세 루시 고(한국명 고혜란)를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지명했다고 알려졌다. 고 판사는 2008년 아놀드 슈워제너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로부터 샌타클라라 주 고등법원 판사로 지명되어 근무해 왔다. 한인 차세대주자들이 공직과 정계 진출을 통한 리더십의 발휘를 본격화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루시 고 판사는, 하버드법대를 졸업한 후 워싱턴에서 연방 법무차관 특별보좌관 및 연방 법무부 LA검찰청 검사 등으로 다양한 공직경험을 거쳤다. 특히, 연방검찰청에서 사기사건 전담반 검사로 활약했고, 실리콘밸리의 로펌에서 기업 변호사로서 경험을 쌓았다. 지난 16년간의 검사, 변호사로서의 다양한 법조 경험을 토대로 판사로 지명된 것이다. 이제 상원의 인준을 거쳐, 40대 초반인 루시 고 판사는 아마도 종신제 미국 연방법원의 새내기 판사가 될 것이다.

◇ 한인최초 연방판사 곧 탄생 '루시 고' 上院 인준만 남겨

미국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남다르다. 주 법원 판사도 물론이거니와, 연방법원 판사의 권위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 전역에서 연방법원을 구성하는 판사의 수가 대법관 9명, 고등법원 판사 179명, 지방법원 판사 655명 등 총 85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오를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지난 해 8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뉴욕 빈민가 출신의 소토마요르가 최초의 히스패닉 여성 연방대법관이 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지명이 있기까지 수많은 후보군이 등장하였지만, 결국 미국 인구의 1/7을 넘어서고 있는 최대 유권자군인 히스패닉계를 배려하는 선택을 하였다. 소토마요르는 2차 대전 중 중남미 푸에르토리코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아버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공장노동자로 일했고, 소토마요르가 9세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간호사 일을 하면서 뉴욕 브롱스의 저소득층 주택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여성, 이민자 등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뉴욕주 검사출신 소토마요르 히스패닉계 최초 연방대법관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과연 어떠한 법조계의 경험을 쌓아왔을까?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소토마요르는 1980년대를 뉴욕 맨하튼 검찰청 검사와 기업 변호사로 경험을 쌓았다. 35년간 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 퇴임한 맨하튼 뉴욕카운티 검사장 모겐소 밑에서 소토마요르는 초임검사로 근무하면서 법조계 경험을 쌓아나갔다. 당시 처리한 강력사건 수사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모겐소 전 검사장이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 이후 보수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지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결국 1991년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판사로 지명되었는데, 이미 당시 최연소 지명에다 히스패닉계 최초의 연방판사 지명으로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작년 8월 소토마요르 대법관 취임 즈음, 필자는 뉴욕 동부연방법원을 방문하여 일본계 키요 마츠모토 판사를 만났다. 우리 국회 법사위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들과의 면담을 주선하여 만든 자리였다. 미국 동부 최초의 아시아계 연방판사가 어떤 인물일까 하는 기대감이 앞섰다. 친근감 있는 외모에 재판을 주재하던 법정 안에서 쿠키와 음료를 준비하고 차분히 답변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였다. 예정된 1시간의 면담 시간을 훨씬 초과하면서까지, 미국 판사의 선발 시스템에 대한 설명과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연방법원의 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1983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 동부연방검찰의 검사로서 21년간 근무한 후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판사가 되었다고 한다. 연방검사로 근무하면서 수사뿐만 아니라 송무 등 정부소송을 담당하기도 한 풍부한 경험이 자신의 큰 자산이라고 설명하였다. 추후 자료를 확인해 보니, 뉴욕 동부연방법원에서 활동 중인 현직 판사 14명 중 검사 경력 10년 이상을 가진 판사는 무려 10명에 달했다. 더구나 법원장인 레이몬드 디어리(Raymond J. Dearie)를 포함한 2명은 연방검사장(US District attorney) 출신인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결국 이와같이 법원을 구성하는 판사들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이 자연스럽게 그 판단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미국에서 판사는 과연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어떠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일까?

먼저, 모든 심급의 연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지명하며 연방 상원의원의 인준을 받게 된다. 임기는 종신제로 운영된다. 공식적인 과정은 아니나, 미국변호사협회(ABA)의 연방사법위원회(Committee on the Federal Judiciary)는 후보자의 판사로서의 자질, 경험, 평판, 사법적 품성, 법률잡지 논문의 게재 등 학문적 성과 등을 검증하게 된다. 그 위원회는 변협회장에 의하여 선정된 1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미 법조계에서 매우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각 판사 지명을 위해 위원회에서는 그 후보자, 후보자와 가까운 변호사와 판사, 검사 등과 비공개 인터뷰를 실시한다. 대통령이 이러한 검증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으나 그 평가는 언론과 상원에 많은 무게를 부여한다. 이러한 검증 이후 비로소 연방 상원 사법위원회(Senate Judiciary Committee)의 인준을 위한 청문회를 거치도록 한다.

◇ 연방판사 자격요건 없지만 변협 검증·상원인준 거쳐야

연방판사의 경우 어떠한 헌법적, 법률적 자격요건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상원 사법위원회의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법조인으로서의 경력, 평판, 국가관 등 자격을 검증받게 되므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사 등 공직을 포함하여 법조계에서의 최소 10년 이상 경력이 주요한 근거가 된다. 뉴욕주를 관할하는 제2항소법원 및 산하 6개 연방지방법원 소속 판사 66명을 분석한 결과, 최저 11년 이상 평균 20여년의 법조 경력을 토대로 판사로 임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절반이 넘는 54.5%는 검사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었고, 변호사 경력만을 가진 판사도 42.5%에 달했다.

미국 법원에서 판사가 되는 길은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우리와 같이 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쳐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대통령이 연방판사를 임명하기 위해서는 상원의원의 인준을 받게 된다. 주 법원의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경우도 있고, 시장이나 주지사가 임명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판사 직위별로 선출제와 임명제가 혼용되고 있는데, 뉴욕주 법원의 경우 형사법원은 대체로 임명제를 취하고 있는데 반하여 나머지 판사들의 상당수는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있다.

◇ 다양한 판사 충원시스템 국민적 지지와 신뢰 확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한국계 대니 전(한국명 전경배) 판사도 1987년부터 12년간 뉴욕카운티 검찰청 검사로서 근무한 경력을 토대로 1999년 줄리아니 뉴욕시장에 의해 한국계 최초로 뉴욕주 법원의 판사로 임명되었고, 현재 브루클린 형사법원의 판사로 재직 중이다.

미국 법원은 이러한 다양한 판사 충원 시스템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연방과 주 법원을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철칙은 경험이다. 변호사, 판사, 법학교수 등 다양한 법조 직역에서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토대로, 그 분야의 존경을 받은 이후에 판사로 임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선택인 것이다.

이제 한국계 루시 고 판사의 역사적 상원 인준을 앞두고 있다. 그녀가 미국 사법부에서 한국계 본격 진출의 신호탄으로, 향후 연방판사로서 맹활약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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