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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시보'의 첫 관문

양지열(사법연수원생)



90% 이상을 CG로 만들어 꿈과 현실을 호접몽(胡蝶夢)으로 바꿔놓은 영화 '아바타'가 세상을 뒤흔드는 이때. 법과 정의의 가르침을 찾아 나라 곳곳 명청(名廳)으로 흩어진 무리가 있으니 이름하여 '검찰 시보'. 이들이 넘어야 할 첫 산은 근엄한 지도검사도, 딴소리만 하는 피의자도 아닌 글쓰기였다.

기소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 공소사실을 제대로 쓰기는커녕 띄어쓰기, 맞춤법, 육하원칙, 외래어 표기법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꼭 받아쓰기 시험 치르는 초등학생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보들도 이 시대의 업(業)을 지고 살고 있는 자들. 휴대전화 터치 스크린을 미끄러지며 이모티콘 섞어 문자메시지를 날리던 곱기만 한 손에 송곳과 검은 노끈, 모나미 153 볼펜은 너무나 투박한 것들이었다.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쓴 이래 두 차례 밀레니엄 동안 문자(文字)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실과 의견을 전달하고 기록하는 최고이자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영화, TV가 등장하고 인터넷과 합종연횡하더니 어느새 각종 영상이 최고의 의사 전달 수단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눈동자가 휘둥그레지고, 편안히 앉아 재핑만 하면 '하늘(위성방송 SkyLife)'에서 볼거리가 우수수 떨어지는 시절에 누구인들 글쓰기가 편안할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그 흔한 디지털 사진이나 그래픽 하나 없이 공소장 일본(一本)으로 혹은 판결문, 의견서만으로 정리해 내야 하는 세상이 법조계. 영상이 주름잡는 홍진(紅塵)에 의연히 글의 힘이 질서로 남아있는 것이다. 최후까지 생존할 세종대왕의 후예는 문단이나 역사학계가 아니라 법조계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 실록(實錄)을 편찬하는 마음으로 혈중 알콜 농도와 무면허 운전 구간을 기록하고 검사 직무대리의 도장을 찍을 것이다.

어쩌면 공소사실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법정에서 상영해야 하는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는 검찰 시보가 실무관으로부터 기록 묶는 법 대신 모션 캡쳐링이나 3D 편집기술을 배워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법의 수호자'인 동시에 '문자(文字) 수호자'의 길을 배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1948년 7월17일 이후 반세기 만에 법질서와 문자 질서를 세우고 지켜 오신 선배 법조인들께 감탄과 존경을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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