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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사법연수생의 하루

박영재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

39기 연수생 수료식을 마치고, 40기 연수생들이 실무수습지로 떠난 사법연수원의 겨울, 언제 그랬냐는 듯 절간처럼 고즈넉하다.

점심식사 후 산보를 하다 보니, 눈 덮인 한적한 사법연수원에 불과 몇 달 전의 번잡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문득 웃음이 나온다.

「아침 9시. 이미 양복에 가방을 멘 연수생들이 연수원 중문을 통해 바삐 걸어 들어가는 게 보인다. 나도 빨리 가야지. 같은 반 연수생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강의실로 향한다. 잠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놓는 게 낫겠지? 짬짬이 숙제를 해야 어젯밤처럼 고생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도서관에 가방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떠오르는 생각. 맞아, 명색이 과제총무이니 강의실 가서 조원들 과제물을 모아야지. 어느새 9시45분, 제출시간보다 15분이나 더 기다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못기다리겠다. 그런데 왜 엘리베이터는 빨리 오지 않는 거지? 허겁지겁 교수님 방에 과제물을 제출하고 나오니 9시53분. 이런! 교수님께서 벌써 강의실로 가시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과제 제출하러 왔구나." 교수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으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수생을 기다리지 말고 좀 더 빨리 올라올걸.

10시 정각에 오전 수업 시작. 민재(민사재판실무) 수업은 한국말로 하는데도 잘 모르겠다. 옆에 앉은 △△△연수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아듣는 표정인데, 예습을 했나? 이렇게 과제가 살인적으로 많아서야 도대체 어떻게 예습을 할 수 있겠어. 그러면 쟤는 어떻게 된 거지? 그래, 1년 유예한 동안 미리 공부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유예할 걸. 아니, 정신 차리자. 눈을 크게 뜨고 모범판결에 열심히 줄을 그으면서 누구처럼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네. 그럼 그럼, 내가 원래 민법에 소질이 있지.

드디어 점심시간, 조원들과 함께 하는 점심은 비록 구내식당이라도 즐겁기만 하다. 우리 조원들만큼 착한 사람들이 있을까? 내가 인복이 있긴 해. 꿀맛 같은 점심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가고, 오후는 검찰실무 작성시간. 기록이 꽤 두껍네. 아니 그런데 웬 피의자가 이렇게 많고, 죄명이 도대체 몇 개야? 교수님 독촉에 괴발개발 써서 시간 내에 내긴 했지만, 내가 봐도 부끄럽기 짝이 없네. 녹초가 된 몸에 갑자기 엄습하는 시험에 대한 공포감.

오피스텔로 돌아가 쉬면 좋겠지만, 도서관에 가야겠지? 맞아, 오늘 저녁에 이번 달 생일잔치가 있구나. 조원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고 힘을 내서 오늘밤에는 과제와 예습, 복습까지 다해야지.」

겉으로는 사법연수원이 조용하니 살만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벌써 41기 사법연수생이 들어올 활기찬 3월을 기다리는 마음, 나 혼자 뿐일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