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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워싱턴을 떠나며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워싱턴에 온지도 2년이 훌쩍 지났다. 어느 덧 귀국할 때가 되어 그 동안 가깝게 지냈던 연방 법원행정처 직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대법원 앞으로 가는 도중 피켓을 든 시위대와 마주쳤다.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37년전 바로 오늘, 연방대법원이 낙태의 자유를 처음으로 인정했던 Roe v. Wade 판결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다. 그들의 평화로운 시위는 해마다 1월22일이면 37년 동안 어김없이 계속되었지만 아직도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낙태에 대한 견해는 판사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여전히 가장 뜨거운 이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1일 역시 연방대법원의 선거법 위헌 판결로 대통령까지 나서 정치권이 온통 시끄러웠다. 연방대법원이 5:4의 근소한 차이로 63년간 유지되어 온 기업의 선거광고 금지규정을 폐지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기업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이다. 이 판결은 정치자금 동원능력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미국에서 정치 판도를 바꾸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온 공화당은 이 판결을 환영한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익집단들의 로비자금이 정치권에 무제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의회와 협력하여 강력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사법권의 독립이 가장 잘 보장되어 있다는 미국에서 법원과 정치권이 충돌했던 역사는 훨씬 길다. 일찍이 알렉시스 토크빌이 간파한 것처럼 미국은 모든 정치적 문제가 사법적 판단으로 귀결되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Marbury v. Madison 판결이 내려진 직후인 1805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자신과 반대 정파에 속해 있던 새뮤얼 체이스 대법관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재판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탄핵소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의회는 제퍼슨 대통령 지지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고심 끝에 탄핵소추를 기각하였다. 이 사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판사에 대한 정파적 목적의 탄핵은 사라졌고, 그 이후 제기된 13차례의 탄핵소추는 모두 개인 비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1937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연방대법원에서 줄줄이 위헌판결을 받자, 사법부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이른바 '법원 재정비 계획(court packing plan)'을 세워, 70세가 넘어도 사임하지 않은 대법관 자리에는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여 사실상 대법관수를 늘리려 하였다. 그러나 이 법안 역시 여당이 다수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물론 위 두 경우 모두 물밑 대화와 자발적 양보로 원만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 측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밑바탕에는 의회가 다수의 힘으로 사법부를 몰아세운다 해도 결국 자신들의 정파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법부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에도 여전히 미국 사법부의 판결은 중요한 국가적 사안마다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컸고, 법원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 만큼 주목받기를 원하는 정치인이나 과격한 반대자들의 돌출적인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진 비판 이후에는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의 메카니즘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했던 큰 흐름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과 사법철학이 통하고 충분한 자질을 갖춘 판사를 지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의회는 재판의 기준이 되는 법률을 만들고,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들을 철저히 검증하여 인준 여부를 결정한다. 시민들은 평소 철저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자신과 철학이 같은 판사를 임명해 줄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지지정당을 다수당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에 적극 참여한다. 이번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판결에 대한 비판은 하되, 곧바로 의회 지도자들과 함께 판결의 취지를 살리면서 금권선거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정교한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것이다.

한편, 사법부는 알렉산더 해밀턴이 지적한 것처럼 칼(sword)도 없고 지갑(purse)도 없어 실상은 가장 약하고 덜 위험한 존재이다. 따라서 국민의 신뢰만이 존립의 근거가 된다. 사법부가 다른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도록 설계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판사의 독립과 국민의 신뢰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있다. 판사가 독립을 남용하면 국민의 신뢰는 떠나가기 때문이다. 사법철학자로도 유명했던 러니드 핸드 판사는 "나더러 플라톤이 말하는 현자(賢者)들 무리로부터 재판을 받으라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설사 나에게 그런 판사들을 뽑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똑똑한 판사들이 사법권의 독립을 마치 자신의 기발한 생각으로 세상을 계몽할 수 있는 권한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철저히 법률에 기초하여, 자신의 개인적 주관을 최대한 자제하고 누구에게나 상식적으로 수용가능한 해석론 중에서 하나를 신중히 선택할 때 국민은 신뢰를 보낼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결국 누구를 판사로 임명하느냐 만큼 사법부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한 중대사가 없다. 의회가 판사 한 자리의 인준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얼핏 임명과정이 정치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법복을 걸친 정치인은 판사가 될 수 없다. 인준절차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을 거쳐 여야가 모두 실력과 인품을 수긍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안정감 있는 인물이 아니면 그 문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는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이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근무하면서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현재 연방판사 중 한국인 출신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귀국을 앞두고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한국계 루시 고(Lucy Koh) 캘리포니아 주법원 판사를 연방법원 판사로 지명한 것이다. 필자와 나이도 같고 세계한인변호사회 심포지엄에서 함께 패널 토의에 참여했던 인연이 있어 그녀의 실력과 인품을 익히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언젠가 그녀가 연방판사로 지명되리라는 점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녀가 의회 인준절차를 무난히 통과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판사가 참 쉽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 년간 자리를 비웠던 법정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난생 처음 판사가 된 것처럼 설레고 두렵다. 이 마음이 오래 가길 바랄 뿐이다.

2008년 6월9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강한승 판사가 본 워싱턴 법조계'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그동안 워싱턴 법조계를 집필해주신 강한승 부장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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