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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2009년, 뉴욕 유엔본부를 회고하다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 2009년 3월6일 오전 유엔본부 컨퍼런스룸,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 International Tribunal for the Law of the Sea) 재판관 선거결과 발표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양법협약 당사국 중 155개국 정부대표의 투표를 집계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우리나라 후보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백진현 교수가 인도네시아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역사적 순간이였다. 고 박춘호 재판관의 후임 보궐선거로 치러진 선거여서, 당초 우리의 단독 출마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기존 관행을 깨고 인도네시아가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상대는 전 유엔대사 경력의 국제법 전문가였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외교적으로 가까운 이슬람, 아세안 및 도서국가 등을 상대로 선거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이 세를 형성할 경우 결과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 국제해양재판소 재판관 백진현 교수 압도적 당선

필자는 부임 직후 낯선 외교전의 최전방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홍보는 물론, 다양한 국가적 외교 역량이 총동원되고 있었다. 당시 박인국 유엔대사를 비롯한 외교관 전원이 투입되어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 157개국을 상대로 맨투맨 접촉을 계속했다. 2월 중순께 후보자도 현지에 합류하여, 각국 대사와 선거담당 외교관들을 직접 만나 설득작업을 벌였다. 매일 이른 아침 전략회의를 열고, 지지 확보 현황을 확인한 후 미흡한 지역에 대한 전략을 논의했다.

선거일이 임박해서는 아침, 저녁으로 후보와 함께 최종 상황을 챙겼다. 특히, 1차 투표에서 참가국의 3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는 경우 재투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앞서가는 것으로 상황은 분석되었지만, 2차·3차 투표로 가게 될 경우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실제 인도네시아는 이미 1차 투표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2차 투표만이라도 표를 달라는 읍소형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선거 당일, 개표 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백진현 교수와 나란히 앉은 필자의 손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결국, 155개국이 투표에 참여하여 1차 투표에서 113표를 획득하여 당선을 확정지었지만, 당선 요건인 104표에서 많은 9표의 소중함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가간 해양 관련 분쟁을 해결할 국제사법기구에 우리 법조인이 재판관으로 선출되던 그 순간을 한동안 잊기 어려울 것 같다. 백 재판관의 국제해양법 분야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이 인정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UNCITRAL 오수근 議長 연례보고에 새삼 자부심

# 2009년 10월12일 유엔총회 산하 제6위원회 회의실, 유엔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본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동 중인 이화여대 오수근 교수의 연례보고가 진행되고 있었다. 6개의 산하 실무작업반을 포함한 위원회의 최종 논의 결과를 전하고, 새로운 활동계획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새삼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각국 대표들은 의장직 수행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와 함께 최근 논의가 집중되었던 도산, 정부조달 등에 대한 성과를 기대한다고 언급하였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필자는 지난 9월 우리 대법원이 개최한 기업도산 관련 국제심포지엄을 소개하는 한편, 국제규범의 조화와 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UNCITRAL은 국제거래의 원활화와 투자 촉진 등을 위해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위해 유엔 차원에서 1966년 설립되었다. 1980년 국제물품 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 1985년 국제상사거래 중재모델법 등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총 60개의 회원국이 매년 6~7월 뉴욕과 비엔나에서 번갈아 본회의를 개최하고, 6개의 실무작업반 회의는 도산, 담보, 운송, 정부조달, 전자상거래, 중재 등으로 분야를 나누어 상반기 뉴욕, 하반기 비엔나에서 각각 1주일씩 열리고 있다. 이러한 회의 결과를 본회의 의장이 유엔총회 산하 위원회에 보고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시안 그룹의 컨센서스로 이와같이 의장에 추대된 것은 오 교수가 지난 2001년부터 도산 실무작업반 회의에 9년간 참여하면서 전문성을 토대로 신뢰를 쌓아온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무부에서 회원국 가입 이전부터 옵서버로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정부 대표로 계속 파견하여 국제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토록 한 것은 의미가 크다. 실제 국제거래 규범의 성안 작업이 최소 3~5년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분야별 전문가의 장기적 참여는 필수적이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우리 젊은 법조인들이 UNCITRAL과 같은 국제법률기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 첫 유엔총회 연설에 박수

# 지난 10월29일, 유엔본부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송상현 소장의 첫 총회 연설이 있었다. 1년간 재판소 활동에 대한 연례보고와 함께, 소장으로서 비전을 제시하였다. 최초의 한국인 국제사법기구의 수장으로서 192개 유엔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의 최고기관에 선 것이다. 국제형사사법이 지나온 길과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총론적 점검의 자리였다. 연설이 끝난 후 필자를 포함하여 총회장의 회원국 대표들은 진심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2009년은 국제형사재판소에 있어 역사적인 한 해였다. 수단 현직 대통령 알바쉬르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함께 재판소가 출범한 이래 최초의 본안 재판이 개시된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로소 본연의 사법적 기능이 시작된 것이다. 콩고의 반군지도자였던 루방가(Lubanga)에 대한 심리를 통해 아동군인(child soldiers)을 악용한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의 메시지가 국제사회에 전달되었다. 특히, 피해자 100여명을 재판에 참여시키고 증인 30명 중 22명에게 보호조치를 실시하는 등 절차에 있어서도 새로운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관심 제고로, 이례적으로 30여개국 정부대표의 발언이 뒤따랐다. 수단 등 일부 이해관계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들이 재판소의 최근 활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현재까지 발부되었으나 미집행 중인 총 8명에 대한 영장 집행에 대한 국제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집행 노력도 강조되었다. 우리의 경우 ICC 시스템을 만드는 로마규정 협상 초기부터 재판소가 본연의 역할을 하기까지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과, 2010년 5월 개최 예정인 로마규정 재검토회의에서 침략범죄 등 개정 논의뿐만 아니라 국제형사사법 시스템 전반을 검토하여 다양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경험을 공유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 법조인들 국제무대 진출 올해도 다양한 활동기대

# 2010년 경인년 새해가 밝아왔다. 뉴욕은 어느덧 새로운 국제질서의 태동으로 꿈틀대고 있다. 올해는 서울 G20 정상회의와 멕시코 기후변화회의 외에도 새천년개발계획(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정상회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틀의 국제적 논의가 예정되어 있다. 후한서 왕패전의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바람이 거세야 풀의 단단함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우리 법조의 국경을 넘은 새로운 도전과 활약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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