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의 리더십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지난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막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개막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18일 정상회의까지 무려 105개국의 정상이 참석한다고 한다. 2013년 이후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기 위한 역사적 순간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입장 차이가 커서 구체적 감축 목표에 대한 협상 타결은 불투명하지만, 정치적 선언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 미국의 엘고어 부통령 외에 각국의 정상 대부분이 불참한 것에 비하면, 이러한 의제가 국제사회 논의의 중심이 된 것은 확연하다. 이와같은 변화의 중심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있었다. 지난 9월 뉴욕에서 유엔총회 개막 직후 별도로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을 당시도 후진타오 중국 주석,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각국의 정상이 원탁회의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였다. 코펜하겐 회의를 앞두고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반 총장의 노력의 결과였다.

◇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상, 반 총장 막후 역할 두각

UN 사무총장은 과연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어떠한 조건의 사람이 선택되는 것일까? 반기문 현 총장을 포함해 총 8명의 UN 사무총장이 1946년 이래 유엔의 역사와 함께 했다. 먼저 유엔헌장 등에 자격 조건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무총장은 관례적으로 중소국가에서 선출되며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브라질, 인도, 일본, 독일 등 현재까지의 지역 강대국 출신도 자연스럽게 배제된다고 한다. 공식적인 규정은 없지만, 지역순환의 원칙 아래 안보리의 추천을 통해 유엔총회 의결을 거쳐 임명하게 된다. 다만, 유엔의 독자적 활동을 주장했던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갈리(Boutros Ghali) 사무총장이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연임이 좌절되면서, 가나 출신의 코피아난(Kofi Annan)이 선임된 후 10년간 연임되어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오랜기간 총장을 맡아왔다. 안보리가 추천할 후보자의 수에 제한이 없지만 안보리는 관례적으로 자체 투표 결과 최종 후보 1명만을 추천하기 때문에, 유엔총회의 의결은 상당히 의례적으로 진행된다. 결국,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G-5)의 막강한 영향력 하에서 UN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2006년 12월14일 역대 최초로 유엔헌장에 손을 얹고 유엔총회에서 취임선서를 하였다. 마치 미국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 당시 취임선서는 유엔 회원국의 대표인 라샤드 알할리파 총회 의장의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반 총장은 "양심에 따라 유엔의 이익을 위해 사무총장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어떤 정부나 다른 어떤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을 것을 선서한다"고 다짐했다. 이는 유엔헌장 100조의 국제공무원으로서의 중립성 규정에도 나타난다. 선출 과정은 비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입김 하에 있으나, 비당파성(impartiality)을 토대로 국제사회에 중재자로서 자리매김하도록 한 것이다.

◇ Secretary-General 사무장인가 총장인가

사무총장(Secretary-General)이라는 명칭은 비서, 사무장(Secretary)과 총장, 사령관(General)의 합성어이다. 당초 국제연맹의 사무국 수장에게 붙여졌던 명칭으로, 유엔으로 이어졌으나 당시까지 보편적 용어는 아니었다. 사무처의 수장으로서 독립적 업무 수행을 해야 하는 지위와, 안보리와 유엔총회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행정가로서 중첩적인 역할을 명칭에 담은 것이다. 유엔이 단순한 회의기구로서 머물 것인지, 세계 정부의 역동적 기능을 담당할 것인지에 따라 그 무게 중심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 요청은 국제정치의 현실,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영향력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외줄을 타는 곡예사에 비유되기도 한다('유엔사무총장', 김정태, 2007). 그런 의미에서 코피아난 전 사무총장의 "Secretary-General의 이니셜 SG의 진짜 의미는 희생양(Scape-Goat)"이라는 유머 섞인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의 중심에는 유엔헌장 제99조가 놓여있다. "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협한다고 자신이 인정하는 어떠한 사항에도 안보리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사무총장은 유엔 최고 행정관으로서의 지위와는 별도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어떠한 사항도 안보리를 소집하여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이제껏 국제기구의 수장에게 부여된 어떠한 권한도 능가하는 특별한 정치적 권한이다. 이를 토대로 비록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제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에 대한 사전조사, 정보수집, 분쟁지역 특사 파견 등의 적극적 역할이 보장되는 것이다.

◇ 역대 사무총장의 리더십 - 관리자·선구자·전략가형

이제까지 역대 유엔 사무총장들은 그 시대의 국제정치 상황 하에서 사무장(Secretary)과 총장(General) 사이에서 각자 상이한 리더십을 선보여 왔다. 그 유형을 관리자(manager), 선구자(visionary), 전략가(strategist)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From Manager To Visionary, The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Kent J. Kille, 2006). 특히 제2대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는 가장 성공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극을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에 유엔의 역할이 국한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선구자(visionary)로서 면모를 보였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당초 강대국에 의하여 정치적이지 않고 행정적 역할을 수행할 사무총장감으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오히려 역대 최고의 역동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유명한 일화인 1956년 발생한 수에즈 운하 사태를 살펴보자. 이집트 대통령으로 당선된 나세르가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에게 운영권이 보장된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을 하게 되고, 영국과 프랑스를 내세운 이스라엘의 이집트 침공으로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직접 관련된 문제라 안보리에서도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함마르셸드는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달라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유엔헌장에 입각하여 평화유지 노력에 나설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유엔 최초의 평화유지군이라 할 수 있는 UNEF(United Nations Emergency Force)를 이집트에 파견할 수 있었다.

그와 달리, 제4대 사무총장인 쿠르드 발트하임(Kurt Waltheim)은 전형적인 관리자형으로 꼽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근무경력으로 나치 의혹이 제기되면서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다. 결국 유엔의 리더로서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했다고 가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전략가형으로 평가받는 코피아난 사무총장은 취임 후 12개의 방만한 사무국 조직을 5개로 통폐합하고 1,000여명의 직원 감축을 단행하였고, 유엔의 활동을 안보, 인권, 개발의 3개의 목표로 정리한 후 새천년개발계획(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하에 2015년까지 빈곤감퇴, 질병예방 등 지구적 8대 목표를 공통의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친미 사무총장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 지원과 협력 하에 인도주의적 개입을 토대로 유엔의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이를 토대로 그는 2001년 유엔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 반기문 사무총장 리더십, 성공적 모델로 평가되길

유엔의 초대 사무총장인 트뤼그베 할브단 리에(Trygve Halvdan Lie)는 후임자인 함마르셸드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을 하도록 지명받은 것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고 한다. 어쩌면 당시보다 유엔 사무총장은 더욱 많은 난제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만난 반기문 총장은 특유의 온화와 성실함으로 거대 유엔 조직을 이끌며 기후변화, 국제테러, 금융위기 등 인류에게 다가온 위기의 과제들을 챙기고 있었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관리자형과 전략가형의 리더십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 반 총장의 첫 임기 3년을 넘어섰다. 초기의 영웅론적 접근을 넘어, 이제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실질적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때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이름이 새로운 국제기구 리더십의 성공적 모델로서 평가되길 다시금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