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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의 경계선에서

최승기(사법연수원 39기)

"저는 절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백하겠습니다"

"아니,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자백한다는 것인가요?"

"저는 무죄이지만, 믿어 주지 않으니까 자백하고 나중에 변호사를 사서 다시 얘기해 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항소심이고 대법원은 법률심이니까 여기서 지면 끝입니다. 변호사를 사려면 지금 사야 해요. 사선변호사를 선임할 건가요?"

"지금 돈이 없으니 그냥 변호해 주세요"

경찰, 검찰뿐 아니라 1심에서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다가 법정구속을 당하고 항소한 피고인의 접견을 가서 나눈 대화였다.

접견을 가기 전에 시보실에서 나눈 대화는 이랬다.

"유죄가 확실하네. 참내, 우기면 모를 줄 아나"

"거짓말이 뻔한데 왜 자백을 하지 않는 거야"

이제 막 법원시보를 하면서 국선변호를 맡게 된 시보들끼리 기록을 보면서 나눈 대화이다. 두 달 밖에 하지 않은 검사시보물(?)이 아직 빠지지 않은 법원시보들은 기록만을 보고서도 유죄라고 판단했다. 무죄추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검사시보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피고인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접견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 방 먹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시보들끼리는 법률상 감경, 작량감경 이외에 시보감경이 있다면서 사법연수생을 국선변호인으로 만난 피고인은 3대가 선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담장 안쪽에 있는 피고인은 담장 밖에 있는 국선변호인들이 30분전에 했던 농담과는 달리 변호사를 사겠단다.

연수생의 관심 1순위는 당연히 성적이다. 지나침을 넘어 심각한 수준인 사람도 있다. 그래서 무성의하게 국선변호를 하는 연수생도 의외로 많았다. 당연하다. 24시간밖에 없는 하루를 다른 곳에 쓰면 그만큼 공부시간 확보가 줄어드니까. 어느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국선변호를 하고 싶지 않으랴.

다만 짧은 하루를 돈 좀 되는 사선에 투자하다 보니 국선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그런 단순한 계산을 담장 안쪽에 있는 사람인들 모를까. 그들은 죄를 지은 사람일 뿐 아둔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제대로 변호를 하자고 결심했다. 물론 나 하나로 인해 피고인들의 불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이야기가 끝인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피고인의 가족과 연락하며 피고인이 주장하던 유리한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고 그렇게 모은 자료를 가지고 접견을 갔다.

"증거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유죄의 증거가 많이 나왔다. 내가 찾아도 이만큼인데 검찰이 이 정도 못 찾을 것 같으냐? 무죄 변론을 원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양형사유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고 했더니 자백하겠단다.

대부분의 피고인이 그렇듯 행복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 조직폭력배로 매번 사회면을 장식했던 강도상해행각, 도피생활, 기다려 주겠다는 지금의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내어 자수하고 모범수가 되어 7년 만에 가석방되어 갱생보호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6남매의 아버지로서 야채 노점상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생활인, 음주 무면허 운전 등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경위와 피고인이 원심에서 범행을 부인한 까닭 등 정상참작사유에 대해 변론을 집중했다.

다른 피고인을 접견하러 가는 김에 더불어 접견신청을 했다. 변론 종결 후 다시 만난 피고인은 나에게 한 방 또 먹였다. "항소 기각되어도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을 변호사님이 다 해 줬다"라고. 당사자가 아닌 듯 관조하던 차분한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며칠 뒤에 '형사 항소 2부 연수생 앞'으로 온 편지를 실무관이 건네주셨다. 많은 시보님이 왔다 갔지만 이렇게 감사편지를 받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어려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또박또박 변론을 잘 하는지 놀랐다는 내용의 편지였지만 모든 연수생은 마음만 먹는다면 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검사시보를 하면서 부인하는 피고인을 볼 때 변호인에게는 사실대로 말할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경찰, 검찰을 거쳐 공판을 앞둔 단계에서 변호인에게 무슨 말을 할까 그런 것들을 알면 나중 검사로 수사할 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법원시보를 하면 국선 변호를 많이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국선변호를 할 때의 생각은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국선변호를 하면서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피고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을 느꼈다. 피고인의 눈빛과 가족의 애원, 감사편지가 나를 열심히 하는 국선변호인으로 만들어갔다. 그래서 다른 시보보다 다섯 배 많은 사건을 변호했다.

이름을 새긴 교복을 입고 선생님을 만나는 대신 수번이 적힌 푸른 옷을 입고 국선변호인을 접견해야 하는 소년에게 영치금 3만원을 넣었다. 소년원을 들락거리다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도 다시 죄를 지어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이다. 아직 10대인 녀석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괜찮다고 사양하는 빈말도 하지 못했다.

피해가 크지 않아 합의만 이루어지면 공소기각이 될 수 있음에도 항소심까지 온 사건에서 합의서를 받아오면 좋겠다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욕을 하며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 뿐인 친누나가 맞나 싶었지만 오죽하면 저럴까를 피고인의 범죄경력자료가 웅변하고 있었다. 국선변호인임을 밝히며 대신 합의를 시도했고 그들은 아직도 변호사를 존중해 주었다. 피고인을 원망하고 욕도 했지만 피해자들은 피고인이 무겁게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돈을 받지 않고 합의해준 사건도 다섯 건이었고 재판부에 선처를 바란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도 피고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데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법연수생이 뭐하는 사람인 줄 모르는 일반인이 제법 있는 것과는 달리 전과가 2~3건 밖에 없는 피고인들조차도 사법연수생이 법정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대책없이 재판을 기다리는 중 국선변호인으로 사법연수생이 선임되자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국선 자체가 사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과 사법연수생이 하면 뭘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법연수생이 저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이 되었을 때 항소 기각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심에서 변호사가 해도 이랬는데 변호사도 아닌 사람이 항소심에서 어쩌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각각 다른 피고인이 보낸 편지이지만 내용은 같았다.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이라고 사법시험 합격의 기분을 소회한 사람이 있다. 아플 것만 같은데 그 기쁨이 뭔지 나도 한 번 느껴보자면서 공부했다. 그러나 별로 기쁘지 않아 오히려 기분을 한껏 내려고 한 기억이다. 10분 내로 제한된 일반인의 접견이 아닌 무제한의 접견을 할 수 있는 나를 보고 사법시험을 보기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면 40기가 법원시보로, 그 뒤 한 달이 안 되어 39기가 변호사로 국선을 맡을 것이다. 아직도 단순한 셈으로 국선변호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