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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따사로운 법조인상에 대한 희망

여훈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세모가 되면서 서울법조타운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빨라졌다. 대부분 법원, 검찰, 변호사, 법무사 등 법조직역에 자신의 사건을 맡겨 놓고 해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수심 가득한 표정부터 무표정을 거쳐 때로는 득의양양한 표정까지 다양하다.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점철되어 있어서인지 대체로 무언가 어두운 기색을 엿볼 수 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악의적으로 부당한 소송을 제기하거나 응소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록 부분적이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수긍할 만한 하소연 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이다. 평생 처음 법원에 발길을 들인 사람부터 상시적으로 법원에 출입하는 사람까지 그 송사경험의 스펙트럼도 넓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 모두가 법조직역 종사자들이 자신의 사연을 잘 듣고 헤아려 주어 자신들이 이해하는 바대로의 송사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폭주하는 사건 속에서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차근히 검토하고 배척이유를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전형적인 사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일도양단적인 법리를 중시하는 법조인들의 입장과 달리 대립 당사자들간의 눈높이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일부 일리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전에 동일인 대출한도 제한이 있어 20대 중반의 여직원이 사장의 부탁으로 대신 상가를 분양받고 금융기관에서 중도금 대출도 받았으나 통정허위표시임을 주장하면서 대출금채무 부존재확인을 구한 사건이 있었다. 원고가 퇴사 후 대출금 채무 갱신 약정서에 날인을 해 준 바도 있어 판례상으로는 사장이 실질 차주임을 상호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 통정허위표시라고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합의과정에서 연소한 원고가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경우 좌절감을 느끼게 되어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확인결과 피고 금융기관도 이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원고는 중도금 대출금 원금 잔액만은 인정하고 피고는 상가의 공매를 통해서 우선적으로 변제충당을 하고 남은 금액이 있으면 원고에게 집행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는 조정이 성립되었다. 법리만을 중시해 당사자들 눈높이에서의 의사를 확인해 보지 않고서 판결을 하였더라면 원만한 사건해결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법조직역 종사자들의 업무가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관계 중 법리적으로 의미있는 것을 추출하여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더불어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변호사는 상담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눈높이로 들어가 그들 주장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당사자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법조직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보다 따사로운 법조인상이 정립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을 기대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