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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당당한 보수주의자, 스칼리아 대법관을 만나다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필자는 2009. 10.29.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이태리 판사 지오반니 팔코네가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The Impact of Italian Judge Giovanni Falcone on American Society)’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초청받아 참석한 바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외국의 입법례와 판례를 미국 헌법 해석의 참고자료로 삼을 수 있는가를 놓고도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외국과의 교류에 인색한 편이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이 이태리 대사관의 후원을 받아 이름도 생소한 외국 판사의 업적을 기리는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듣고 필자는 마치 특종을 놓친 기자처럼 부러움과 질투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연방대법원으로 향했다.

이날 비로소 알게 된 팔코네 판사는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재판을 한 위대한 분이었다. 그는 판사라는 직책을 무기로 마피아라는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법정에서 용감히 맞서다가 결국 마피아의 폭탄 테러로 가족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주미 이태리대사관 사법협력관 신시니(Sinsini) 판사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을 비롯하여 미국과 이태리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팔코네 판사의 업적을 기렸지만, 누구보다도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다름아닌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이었다. 같은 이태리계로서 팔코네 판사와 생전에 친분을 유지해 온 스칼리아 대법관이 없었다면, 이러한 세미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순간 필자의 생각은 언젠가는 한국계 연방대법관도 배출될 텐데, 우리에게도 이런 자리에서 업적을 기릴만한 판사가 적어도 한분은 계셔야 하겠다는 성급한 기대로 이어졌다.

아무튼 이 세미나에 초청받은 덕분에 필자는 스칼리아 대법관과 직접 인사를 나누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얼 워렌과 워렌 버거 대법원장이 재직했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법조계를 지배했던 진보주의(liberalism)에 대항하여 보수주의(conser-vatism)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학자 출신인 그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1982년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된지 불과 4년 만인 1986년 다시 연방대법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낙태와 피임에 반대하여 9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법정에서 자신의 보수적 헌법관에 대해 피력할 때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직설적이다 못해 다소 호전적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때론 동료 대법관들과의 대립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보니 스칼리아 대법관에 대해서는 극단적 평가가 병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직접 만나본 스칼리아 대법관은 영락없이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하고 털털한 모습이었다. 이날의 강연은 행사의 성격상 차분하게 진행되었지만, 평소 그가 법정 밖에서 오페라 배우 같은 특유의 제스처를 써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청중들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쉴 새 없이 웃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아주 열렬한 오페라 팬으로 가장 절친한 사이인 긴스버그 대법관과 함께 오페라에 우정 출연한 적이 있는 아마추어 성악가이기도 하다.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그녀의 집무실에 두 사람이 함께 인도 여행을 가서 코끼리를 타고 가는 다정한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언론의 집요한 편가르기 시도는 실상과 다르고 과장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여기서 ‘보수적 법관’이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신문 지면에서도 법관들을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구분하고, 진보 판사니 보수 판사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법관을 보수적 또는 진보적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정치 이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 철학(judicial philosophy)으로서의 보수와 진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법적 보수주의(judicial conser-vatism)란 헌법 기초자들의 입법의도와 원전에 기재된 문언의 의미를 존중하여 엄격하게 법을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법적 진보주의(judicial liberalism)란 헌법 기초자들의 의도를 지금에 와서 추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과거의 입법 의도나 문구에 집착하지 말고, 시대상황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스칼리아 대법관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오리지널리즘(originalism)으로 대표되는 그의 보수적 헌법해석론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가 보수적인 특정 정파의 입장을 지지하는 판사라는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긴스버그 대법관을 ‘진보적’이라고 하는 의미 역시 헌법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그녀의 해석론을 말하는 것이지, 그녀가 진보적 정파를 지지하는 판사라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미국의 연방판사들이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절차를 거쳐 임명된다고 하여 그들의 판사 임명 이후에도 자신을 임명해 준 특정 정파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단 판사가 된 이후에는 정치자금 모금행사의 참석과 정치자금의 기부가 전면 금지되며 철저한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할 것이 요구된다. 실제로 필자는 미국 연방법원행정처의 직원으로부터 자신들이 연방판사들과 함께 어느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하였는데 도중에 그것이 기금모금 행사라는 사실을 알고 참석한 판사들을 모두 퇴장하도록 조치한 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판사 스스로도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판사에게 정파적 의미의 수식어를 함부로 붙이는 것 역시 사법의 신뢰를 해치는 일로 극히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왜곡된 정파적 의미로서의 보수나 진보는 왠지 음습한 느낌을 주는 반면, 순수한 사법철학으로서의 보수나 진보는 모두 건강하고 당당하다. 지난 11월9일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구술변론은 보수와 진보간의 당당한 토론이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통합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년범에 대하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이 위헌인가를 놓고 열린 이날의 구술변론에서 보수 진영의 대법관들은 헌법상 소년과 성인을 달리 처벌하도록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소년 중에서도 나이에 따라 처벌이 달라져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물었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응보도 엄연한 형벌의 목적인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단지 17세 9개월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응한 처벌을 면제해 주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진보 진영의 대법관들은 인격이 형성되는 중간 단계에 있는 소년범은 성인범에 비해 비난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면서 오히려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나이를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나이에 기초한 획일적인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소년에 대하여 중형을 선고할 경우 판사가 비례의 원칙을 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게 적용하도록 하자는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변론을 지켜본 피해자의 가족도, 피고인인의 가족도 어떤 결론이 나던지 수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담보되면 법집행 기관도 더 당당해 질 수 있다. 지난 11월10일, 버지니아주에서는 2002년 워싱턴 일대에서 무차별 연쇄총격으로 무고한 10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이른바 ‘워싱턴 스나이퍼’ 무하마드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었다. 증거상 유죄가 명백한 사건이었지만 사건 발생 후 사형 집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정부가 사형 집행을 정치적인 의도로 지연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상소, 재심을 포함하여 법률상 보장된 모든 절차를 거칠 기회를 주는 데 7년의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연방대법원에서 마지막 절차였던 사형집행 연기청원을 기각하자, 주정부는 예정대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사형집행절차에 참관을 원하는 피해자 유족을 직접 참여시킨 것도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당당한 보수주의자, 스칼리아 대법관은 판사가 재판을 통하여 사회의 큰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욕심에 법률해석의 한계를 벗어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교도소의 과밀이나, 환경재앙의 초래 등은 의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판결을 앞둔 판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확고한 보수주의 철학이 지나치게 당당하게 보이는 면도 없지 않지만, 은근히 부럽기도 한 것은 그에 비하여 나는 판사로서 지나치게 소심하고 고민이 많았던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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