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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월스트리트에서 탐욕은 과연 善인가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탐욕은 선이다(Greed is good)"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1987년작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인 금융계의 거물 고든 게코는 이 말을 되뇌이며 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뉴욕 증권업계의 내부를 파헤친 이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기업사냥꾼인 탐욕의 화신을 실감나게 연기해 198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미국 증권가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야망의 군상들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젊은 증권 브로커와 노련한 기업사냥꾼이 서로를 이용하며 성공과 추락을 경험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특히, 증권범죄를 전담하던 필자에게 영화 말미에 반전을 보이며 등장한 뉴욕검찰과 SEC(Securities Exchange Commission)의 활약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전설적인 기업사냥꾼 이반 보에스키를 모델로 한 것인데, 실제로 보에스키는 내부자거래(insider trading)와 기업인수 후 분할매각으로 엄청난 재산을 벌어들였다. 물론 결국은 증권사기 등 혐의로 뉴욕연방검찰 루디 줄리아니 검사에 의해 기소되어 처벌받았다. 과연 위 주인공의 대사처럼 월스트리트에서 끝없는 탐욕은 성공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善일까?

◇ 헤지펀드 억만장자 내부자거래혐의 구속

"탐욕은 때로 선이 아니다(Greed is sometimes not good)" 미국 연방검사 프릿 바라라가 지난 10월17일 헤지펀드 갤리온(Gallon Management LP)의 경영자인 라자라트남(Rajaratnam)의 기소를 발표하면서 기자회견에서 던진 말이다. 미국 검찰사에서 최대 규모의 부당이득을 기록한 헤지펀드의 내부자거래 사건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아마 그녀도 필자처럼 올리버스톤의 영화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대사를 빗댄 위 논평에서, 뉴욕 검찰이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탐욕을 견제하겠다는 각오가 배어나온다. 이번 사건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경종(wake-up call for Wall Street)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던 모습은 더욱 단호해 보였다. 내부정보를 제공한 주요 기업 임원들과 컨설팅회사 맥킨지,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애널리스트 등이 공모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었고, 이어 펀드매니저, 변호사 등 14명이 추가로 기소되었다. 미국 금융계는 이번 수사가 헤지펀드 전반의 행태를 조준하고 있다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월스트리트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탐욕'의 주인공, 라자라트남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스리랑카 태생으로, 현재 총 13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포브스 선정 세계 559위의 억만장자이다. 펜실베니아대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1996년 헤지펀드를 설립하여 불과 10여년 만에 거부를 축적한 것이다. 그러나,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에 의하면 그는 철저한 점조직의 인맥 관리를 토대로 검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내부자거래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텔, IBM 등 대형 IT 기업, 컨설팅 회사 등의 고위 임원들로부터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기업의 영업이익 또는 인수합병 등에 관한 내부정보를 입수하고, 대가로 거액의 개인적 이득을 보장하였다. 이를 토대로 갤리온 펀드는 맨하튼 사무소와 캘리포니아, 대만, 중국, 인도에 이르는 전 세계 지점을 통해 총 2,500만 달러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실현하였다.

◇ 감청 등 수사기법 총 동원 월가 헤지펀드 행태 정조준

이번 수사는 종전과는 다른 몇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다. 먼저, 뉴욕 연방검찰은 2년여간 내사를 진행하면서 법원의 영장을 토대로 주요 혐의자의 전화통화를 감청하여 왔다는 점이다. 연방검사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최초로 내부자거래 사건에서 감청으로 주요 증거를 포착하였음을 공개하였다. 뉴욕타임즈, CNN 등 주요 언론은 일제히 사건의 내용과 함께 검찰 수사기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제까지 테러, 조직범죄 등에 대하여 주로 사용되어 온 감청이 월가의 헤지펀드 운영자 및 그 공모자에게 사용된 것은 새로운 시도였고, 뉴욕 검찰의 금융범죄에 대한 선전포고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혐의자들은 전화 감청을 염려하며 가명으로 개설된 휴대폰과 선불폰을 사용하는 등 추적을 피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여간의 내사를 통해 제보자의 진술과 감청 등의 적극적 수사기법으로 검은 네트워크의 전모를 밝혀낸 것이다. 실제 내부자거래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 금융자료 분석을 통하여 의심스런 관계를 추출해낸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남지 않는 정보의 전달을 추적하고 공모관계를 규명하는 일도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공소장에 기재된 통화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빠져나갈 여기가 없어 보인다. 내부 정보를 알려주면서 "이것이 발각되면 우리는 죽어, 우리 경력은 끝이야"라고 발각의 위험을 걱정하고 이어 자신들이 관리하던 IBM의 임원이 타기업으로 전직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거래를 잘 할 수 있는 다른 회사로 그를 집어넣어"라며 조직적 내부자거래를 주도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범죄에 감청을 허용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법상으로도 대상범죄에 증권거래법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검찰은 이러한 행위를 전신사기(wire fraud)로 의율하여 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교수들은 이미 개인 블로그에서 이 문제가 향후 법정에서 공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소장에 기재된 증권거래법위반(CFR. Section 240. 10b-5)은 엄밀히 말해 감청의 대상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에서 금융범죄에 대한 감청을 위한 필요성 요건(necessity requirement)도 검토될 것이다. 법원의 감청영장 발부는 통상적인 수사절차로 증거수집에 실패하였거나 불가능한 경우로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부분 법원의 심리와 최종 판단을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 검찰은 경제正義 '파수꾼' 국민들 신뢰와 응원 계속

뉴욕 검찰이 이례적 수사기법을 동원하여 헤지펀드의 관행적 불법을 적극 수사한 배경은 무엇일까? 전 세계 금융위기가 투자은행을 통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경제 버블 속에서 증권시장을 주무르던 또 하나의 축은 헤지펀드의 큰 손들이었다. 실리콘밸리의 IT기업 고위급 임원들과 컨설팅회사의 중역들까지 동원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증권시장의 신뢰를 저해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뉴욕 검찰은 증권가의 고질적 병패를 제대로 짚어냈고, 전세계 투자자들을 상대로 경제정의 파수꾼의 역할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연방검사가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가 당신의 문을 노크하기 전에, 우리의 문을 찾아와 노크하길 바란다"는 말은 금융위기 이후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는 미국 국민들의 월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전세계 국경을 넘어 은밀한 내부정보를 토대로 검은 돈을 버는 조직적 범죄는 엄단해야 한다. 이를 방치한다면 그 과정에서 일반투자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피눈물을 흘리고 금융시장은 투기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건전한 투자와 자본조달이 아닌, 투기적 시장은 구성원들의 의식형성에 영향을 끼쳐 사회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킨다. 국내에서도 전형적인 주가조작 사건과 함께 내부자 거래와 허위공시를 통한 증권사기 등 새로운 유형의 증권범죄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불공정행위 적발 통계를 보더라도, 미공개정보 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 17.6%, 2006년 26%, 2008년 30.5%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보이지 않게 외국계 증권사를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한 입수한 내부정보를 토대로 손쉽게 거액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혹시 아닐까? 우리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그간 관행으로 넘겨온 증권가의 구조적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지키는 일은 경제정의의 기본이다. 영화 '월스트리트'는 1980년대 탐욕의 절정에 있던 미국 증권시장을 조명했지만 결코 현재 금융계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뉴욕 연방검찰의 갤리온 펀드에서 시작된 헤지펀드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미국 국민의 신뢰와 응원도 계속될 것이다. 검찰의 새로운 도전과 노력이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의 명성을 지켜왔음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온갖 인간 군상들의 탐욕이 가득찬 거리 월스트리트에서 "탐욕은 때론 선이 아니다"는 선언은 투자자의 신뢰를 보호하고 시장을 지키는 단호한 외침으로 메아리 칠 것이다. 계속되는 수사의 칼날에 월가를 비롯한 세계 증권가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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