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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화성에서 온 검사, 금성에서 온 판사

이상철 대검 공판송무과장

꽤 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나에게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상당히 ‘공감’의 느낌을 많이 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즉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므로 남자와 여자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할 때 상호간에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녀의 관계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나 직업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법률가들 역시 같은 시험에 합격하여 같은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사고와 표현과 행동이 다른 것은 서로 온 곳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화성에서 온 검사, 금성에서 온 판사’가 언어와 사고방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불행히도 같은 곳에서 왔다고, 아니 처음부터 지구에서 같이 살아왔다고 착각하고 있고, 이로 인해 서로를 더욱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구속영장의 발부와 기각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날선 공방은 이미 오래 된 일이고, 향후 형사재판의 중심이 될 양형과 관련하여 양형기준의 정립과 조사를 둘러싼 충돌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초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로텐더홀 불법점거사건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1심 형사재판에서는 공소권 남용을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어 이를 둘러싼 대립도 발생하였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개헌이라는 화두를 두고 미묘한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대립과 충돌, 갈등은 서로가 온 곳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서로 온 곳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易地思之를 의미한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그것은 주관적 편견의 발로일 뿐이다. 원래부터 다른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생각과 표현,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상대방의 말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며, 상대방의 몸짓과 손짓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도 화성에서 온 검사와 금성에서 온 판사는 상대방이 나와 똑 같다는 착각 속에서 나와는 사고와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있다. 우리 법조 내부의 각 직역들은 서로 온 곳이 다르다. 그러므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이해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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