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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의 가을맞이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우리 대사관이 위치한 워싱턴 매사추세츠 애버뉴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어 ‘대사관 길(Embassy Row)’이라고 불리운다. 요즘은 단풍잎 사이로 고풍스런 건물들과 형형색색의 국기들이 어울리면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각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국경일 리셉션이 열리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국군의 날과 개천절을 기념하여 10월1일경에 대사관저에서 리셉션을 개최해 오고 있다.

우리 대사관저는 서울법원종합청사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김수근씨가 1985년에 지은 것으로 한국 전통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인데 큰 규모나 외양의 독특함뿐만 아니라 한국식 정원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필자도 이날 일 년 동안 우리 사법부와의 교류 협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미국 연방대법원, 법원행정처, 전국 주법원 센터(NCSC) 직원들과 가까운 법학자, 변호사 등을 초청하여 깊어가는 가을밤에 한국 음식과 문화를 경험하는 색다른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 한국대사관 국경일 리셉션 - 美國사법부 저명인사 참석

특히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인 제프리 미니어(Jeffrey Minear) 부부와 연방사법회의 산하 사법부 국제교류 위원장인 찰스 심슨(Charles Simpson III) 연방판사, 조지워싱턴 로스쿨 석좌교수이자 TV에서 법률평론가로 유명한 조나단 털리(Jonathan Turley) 교수 등 미국 사법부의 저명 인사들이 참석한 것은 큰 성과였다. 대법원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고 연방대법원에서의 구술변론을 56차례나 맡았던 것으로 유명한 변호사인 제프리 미니어는 개정기를 앞두고 매우 바쁜 상황임에도 소탈하게 손수 픽업트럭을 몰고 오셔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는 정성을 보여주셨다. 특히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사법부 인사들이 미국 사법제도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늘 놀라고 있다면서 필자가 법률신문을 통해 미국 사법소식을 소개해 주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연방 사법부의 국제교류를 총괄하는 찰스 심슨 위원장 역시 연방법원장을 마친 고위직임에도 한국 사법부와의 교류를 격려하기 위해 켄터키주에서 워싱턴까지 와서 법원행정처 소속 직원들과 함께 리셉션에 직접 참석해 주셨다. 사법교류를 위해 일하는 외교관으로서 매우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회계 연도가 10월1일에 시작하는 국가적 전통에 따라 매년 10월 첫째 월요일에 개정한다. 이맘때가 되면 많은 언론들이 연방대법원 개정과 관련된 여러 뉴스를 쏟아내는데 올해는 특히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가세하면서 국민의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뉴욕 브롱스 빈민가 출신으로 뉴욕 양키스 야구단의 열성팬이고, 재판을 통해 메이저리그 파업사태를 해결한 것으로 유명한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개정기를 일주일 앞 둔 9월25일 뉴욕 양키스 경기장에 나타나 관중들의 환호 속에 시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키스 매니저는 시구가 끝나자 “당장 다음주부터 소토마요르와 선수계약을 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이를 바라보는 양키스 팬들이 매우 즐거워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연방대법원은 10월 개정을 앞두고 대법관들이 ‘Red Mass’라고 불리는 법조인을 위한 가톨릭식 특별예배에 참석하는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다. 원래 영국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이 전통은 판사직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성직이라는 믿음에 기초하여 이들이 재판을 통하여 정의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의미를 갖는 다고 한다. 이 예배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은 특별히 ‘불의 혀’를 상징하는 붉은색 성의를 입었고, 영국의 전통에 따라 고위 법관들도 붉은 색 법복을 입고 예배에 참석한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미국에는 1928년경 도입되어 연방대법원 개정기가 시작하는 10월 첫째 월요일 바로 전날 일요일에 워싱턴에서 예배를 드리는 전통이 확립되었는데 연방대법관, 연방 상하원 의원, 행정부 고위관리 등이 개인적 종교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참석한다고 한다.

◇ 聯邦 대법원 10월 개정앞서 대법관 특별미사 참석 전통

올해에는 로버츠 대법원장,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비롯한 6명의 대법관들과 바이든 부통령 등이 참석하였고 이 모습도 상세히 언론에 보도되었다. 주목할 것은 현재 연방대법관의 종교 분포에 따르면 로버츠 대법원장, 케네디, 스칼리아, 얼리토, 긴스버그, 소토마요르 대법관 등 6인이 가톨릭계로 분류되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진보, 보수 구분과 상관없이 낙태 등 특정 쟁점에 관해서는 가톨릭계 대법관들이 보수적인 공동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예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긴스버그 대법관이 가톨릭 신자임에도 과거 이 미사에서 추기경이 낙태를 죄악시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이 예배에 불참을 선언한 바가 있듯이 그런 예측이 반드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제프리 미니어 비서실장은 또한 필자에게 미국의 의회, 정치 관련 전문채널인 CSPAN에서 특별 방영하는 연방대법원 프로그램을 꼭 볼 것을 권해 주었다. CSPAN은 연방대법원 개정기가 시작하는 10월 첫째주를 대법원 특집주간으로 선정하고 매일 저녁마다 연방대법원을 상세히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는데, 9명의 대법관들과 대법원 간부들의 인터뷰가 모두 소개된 것은 대법원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직접 나와서 대법원의 역사와 역할, 청사 등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었고 각 대법관들도 자칫 예민할 수도 있는 합의, 구술변론 방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확실히 연방대법원의 대언론 정책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연방대법원을 자주 방문하는 필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과거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거북이와 같이 천천히 그러나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사법부의 길임을 상징하기 위하여 ‘토끼와 거북이’ 모습이 연방대법원 청사 후면에 조각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뭔가를 느끼게 하는 좋은 소재였다. 평소 구술변론에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토마스 대법관은 재판은 판사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기 위해 하는 것이며, 구술변론 시간 대부분을 당사자가 아닌 대법관들의 발언으로 채우는 현재의 관행은 문제가 있다고 의미있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여성 대법관들은 여성들만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였는데 오코너, 긴스버그 대법관은 여성용 법복이 따로 없어 남성 대법관들의 셔츠와 타이를 대신하는 레이스 달린 컬러를 장만하느라 힘들었다는 얘기는 우리나라 여성법관들도 공감하리라 생각되었다.

◇ 정치관련 채널 CSPAN 연방대법원 특집방송도

그 밖에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평소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대법관들의 식당이었다. 오코너 대법관이 부임하기 전에는 평소 대법관들이 각자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애리조나 카우보이 목장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정치인 경험이 있어 매우 친화력이 좋은 오코너 대법관이 부임하면서 대법관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그녀의 노력으로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법관들이 함께 모여 점심을 하는 관례가 생겼다고 한다. 다만 점심식사에서 재판과 관련된 언급을 절대 하지 않고, 음악, 미술, 스포츠 등 가벼운 주제를 가지고 즐거운 대화만을 나누는 묵계가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긴스버그 대법관의 소개로 공개된 대법관 전용식당은 매우 아름답고 격조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녀는 장소만 보고 대법관들의 오찬 메뉴가 매일 오뜨 뀌진(Haute Cuisine, 최고급 요리)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라면서, 음식은 구내 카페테리아에서 주문해 가져오는 평범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대법관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그들의 우정과 끈끈한 동료애였다. 그들은 평소 언론을 통해서 과장되게 묘사되었던 이념적인 양극화 구도가 대법원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듯했다. 대법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시구, 붉은 성의를 입은 전통예배 그리고 대법원 특집방송이라는 화려한 식전행사가 숨가쁘게 끝나고 본격적인 구술변론 개정기가 시작되었다. 미국 국민들의 관심 속에 연방대법원이 차지하고 있는 큰 자리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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