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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미국의 상고제도가 걸어온 길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지난 주 서울에서는 우리 사법부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이 주최한 국제법률 심포지엄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제각기 다른 법제도를 가진 세계 각국에서, 재판하느라 바쁜 법관들이 공통된 법률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미국과 독일, 일본의 법관들과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사무국장을 비롯한 세계적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준 것은 충분히 주목을 받아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의 국제적 위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이번 심포지엄이 우리 사법부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사법행정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존 우드콕(John Woodcock) 연방법원장, 국제도산법의 일인자인 스티븐 라슬라비치(Stephen Raslavich) 연방파산법원장을 비롯한 유수한 미국 법관들을 섭외하고 초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 한국의 사법제도를 미리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법부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하는 한편, 그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가 개선할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도 과외의 소득이다. 그들은 우리 사법시스템이 매우 선진화되어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우리 대법원에는 상고허가제도가 없고, 1년에 2만건이 넘는 상고사건을 처리한다는 부분에 관하여는 최고법원으로서의 고유의 역할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렵다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우드콕 법원장의 설명에 의하면, 2008년 기준으로 미국 연방법원에 약 35만건의 소송이 제기되었고, 이 중에서 6만1,000여건이 항소되었다고 한다. 제한적 관할권을 갖는 연방법원과 달리 대부분의 일반 사건을 처리하는 주법원에서는 2004년 기준으로 3,700만건의 소송이 제기되었고, 그 중에서 15만건이 항소되며, 주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은 8만6,000건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연방항소법원이나 주 대법원을 거친 사건 중에서 연방대법원에 상고허가신청(Petitions for writ of certiorari)을 제기한 사건은 1년에 8,000 내지 1만건 정도이나, 이 중에서 상고가 허가되는 사건은 그 중 1%, 즉 80건에서 100건 내외에 불과하다. 상고를 허가하는 결정을 ‘writ of certiorari’라고 하는데, 라틴어에서 온 이 말의 현대적인 의미는 “대법원에서 상고심 절차를 개시하려 하니 그 소송기록을 대법원으로 송부하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경우도 지금의 상고허가제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789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대법원의 역할은 지금의 항소법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급심 재판진행에 잘못이 없는지, 법률 적용이나 증거판단은 올바른지 등을 재검토하는 것이 주 임무였고, 상고는 당사자의 당연한 권리로서 인식되었다. 당시는 대법관들이 1년에 몇 주만 워싱턴에 머물면서 상고심 재판을 하면 충분했고 나머지 시간은 마차를 타고 지방을 돌면서 1심 재판장도 겸하는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의회의 연방법 제정 건수가 증가하고, 인구와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팽창하면서 사건이 급증하게 되자 무제한적인 상고사건 처리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의회는 상고장 접수에서 구술변론까지 무려 3년 6개월이 소요되는 대법원의 극심한 사건적체가 문제로 대두되자 1891년 대법원과 1심법원 사이에 연방항소법원을 창설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고제도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진 것은 1925년부터였다. 윌리암 태프트가 미국의 27대 대통령을 마치고 제10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였을 때는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어 상고심이 5년이나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강한 추진력을 가진 행정가였던 태프트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상고수리에 대한 완전한 선택권을 갖지 않고는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의회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비로소 ‘Certiorari Act’를 통과시켰다. 상고수리 여부를 대법원의 완전한 재량에 맡기는 현재의 시스템이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모든 당사자에게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에게 태프트 대법원장은 “당사자 사이에서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이면 충분하다”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즉 세 번째의 재판은 그 사건에서 누가 이기는가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문제가 관련된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연방대법원은 상고허가와 관련된 제도와 관행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우선 ‘rule of four’라 하여 9명의 대법관 중 4명이 찬성하면 상고를 허가하는 관행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해마다 수천건에 이르는 상고허가신청 기록을 대법관 9명 전원이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1973년 워렌 버거 대법원장은 이른바 ‘써트 풀(Cert pool)’이라는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즉 우리나라의 재판연구관에 해당하는 대법관 로클럭으로 공동조(pool)를 구성하여 이들에게 상고허가신청서를 무작위로 배당하고, 주심 로클럭만이 기록을 검토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를 전체 대법관들에게 회람시킨 후 표결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하여 로클럭의 업무 중복은 상당히 경감된 반면,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로클럭 개인의 주관이 개입되어도 걸러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7명은 써트 풀에 참여하되, 스티븐스와 얼리토 대법관은 모든 상고허가신청을 독자적으로 검토하는 절충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986년 워렌 버거 대법원장에 이어 취임한 윌리암 렌퀴스트 대법원장 역시 상고허가건수를 대폭 줄이고, 합의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하여 대법원 업무량 감경에 일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하에 의회를 설득하여 취임 후 2년 만에 당시 200건의 상고심 사건 중 30~50건을 차지하던 의무적 상고수리사건들 대부분을 없애는데 성공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미국의 연방대법관들의 업무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9명의 대법관 전원이 매년 약 1만건의 상고허가신청을 검토하고, 이 중에서 선정된 80~100여건 전체를 구술변론을 열어 심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술변론을 마치면 바로 합의에 들어가고 그 개정기 안에 판결이 선고된다. 대법원은 관행상 10월부터 6월까지 약 9개월만 재판을 하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매달 9건 정도의 구술변론과 합의, 판결문 작성을 소화하여야 한다. 각 사건은 대부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므로 그 판결문의 분량이 웬만한 논문에 버금간다. 따라서 일 년 동안 선고된 판결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면 약 5,000페이지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우드콕 법원장은 브라이어 대법관으로부터 연방대법원의 재판은 하급심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고 한다. 1심 판사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은 항소심의 책임이고, 대법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의견이 상충되거나, 국가적으로 의미있는 법률적 논쟁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고제도의 개혁이 대법원의 업무경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최고법원에게 걸맞는 역할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상고제도의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다. 독립된 연방대법원 청사를 최초로 마련한 것으로 유명한 태프트 대법원장은 먼 훗날 지금의 상고제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높이 평가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마다 역사와 국민 정서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리의 상고제도가 1789년 당시 미국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현실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