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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연방법무부의 카르텔 수사와 기업윤리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국내 항공사들의 미주 노선에 대한 가격 담합(price fixing)에 대하여 국내 법무법인이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연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 기업의 담합행위에 대하여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에 집단소송을 낸 것이 처음이므로 뉴욕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었다. 물론 소송이 진행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승소하게 되면 해당 기간 동안 항공사의 미주노선을 이용한 승객 전부가 별도의 소송 없이 배상을 받게된다. 미 연방법무부로부터 국내 항공사들이 유류할증료 등의 명목으로 요금을 담합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 지난 2007년 8월 대한항공이 3억달러, 금년 4월 아시아나항공이 5,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은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승객들은 이미 2007년 하반기부터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 항공사의 임직원에 대하여는 개인적 형사처벌을 위한 절차가 아직 남아있다.

◇ 벌금액 모두 12억弗 넘어

연방법무부 독점금지국(Anti-Trust Division)의 국내 기업에 대한 담합행위 적발은 항공사가 처음은 아니다. 2005년 반도체 업체를 시작으로 항공사, LCD패널업체에까지 매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TFT-LCD 패널의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3만불의 벌금을 내기로 하였다. 2008년 12월 LG디스플레이가 미국 반독점법 집행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4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미국시장에서 가격담합 행위로 받은 벌금의 액수를 살펴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2005년 하이닉스 1억 8,500만달러, 삼성전자 3억달러, 2007년 대한항공 3억달러, 2008년 LG디스플레이 4억달러, 2009년 아시아나항공 5,000만달러 등 총 12억달러,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1조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1999년 미국에서 비타민 업체인 호프만-라로슈사가 5억달러의 벌금형을 받은 이후, 우리 기업들이 계속하여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기 그지 없다.

연방법무부의 조사 과정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조사 협조를 이유로 다소 벌금을 경감 받더라도, 임직원에 대한 구속 등 형사처벌과 소비자들의 민사소송이 이어질 수 있어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도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글로벌 기업들의 실망스런 소식에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가격 담합행위를 통하여 시장을 독과점 상태로 만들고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였다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시장에서 상당수의 우리 기업들이 가격 담합을 이유로 단속 내지 처벌이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첫째, 연방법무부 독점금지국과 연방거래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이라는 복수의 집행기관간의 경쟁과 균형을 토대로 가격담합 행위에 대하여 상당히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 독점금지국은 1890년 셔먼법 제정시부터 민·형사 위반행위의 조사, 소송제기, 공소유지 등을 담당하여 왔고 연방거래위원회는 1914년 클레이튼법 제정과 함께 도입되어 그 집행의 일부를 담당하는 독립행정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 상황이 불황에 접어들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의 글로벌 기업들의 가격담합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여온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카르텔 행위를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자국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에 대한 보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1980년대까지는 관련 민사사건 수가 상회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카르텔 관련 형사사건 수가 급증하여 2006년 기준으로 약 80%에 이르렀다. 자료에 의하면 매년 100명 이상이 가격 담합으로 금고형에 처해지고 그 중 수십명이 실형 판결을 선고받는다고 한다.

◇ 반독점행위 정확히 감지를

따라서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이러한 가격담합 등 반독점행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의 흐름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법률가들의 도움 하에 실효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의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극복도 필요하다. 정부 주도형 경제발전 모델 하에서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행정지도를 통해 형성된 동종업계의 가격조절 관행은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의 카르텔 관련 집행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연방법무부는 가격담합에 대하여 자진신고자 및 조사협조자를 구분하여 그 처벌의 수위를 감면하는 리니언시 제도(Leniency Program)를 두고 있다. 사업자 및 개인에 대하여 별도의 상세한 지침을 마련하여 담합에서의 역할 및 협조 시점에 따라 구체적인 요건에 따라 면책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일부 해외업체들은 위 제도를 이용하여 처벌을 면한 것은 그 형평성의 논란을 떠나 시스템 적용의 결과였다. 우리도 공정위에서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나, 미국의 위 제도와는 상이할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미국에 진출한 기업 입장에서 충분한 사전 숙지를 토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반독점국의 수사 관행을 살펴보면, 예비조사를 통하여 어느 정도 혐의가 확인된 경우 가담 업체들의 임직원 사무실 등을 동일한 시각에 압수수색하거나 방문하여 최초로 자수 면책을 조건으로 협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곧바로 면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연방법무부 독점금지국의 수사 결과를 살펴보면서 놀란 것은, 상당수의 사건이 인지사건으로 수사 개시되어 반독점법위반과 함께 사기, 조세포탈 등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독점금지국 내 형사집행부(Criminal Enforcement) 및 산하 8개 지역 사무소에서 이를 전담하는데, 워싱턴DC를 관할하는 지역사무소에만 30명이 넘는 검사가 일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공정위에 전속 고발권을 부여하고 검찰은 대체로 사후에 단순 고발사건으로 이를 처리하는 것과 사뭇 대비된다. 검찰의 공정거래 분야에 대한 전문성 제고가 전제되어야 할 장기적 과제이기는 하나, 적어도 조세포탈 사범과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의 경우 고발권을 요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적 정비를 검토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를 통하여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공정거래의 기업윤리를 정착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기업윤리 확립은 법률가 몫

글로벌 기업 경쟁의 최전방,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금융위기의 파고를 극복함에 있어 더욱 선전하기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및 경쟁질서 확립 차원의 기업 윤리가 우리의 글로벌 기업에 정착하는 것은 우리 법률가들의 몫이다. 미국 반독점법 집행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국가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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