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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법정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미국 법정의 전형적인 모습들은 돌이켜보면 대부분 영화나 티브이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법정장면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법정에 가보지 않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8월6일 미국의 제111대 대법관으로 취임한 소토마요르는 청문회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명변호사의 활약상을 다룬 법정드라마 ‘페리 메이슨’을 보면서 검사가 될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상원의원이 “검사가 매번 패소하는 영화를 보면서 검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니 특이하다”고 질문하자, 그녀는 그 영화에서 패소한 검사를 위로하는 변호사에게 검사가 “괜찮습니다. 검사의 역할은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처벌받게 하고 죄가 없는 사람은 구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의를 세우는 일인걸요” 라고 답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덧붙여 “그래도 그 영화 속에서 가끔 검사가 이긴 적도 있었다”는 그녀의 답변에 대해 상원의원이 어떤 일화였는지를 물었으나 그녀가 기억이 안난다고 하자, 상원의원이 정색을 하고 “백악관에서 이런 답변도 준비 안 해줬습니까?”라고 농담조로 추궁하여 청문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다.
 
◇ 변호사도 법정모욕죄로 구류

한편 사법연수생 시절, 필자에게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모습을 가장 현실감 있게 보여주었던 것은 ‘내 사촌 비니 My Cousin Vinny’라는 코미디 영화로 기억된다. 뉴욕 변호사 시험을 6수 끝에 겨우 합격했으나 법정 경험은 물론 소송절차의 기본 지식도 전혀 없는 신참 변호사가 알라바마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던 중 황당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사촌동생을 변호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감칠맛 나게 풀어나간 이 영화는 형사재판 절차와 반대신문 기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미국 형사변호사들의 연수 교재로도 활용된다. 하버드 법대의 아서 밀러 교수도 법대 1학년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 판사지망생이었던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넥타이도 매지 않고 가죽 점퍼 차림으로 법정에 첫 출석한 변호사가 유죄 인정 여부(arraignment)를 묻는 재판장의 반복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계속하다 법정모욕죄(Contempt of Court)로 구류형에 처해지는 장면이었다.

미국의 법정은 권위가 대단하고 모든 국민은 그 권위에 절대 복종한다. 법원마다, 혹은 판사마다 자신의 법정에서 지켜야할 ‘법정 예절(Courtroom Decorum)’을 공표하고 이는 철저히 준수된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의 Federal Circuit 연방항소법원에서 공표한 법정예절을 보면, “변호사 및 방청객의 복장은 법정의 권위를 해치지 않도록 절제되고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법원경비대와 법원직원은 방청객의 모든 소지품을 열어보고 조사할 권한이 있다. 모든 방청객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판사들이 입정하여 재판장이 착석하도록 권유할 때까지 기립해야 하고, 퇴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판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립해야 한다. 법정에서의 기립과 발언은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재판 진행 중에는 오직 재판과 관련된 자료만 읽을 수 있다. 부적절한 얼굴 표정을 짓거나 과장된 손동작을 하여서는 안 된다. 자주 법정을 들락날락해서는 안 된다” 등등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권위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없지 않으나 미국인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는 판사 개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사법제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법정에서 판사의 권위를 존중하고 절대 복종해야만 공정한 심리와 판결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정의 권위를 높여주는 장치는 이밖에도 많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구술변론이 열리는 날이면, 오래되어 금칠이 다 벗겨진 대법정 벽시계가 10시를 가리키는 순간 연미복을 입은 경비대장이 일어나 “존경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님들이 입장하십니다. Oyez! Oyez! Oyez! 이제 재판이 열리니 이 영예로운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분들은 앞으로 나와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부디 이 나라와 이 법원을 지켜주소서!”라고 외친다. ‘Oyez’는 ‘오 예이’로 발음되는데, 프랑스 고어로서 “들으시오!”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과 동시에 대리석 기둥사이로 드려진 붉은 벨벳 장막이 열리면서 9명의 대법관들이 세 명씩 세 그룹으로 입장하여 동시에 착석하면 재판이 시작된다. 한편 9명의 대법관들은 법정에 들어오기 전이나 합의를 앞두고 늘 돌아가면서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마음을 다스리는 절차를 갖는다고 한다. 매일 반복되는 것이지만 이런 드라마틱한 의식을 통해서 국민들은 대법정의 권위를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 판사 권위 존중, 절대 복종

아울러 이제는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법정의 의사봉(gavel)도 역시 권위를 상징한다. 텍사스 출신인 DC연방지방법원의 램버트 법원장 법대 위에는 투박하게 조각된 의사봉이 놓여있어 그 의미를 물어보았더니, 판사가 된 아들을 위해 고향 농장에 사시는 부친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들어 보내주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 사건이 끝나거나 당사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을 때 가끔 그 의사봉을 두드린다고 하는데, 재판을 직접 진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의사봉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도적으로 법정 질서를 지켜주는 것은 필자가 앞서 영화를 통해 언급한 법정모욕(Contempt of Court) 절차이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혼동되어 알려진 바가 없지 않으나, 미국의 법정모욕은 성질상 형사(Criminal Contempt)와 민사(Civil Contempt)로 나누어진다. 이는 형사재판인가 민사재판인가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제재의 성격이 처벌을 위한 것인가 법원의 명령을 간접강제하기 위한 것인가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다. 당사자가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그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이행시까지 조건부로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금에 처하는 것이 민사적 법정모욕이고, 이행의 의사가 전혀 없어 간접강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명령 위반이나 판사의 면전에서 재판을 방해하는 행동에 대하여 우리의 감치제도나 형법상의 법정모욕죄에 유사한 최종적인 처벌을 내리는 권한이 바로 형사적 법정모욕이다.

재판장의 면전에서 고함을 치는 등 심각한 재판 방해 행위가 벌어졌고 법정의 권위를 바로세우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판사는 즉석에서 직권으로 행위자를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00불 이하의 벌금(법인인 경우 1만불 이하)에 처할 수 있고, 판사가 직접 보지 못하였거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검사의 기소 대신 재판장의 통지로 공판절차를 개시하되 검사와 변호인을 두는 일반적인 형사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 이 경우는 법정형의 상한이 없으며, 실제로 증언을 거부한 증인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민사적 법정모독은 주로 재판의 당사자가 상대방이 법원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재를 신청하는 경우에 비롯된다. DC 연방지방법원이 지난 2004년 체니 부통령의 리비 비서실장 등이 CIA 요원의 인적사항을 언론기관에 불법으로 누설하였다는 스캔들과 관련한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증언(deposition)을 거부한 타임지 기자 매튜 쿠퍼에게 증언을 할 때까지 최장 18개월까지 연장 가능한 구금을 명하고 타임지에는 매일 1,000불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자, 쿠퍼 기자가 입장을 바꾸어 증언을 하기로 결정하여 조건부 구금 명령과 벌금형이 무효로 돌아간 것이 좋은 사례이다.

이 밖에 법정에서의 돌발행위에 대한 예방 내지 물리적 대응 또한 매우 엄정하다. 미국의 중죄 형사피고인들은 도주 방지를 위해 대부분 법정에서도 족쇄를 채우고, 피고인 1인당 1명꼴로 경비인력이 배치된다. 물론 배심원들은 족쇄를 볼 수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럼에도 지난 2009년 3월, 캘리포니아 주법원에서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이 몰래 숨겨온 길이 15cm의 날카로운 금속조각을 들고 법대 위로 뛰어올라 재판장의 팔을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법정에 있던 경찰은 그 자리에서 총기로 피고인을 사살하였다. 경찰의 대응은 조사결과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판명되었고, 판사는 피고인 호송과정의 부실을 들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 흉기난동 피고인 권총사살도

과연 법정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물론 법정의 권위가 국민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위협으로 세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판례도 법정 모욕에 대한 처벌은 자의적이거나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앞서 말한 영화 내 사촌 비니에서 신출내기 변호사가 판사에게 혼나가며 형사소송 절차의 의미를 하나하나 배워가다가 결국 반대신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여 피고인의 무죄선고를 이끌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법정의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금은 고리타분한 법정 예절도, 복잡한 소송절차도, 방청객을 다소 불편하게 만드는 경비태세도 모두 판사 개인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자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법정의 권위는 누가 뭐래도 스스로 세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러한 절차를 훼방 놓으려 한다면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어느 정도의 제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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