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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소토마요르 대법관 이후의 연방대법원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상원에서의 마지막 인준 투표만을 남겨둔 가운데,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임명이 임박했다. 지난 7월28일 상원 법사위는 소토마요르 대법관 인준안을 2시간의 토론 끝에 표결에 부쳐 찬성 13표, 반대 6표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12명은 전원 찬성표를 던진 반면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은 린지 그레이엄 의원 한명을 제외한 6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진 결과이다. 상원 본회의에서는 예상보다 찬반 논란이 길어지면서 공화당의 반대표 숫자가 늘어나리라고 전망되고 있지만, 민주당이 60석의 확고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공화당 의원 중 7명이 이미 찬성의사를 밝힌 상태이므로 인준안 통과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청문회가 소토마요르 대법관보다는 오바마의 두 번째 대법관 후보자 지명을 염두에 둔 기선제압용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공화당에서는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자가 자질이 충분하고 비교적 중도파라는 데 공감을 했지만, 청문회에서의 집요한 공격과 표결 과정에서의 반대표 과시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판사의 역할은 단지 법을 적용하는 것’이며,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약자를 마음으로 배려하는 판사’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효과를 얻었다고 자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서 느껴지듯이, 이번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인준절차를 돌아보면서 대법관 인준과정의 지나친 정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대법관 인준과정의 심각한 정쟁화는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엄격한 보수주의자인 로버트 보크 판사를 대법관에 지명하였다가 당시 상원을 장악한 민주당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고 인준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분석된다. 당시 사건에 따른 보복심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 나타나면서 상대진영 후보에 대한 고춧가루 뿌리기식 질문공세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후보자는 어떻게든 흠집을 잡히지 않고 청문회를 통과하기 위하여 법률적 쟁점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보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청문회는 점점 내용이 없는 대선후보 토론회를 닮아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0월에 명실상부한 상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을 새롭게 출범시키는 영국에서 유력지인 가디언(Guardian)은 최근 사설을 통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법관들이 오로지 사건의 실체관계와 순수한 법률적 적용을 통해 결론에 이른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은 사법권의 독립을 통해 얻어진다”고 지적하고, “새로 출범하는 영국의 대법원은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대법관 임명과정을 정치화하려는 유혹에서 철저히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경청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한편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수터 대법관의 뒤를 이어 취임하더라도 대법원에 새로운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알다시피 대법원을 떠나는 데이빗 수터 대법관이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취임한 이후에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간의 큰 변동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2008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의 대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대법원이 매우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보수화되어 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취임하더라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만장일치 판결은 전체의 33%로 2005년도의 52%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고, 5대4로 의견이 대립된 판결은 29%로 역시 2005년의 13%에 비하면 많이 증가한 상태이다. 즉 대법원의 의견 대립이 과거에 비하여 점점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올해만의 새로운 일은 아니고 최근 수년간 지속적인 경향으로 대법원의 의견대립은 격화되는 양상을 띄고 있다.

그럼에도 중도적 입장인 케네디 대법관이 종전보다 보수파에 가담하여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전체적으로는 보수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네디 대법관은 의견대립이 있는 사건 중 89%에서 다수의견에 가담함으로서 캐스팅 보터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었는데, 그 중 로버츠 대법원장과 78%, 얼리토 대법관과 76%, 스칼리아 대법관과 72%의 의견일치를 보인 반면, 수터, 스티븐스, 긴스버그 대법관과는 50%대의 의견일치를 보이는 데 그쳤다. 케네디 대법관의 뒤를 이어 전체 사건 중 다수의견 가담비율이 높은 순으로 보면 모두 보수파인 스칼리아 대법관,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토마스 대법관으로 이어지고 있어, 확실히 보수파가 과거보다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 소토마요르 대법관에게 자리를 물려준 수터 대법관은 그가 평소 바라던 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고향인 뉴햄프셔로 돌아가 주대법원 산하의 공립학교 사회교육 강화를 위한 위원회에 참여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변호사회 연례회의에 참석하여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회교육의 강화를 역설하였다. 그는 미국인들의 사회 지식 정도가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사회 교육의 부재는 장차 사법권 독립의 심각한 위협요소가 될 것임을 강력히 경고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사 결과 미국인의 3분의 2가 국가를 구성하는 권력의 3요소, 즉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헌법상 3권분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법권 독립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사법부 독립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수터 대법관이 살던 뉴햄프셔 시골 마을에서는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모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여 결정했고 자신도 어린시절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자신이 과거 경험을 통해 배웠던 가치들을 지금의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사회교육이 다시 정립되어야 대중의 의지에 휩쓸리지 않고 한 개인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판사가 나올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마찬가지로 퇴임한 오코너 대법관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의 하나도 국민들의 법교육 문제이고, 그녀는 어린 학생들에게 사법의 의미를 재미있는 게임 형식으로 가르치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our court’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였으며, 영어, 수학과목에서 일정기준을 달성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에 사회 과목도 평가대상으로 추가할 것을 청원하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정치의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미국의 사법부가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고 존경을 받는 것은 재직시는 물론 퇴임 후에 이르기까지 판사로서의 사명감을 버리지 않고 평생 사법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봉사했던 많은 법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앞으로의 활약 못지않게 수터 대법관의 새로운 활약이 기대되는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