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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제고를 위하여

여훈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얼마 전 월간지에서 전직 판사 41명을 대상으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수준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라는 답이 53.7%에 이르렀다는 기획기사를 접한 바 있다.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거나 흥미를 주는 판결을 보도한 신문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자신의 경험을 거론하면서, 때로는 덩달아서 판사 개인을 비난하고 사법부 내지 사법제도에 대한 무차별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내용을 자주 보게 된다.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쩐지 섭섭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사법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을 나타낸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이러한 불신이 근본적으로 사법절차의 주재자와 국민들 사이에 예측을 가로막는 장막이 드리워져 절차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아니한 데에 기인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사건의 심리와 증거조사를 법정 중심으로 운용하는, 민사소송에서의 구술주의 원칙과 형사소송에서의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사법불신에는 또 다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인가 실화라고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할아버지가 원고로 법정에 출석하여 피고를 가리키며 “저 자가 나쁜 눔이여. 법원에서 알아서 해 주세요”라며 못마땅하다는 듯 퇴정한 다음 다시는 출석하지 아니하는 바람에 결국 패소판결을 받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일전에는 대학교수인 분에게 “법원에 근무합니다”라고 수인사했더니 “아, 검사시군요”라고 하는 답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기억도 난다. 극단적인 예인 것처럼도 보이지만, 변론주의나 당사자주의,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억울한 사람을 위해 다 알아서 해 주는 기관이라는 생각, 구체적 타당성을 감안한 조정에는 불응하면서도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상대방 전부 승소판결을 하였다는 이유로 일도양단적인 판결이 불만스럽다는 생각 등 국민들이 사법의 절차나 제도에 관하여 그릇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더욱이 그러한 불충분한 이해에 근거하여 우리 사법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을 표출하는 사례가 여전히 적지 않은 것은 큰 문제이다.

요즈음 법원, 검찰 및 변호사협회의 홈페이지나 구성원들의 언론기고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각 직역별로 사법제도를 홍보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법정 또는 수사 드라마, 사법제도에 관한 다큐멘터리 등 사법 관련 프로그램의 제작·방송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방송의 영향력은 직접적이고 심대하여 그 교육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법정드라마가 사법의 절차 및 제도에 관하여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면서도 큰 흥밋거리를 제공하여 흥행에도 성공하는 경우를 서구의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더구나 법조의 각 직역이 협력하여 흥미진진하면서도 사법절차에 관한 적확한 지식전달을 도모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 제공한다면 시너지 효과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써 국민들은 재판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 외에도 적정하고 투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법절차가 무엇인지에 관한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조 각 직역의 이러한 시도와 협력이 직역의 정당성 홍보라는 이기주의의 차원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실질적 실현과 사법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다른 뼈를 깎는 노력과 함께 기울이는 또 하나의 충정임이 발현된다면, 국민들과 방송관계자들로부터 협조를 얻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