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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같고도 또 다른 한국과 미국의 인사청문회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요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인사청문회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대법관 지명자이자, 첫 번째 히스패닉계 여성인 소토마요르 판사에 대한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매일 일면 머리기사로부터 3개면 이상을 할애하여 대법관 청문회 관련기사를 상세히 전하고 있고, CNN 등 주요 뉴스채널은 청문회의 전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임명동의안이 회부된 날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마치되 청문회 기간은 3일 이내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 안에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이러한 법률적 제한이 없어 오바마 대통령이 소토마요르 판사를 지명한 후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두달 가까운 준비기간이 소요되었으며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삼일째에 접어든 청문회가 끝나는 날도 아직 예상할 수 없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최초의 흑인 대법관이었던 써굳 마샬(Thurgood Marshall)의 후임으로 지명된 두 번째 흑인 대법관 클라렌스 토마스의 청문회는 1991년 9월10일에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청문회가 끝나갈 무렵 토마스 판사의 행정부 근무시절 부하 직원이었던 애니타 힐이 성희롱을을 당했다는 진술을 담은 FBI의 조사 내용이 유출되면서 청문회는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게 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애니타 힐을 비롯하여 당시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여직원들이 줄줄이 청문회의 증언대에 불려나오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질의 응답이 계속되면서 청문회는 서로에게 상처뿐인 진실게임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국 상원 법사위는 1991년 9월27일 격렬한 토론 끝에 7:7로 의견이 나뉘어 찬반 양론을 정하지 못한 채 상원 본회의로 회부하였고, 토마스 대법관은 결국 10월15일에 이르러 52:48의 근소한 차로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토마스 대법관은 취임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자격 시비에 휘말려야 했고, 현재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구술변론에서조차 거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가 청문회 과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소토마요르 판사의 청문회는 현재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전체 100석인 상원에서 민주당이 60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산술적으로 인준이 확실하기 때문에 약간 긴장감이 떨어진다. 공화당 입장에서도 굳이 인준이 확실한 후보자에게 지나친 강공을 함으로써 애꿎은 히스패닉 표심만 잃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토마요르 판사의 시종일관 진지하고 차분하며 당당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통해 드러나는 판사로서의 뛰어난 자질이 청문회에서의 모든 이슈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파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토마요르 판사는 청문회가 처음 열리는 7월13일 월요일 아침 10시에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상원 회의실에 도착하였다. 이번 청문회 준비를 진두지휘한 바이든 부통령의 법률고문인 신디아 호건과 백악관 법률담당인 수잔 다비스 변호사가 바로 옆에서 그녀를 보좌하고 있다. 후보자 바로 뒤편에 자리잡은 노모가 가끔 감격의 눈물을 훔치며 마음의 후원을 보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오바마 대통령은 청문회에 앞서 소토마요르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무려 89명의 상원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준 것을 치하하면서 인준을 확신한다고 격려한 바 있다. 청문회를 앞두고 공식적인 지원팀을 구성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은 미국에서 보듯이 매우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외부에 드러나면 비난을 받고 국회에서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관행은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청문회장은 ‘ㄷ’자 형태로 놓인 위원석 앞에 후보자석만이 단촐하게 놓여있다. 위원들과 후보자의 좌석은 매우 가까운 편이며 높이도 같다. 좌석배치에 있어서 귄위적인 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호칭도 각각 ‘judge’, ‘senator’로 상호 평등하다. 첫날은 먼저 19명의 법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20분씩 모두발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2명의 민주당원들은 그녀가 살아온 삶을 부각시키면서 어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7명의 공화당원들은 그녀의 과거 인종편향적 발언을 문제 삼으려 했다. 후보자는 시종일관 두 손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발언자들과 눈을 맞추며 경청하였다. 위원들의 모두발언을 마치고 후보자의 지역구인 뉴욕주 상원의원 두 사람이 나와서 후보자의 주요 경력과 업적을 소개하였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난 후보자는 위원장과 마주보며 간단히 선서를 하고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서를 마치면 후보자가 서명한 선서문을 직접 들고 가서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세레모니가 있는데, 사실 인사청문회법은 선서의 내용만 규정할 뿐 선서문의 전달에 대해서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첫날 오후 늦게야 모두발언을 하게 된 소토마요르 판사는 “지난 수개월 동안 많은 상원의원들이 저의 사법철학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저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법률에 충실하자는 것(Fidelity to the law)입니다. 판사의 역할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용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까지 법원에 근무하면서 내렸던 판결들이 그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자신의 과거 발언을 둘러싼 논쟁에 미리 선을 긋고자 했다.

이틀째부터 위원들과의 본격적인 질의 응답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위원별 질의시간이 1회에 10분을 넘지 않으나 미국의 경우는 1회에 30분씩 배정되었다. 30분이란 시간은 질의가 충실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순조롭게 이어가기가 어려운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것은 역시 배정된 질의응답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것은 의원들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의회전문가인 톰 코롤로고스는 최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의 브리핑을 통해 “청문회는 애당초 공평하지 않은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의 80%를 의원들이 말하고 당신이 20% 말했다면 청문회를 아주 잘 치렀다. 60 대 40이었다면 당신은 의원들과 논쟁을 한 거다. 만일 50 대 50이었다면 완전히 청문회를 망친 것이다”고 설명한 바가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토마요르 판사에게 대법관 자격시험의 채점 기준이 있다면 ‘에이 플러스 플러스’가 될 것이라며 치켜세운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계속하여 이른바 “지혜로운 라틴계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더 훌륭한 판결을 할 때가 있다”는 과거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그녀를 인종과 성별에 영향을 받는 판사로 규정짓고자 노력하였다. 후보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반복하여 공격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항소법원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발언이 사법적극주의적 입장을 내비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발언은 로스쿨 학생들을 상대로 사실인정을 담당하는 1심 법원과 법률판단을 담당하는 항소법원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의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전체의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전혀 그런 의혹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른바 “지혜로운 라틴 여성” 발언은 젊은 히스패닉계 학생들을 격려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로서 전혀 인종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 아님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지명권자인 오바마 대통령과도 선을 그었다. 존 킬 상원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바가 있다. 재판을 마라톤에 비유할 때 처음 40km를 달릴 때까지는 법률이 길을 안내하지만, 마지막 2km를 안내하여 판단에 이르게 하는 것은 판사의 감정(heart)이라고 했다. 여기서 판사의 감정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소토마요르 판사는 “나는 대통령의 그러한 접근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판사가 해야할 일은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다”라고 명확히 답변하였다. 재차 “그러나 당신의 과거 발언에 의하면 법과 선례 이외의 다른 요소가 판단에 개입할 것으로 보이는데”라고 추궁하자, “제가 17년간 판사생활을 하면서 내린 수많은 판결들은 제 판단의 근거가 개인적인 경험이나 편견이 아니라 법률과 선례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발언은 젊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다양한 삶이 사법부를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음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사법부 구성의 다양화가 실제 미국에 도움이 될 것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녀의 발언은 매우 사려 깊고 차분하며 때로는 깊은 울림이 있어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는 뛰어난 판사이기 이전에 뛰어난 커뮤니케이터였다.

물론 이외에도 총기소유, 사유재산권, 낙태, 부시행정부의 전쟁포로 부당대우 문제, 코넷티컷주 백인소방관 승진시험 문제 등 보다 구체적인 법률적 쟁점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거나, 자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경우 대법원에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건들이므로 자신의 법률적 견해를 미리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는 모범답안으로 대응하였다. 이 부분 역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다.

셋째날까지 의원들의 추가 질의응답이 이루어지고, 넷째날에는 증인신문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관례상 이날 상원 법사위원들과 비공개 오찬을 갖는다고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증인신문을 마지막으로 청문회가 무난히 막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질의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의원이나 후보자나 보여준 서로 존경하면서 배려하는 마음가짐 그 자체였다. 고성이나 호통, 상대에 대한 멸시나 야유, 인신모욕적인 언사, 확인되지 않은 무책임한 폭로 이런 것들은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청문회장에서 낙태반대론자들의 기습시위로 청문회가 잠시 중단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패트릭 레이 법사위원장은 “당신은 상원의 손님입니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도 상원의 손님입니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발언은 경청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상원의원들의 발언도 마찬가지로 소중합니다. 이런 발언을 방해하는 어떤 행동도 이곳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고 차분하게 정리를 하였다. 시위자들은 곧바로 연행되었고 청문회는 곧 재개되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청문회는 분명히 같고도 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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