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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국제형사재판소(ICC)와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영장 발부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매달 한번씩 '김형준 검사가 본 유엔과 뉴욕법조계'가 실립니다. 뉴욕에서 주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형준 검사가 유엔과 뉴욕법조계 소식을 발빠르게 전달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주>

지난 6월1일 국제형사재판소(ICC :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송상현 소장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렘으로 향하는 비행기 편에 몸을 실었다. 닷새에 걸쳐 탄자니아, 레소토, 보츠와나 등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하는 강행군이었다. 지난 3월 국제사법기구의 수장인 ICC의 소장으로 선출된 송상현 재판관이 다른 지역을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한 것이다. 당시 레소토의 베투엘 모시실리 총리, 보츠와나의 이안 카마 대통령 등을 예방하고 직접 ICC의 중립적이고 객관적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단 오마르 알바쉬르(Al Bashir) 현직 대통령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발 움직임이 고조되는 가운데, 재판소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올해 3월, ICC에서는 역사상 기록될만한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우선 3월 11일 송상현 재판관이 국제사법기구의 수장으로 선출된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며칠 앞선 3월 4일에는 헤이그 소재 ICC 본부에 기자들이 모여든 가운데 전심 재판부(Pre-Trial Chamber)가 소추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수단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을 발표하였다. 2003년 ICC가 출범한 이후, 현직 국가원수에 대하여 영장이 발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마협정 제27조에 따라 국가원수에 대하여도 면책특권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종전에 재판부가 법정에서 체포영장 발부를 공개적으로 결정한 것과는 달리 대변인 등의 기자회견 형식을 취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전심재판부의 가나 출신 재판관을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사상 초유의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영장 발부는 ICC로서도 중압감이 있는 결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최악의 인권 침해 범죄라 일컬어지는 다르프르 사태는 친아랍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 정부와 반군과의 내전으로 비롯되었다. 수단 정부가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Janjaweed)를 지원하여 다르프르를 공격하여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05년 3월 유엔 안보리는 ICC에 다르프르 사태를 회부하였고, 그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다.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하여 국제사회는 아직까지도 다양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물론 유럽연합 등 다수의 서방국가들은 ICC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계 수단 정부와 가까운 아프리카, 중동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ICC 결정이 주권 침해적 조치로서 지역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저해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53개국의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은 리비아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에서 영장 집행에 협력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집단적 반발 움직임을 보일 정도이다.

현재 ICC에서 계류 중인 4건의 사건이 모두 아프리카(우간다, 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지역 분쟁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부 국가들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르프르 사태에 대한 수단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사국이 ICC에 사건을 회부한 것이다.

물론, 국내 사법절차와 달리 유엔 안보리는 로마협정 제16조를 토대로 ICC에 수사 또는 기소를 12개월간 정지하도록 요청할 수 있고 이를 갱신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사법절차 진행 과정에서 정치, 외교적 고려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는 셈이다. 수단 정부 등은 이를 토대로 안보리에 영장 집행을 정지하여 줄 것을 주장하면서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의 문제로 대검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형사사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정치적 해석과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 정치, 외교적인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반인도, 전쟁범죄와 같은 거악에 대한 단죄를 통하여 인권의 가치를 찾는 일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도 "정의가 없는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peace without justice cannot be sustainable)"면서 독립적 사법기구로서 ICC의 권한을 강조한 바 있다. 향후 이러한 원칙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존중이 긴요하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 전세계를 누비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송상현 소장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국내 법조계에서도 향후 ICC의 역할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응원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