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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메이도프 재판을 통해 본 미국의 형사재판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연방대법원의 하계 휴정기를 앞둔 마지막 선고기일이었던 지난 6월 29일은 미국의 법조출입 기자들에게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재판을 마지막으로 대법원을 떠나는 수터 대법관을 위하여 프로스트의 시를 인용하면서 고별인사를 하였고 나머지 대법관들은 이때 모두 기립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수터 대법관 역시 프로스트의 시구를 인용하여 화답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에 앞서 이날 대법원은 뉴헤이븐시 당국이 소방관 승진시험 실시결과 소수인종이 승진 대상에 극소수만 포함됐다는 이유로 시험 결과를 백지화하여 결과적으로 백인 소방관들의 승진을 제한한 조치가 정당하고 한 항소심 판결을 5:4로 뒤집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올해의 가장 의미있는 판결로 평가된다. 공교롭게도 항소심에서 이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수터 대법관의 후임자로 지명된 소토마요르 판사로 그녀의 인종문제에 대한 시각을 둘러싸고 향후 청문회에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막상 그날 국민들과 기자들의 관심은 워싱턴보다는 뉴욕에 쏠려있었다. 같은 시각에 뉴욕 맨해튼에 있는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30여 년 동안 약 650억 달러에 달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행각을 벌여온 71세의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에 대한 선고를 할 예정이었다. 이날 법원은 메이도프의 선고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취재진과 피해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법원에서는 이들을 위해 별도의 법정에 CCTV를 설치하여 재판을 생중계 해주었다. 메이도프는 수십년간 맨해튼 금융가에서 노벨상 수상자, 헐리웃 스타를 비롯한 유력인사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큰손으로 활약하면서 자선사업가로서도 명성을 쌓아 왔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고 전 재산을 맡긴 서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지난 12월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수십년에 걸친 돌려막기식 사기행각을 자백하면서 그는 미국 역사상 단일 인물에 의한 최장 기간에 걸친 최대 규모의 사기사건의 주인공으로 전락하였고, 그 고객들의 삶은 일순간 황폐화되어 심지어 자살에 이른 사람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국내의 많은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와 같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한 것은 금융사기 수법 자체보다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사건의 재판과정과 양형심리절차를 통해 본 미국 사법제도의 생생한 이면이었다.

메이도프가 자신의 인생이 전부가 사기임을 아들에게 고백한 것은 지난해 12월 10일이었다. 아들이 이 사실을 당국에 바로 알리자, FBI는 다음날인 11일 메이도프를 전격 체포하여 조사한 결과 주된 혐의사실에 대한 시인을 받았고, 바로 같은 날 연방지방법원은 그를 심문하고는 보석보증금 1,000만불에 바로 석방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1,000만불의 보석금을 당장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 작성의 납입서약서로 제출하는 대신, 이에 덧붙여 700만불짜리 맨해튼 아파트의 담보제공 약정서와 처를 포함한 4인의 보증서를 제출하며, 피의자의 여권을 반납하고 행동반경을 뉴욕 인근으로 제한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죄질이 중한 피의자에 대하여 너무 행동이 자유로운 보석을 허가했다는 비판적 여론이 일자, 검찰은 보석조건 변경을 위한 심문을 요청하는 한편, 피의자가 전자감시장비를 부착한 채 맨해튼 아파트 내에만 머물기로 하며 피의자 처도 여권을 반납하는 등 보석조건을 보다 강화하기로 피의자측과 합의하였고, 법원은 당사자들의 합의 결과를 받아들여 예정된 심문을 취소하고 합의된 보석조건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른바 보석조건의 다양화의 생생한 모습이다.

그런데, 불구속 상태로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피의자가 자신의 집에 보관해 온 보석과 시계 등을 가족과 친지에게 소포로 보내려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당장 피의자가 보유자산의 처분을 금지하는 보석조건을 위배하였다는 이유로 보석결정의 취소를 신청하였다. 변호인들은 이것이 재산도피라기보다는 개인의 추억과 관련된 다소 감정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사회 구성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검찰이 명백히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으나 그 입증이 부족하다며 검찰의 신청을 기각하는 한편, 피의자의 재산은닉을 막기 위하여 피의자가 당장 주거지에 있는 재산의 목록을 제출하도록 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은 사설경비업체가 2주마다 그 현황을 조사하여 보고할 것을 추가로 명하였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며 필요 최소한의 ‘맞춤형 제한’만을 허용하려는 법원의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막상 재판은 싱겁게 끝났다. 검찰은 3개월의 조사 끝에 메이도프를 각종 사기와 돈세탁, 위증 등 11가지 죄목으로 기소하였고, 피고인은 3월12일 데니 친(Denny Chin) 판사 주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기소 내용 전부에 대하여 유죄임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판사는 피고인의 유죄인정 직후 보석결정을 취소하였고, 맨해튼의 최고급 아파트에서 법정에 출석한 피의자는 구치소로 수감되었다. 아울러 재판은 사실인정을 위한 공판절차(trial)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양형심리절차로 넘어갔다. 약 3개월간의 양형심리기간 동안 양형조사관에 의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검사와 변호인 역시 피고인의 양형관련 자료를 제출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이 기간 중 1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은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판사에게 제출하였다고 한다.

선고공판이 열린 6월29일에는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의 법정증언이 있었다. 그들은 눈물과 분노로 메이도프가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는지 증언하였다. 메이도프는 피해자들에게 “이 말이 도움이 안 되리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튼 죄송하다”고 사과하였다. 검사는 법정최고형인 징역 150년을 구형하였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이미 71세의 고령이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세금의 낭비를 막은 점, 응보가 처벌의 주된 목적은 아님을 호소하면서 징역 12년만 선고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양형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징역 50년이 적정한 양형임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홍콩 출신의 이민자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미국의 연방판사가 된 데니 친 판사는 예상을 깨고 법정최고형인 징역 150년을 선고하였다. 그는 “피고인의 죄질이 극도로 나쁘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면서 “엄중한 선고결과가 앞으로 이런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아울러 법정최고형을 선고한 상징적 의미는 정부와 자신 모두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을 배려한 것임도 밝혔다. 법정에 모인 피해자들은 환호와 눈물로 뒤범벅되었다. 친 판사는 피고인이 수사와 재판에 협조하였으므로 선처를 받아야 한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서, 이 사건은 양형기준표가 예정한 사기 피해액의 최대 규모(4억불)를 한참 넘어서는 초대형 범죄이고, 피고인의 자백은 그의 사기행각이 붕괴를 눈앞에 둔 최종 시점에 마지못해 나온 것에 불과하며, 아직도 그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했거나, 알고 있는 범행의 전모를 모두 밝혔다고 보이지 않는다면서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선고결과를 둘러싼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피해자들은 심리적 위안을 느끼며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에 법률전문가들은 “징역 150년”이라는 상징적 형벌이 과연 의도한 만큼의 범죄예방적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최근의 유명 화이트칼라 범죄들에 비하여 양형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2005년 110억불의 회계부정으로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콤을 파산으로 몰고 간 CEO 버나드 에버스는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고, 2006년 에너지 대기업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에 연루된 CEO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년 3개월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물론 이들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고액 사기 혐의로 845년, 740년, 33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반드시 그 지적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피고인이 재판에 협조한 대가로 선처를 기대하고 전부 유죄를 인정했다면 큰 오산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이 사건이 준 교훈이 “메이도프의 처지에 놓인 피고인이라면 앞으로 절대로 전부 유죄인정을 미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증거가 확실한 주된 혐의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를 적극 다투면서 검사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고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여전히 유죄인정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필자는 올해 6월 미국 연방양형위원회가 주최하는 양형기준 세미나에 참석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연방양형위원회의 위원장인 히노호사(Hinojosa) 텍사스 연방법원 판사는 “자신에게 판사로서 가장 쉬운 일을 꼽으라면 시민권 취득자들로부터 선서를 받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을 꼽으라면 형사재판의 양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메이도프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과 그 이면에서 판사가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를 생각하면 재판관의 소명이란 성직자 못지않게 외롭고 힘든 길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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