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미국의 대법관 인사청문회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오바마 대통령이 소토마요르 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한지 두 주일이 지났지만, 언론의 관심과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워싱턴 포스트, CNN 등 주요 언론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소토마요르 판사의 동정과 임명 배경, 과거의 발언 및 판결에 대한 분석 기사를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요즘 소토마요르 판사는 관례에 따라 상원을 방문하여 각당 원내대표와 법사위 위원들을 돌아가며 예방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뉴스에 생중계 되다시피 할 정도이고, 덕분에 상원 법사위원들도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공개된 상견례 자리에서는 민감한 주제를 서로 피해가면서 덕담을 주고받았지만, 기자들을 물린 이후에는 청문회를 앞둔 탐색전 성격의 진솔한 인터뷰가 이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한편, 백악관은 지난 6월4일 상원 법사위가 요구한 서면답변서를 제출함으로써 인사청문 공식절차가 시작되었다. 173쪽에 이르는 서면답변서는 그녀의 학력, 재직 경력, 수상 경력, 사회단체 가입 및 활동 내역, 연방판사로 재직한 동안 참석한 각종 컨퍼런스, 세미나의 내용과 비용부담 주체, 발간된 모든 저술, 연설 원고 또는 동영상,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 17년간 연방판사로 재작하면서 처리한 사건 관련 통계 및 판결문 전부, 판사 및 변호사로서 처리했던 주요사건의 상세 내용, 재산 공개 내역 그리고 대법관 지명 과정 등을 상세히 담고 있고 그 첨부서류도 방대하다.

백악관 직원들이 박스에 담은 자료를 카트에 싣고 와 취재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회 사무처에 접수시키는 모습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늘 접하던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와 몇 가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자료제출요구’와 별도로 ‘서면질의서’라고 하여, 법률적 주요 쟁점에 대한 후보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직접 묻는 방대한 질문서를 의원별로 보내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소토마요르 판사에게 전달된 서면질의서에는 법률적 쟁점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묻는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후보자가 지내온 삶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요청이 전부였다. 이전에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서면질의서에는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묻는 질문이 유일한 법률적 이슈에 대한 질문으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청문회’ 즉 ‘Hearing’이라는 말 그대로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의원과 후보자 사이에 직접 묻고 답해야 한다는 미국식 구술주의의 전통과 서면질의에 대하여 급조된 모범답변보다는 후보자가 살아오면서 남겼던 과거의 판결, 연설 및 저술과 같은 객관적 자료에 드러나는 견해가 오히려 후보자의 진실에 가깝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문회에 임박하여 이틀 정도의 말미를 주고 후보자가 답변을 직접 완성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서면질의서를 보내오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으나, 이는 답변의 진정성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청문회의 본질에도 맞지 아니하므로 향후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재산내역의 공개방식이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재산내역은 부동산 1,017,000불, 부동산 할부금 채무 잔액 381,000불, 현금 32,000불, 자동차 등 개인재산 108,000불, 신용카드 채무 15,000불, 의료비 채무 15,000불 등으로 순자산이 약 740,000불이다. 법률가로서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박봉의 뉴욕시 검사로 출발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낸 결과 다른 변호사들에 비해 많은 재산을 모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재산의 많고 적음보다도 필자의 눈에 띄는 것은 소유주택의 주소나 면적, 차종, 예금내역 등이 세세하게 공개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항목별 총액만 공개된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 판사의 재산 공개시 소유주택 지번이나 차량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판사의 신변안전을 위한 배려이다. 지난해 토마스 대법관이 개인 소유 차량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본 일이 있는데 당시에도 보안상의 이유로 대법관 차량의 외부 모습은 촬영하지 못하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고위 공직자는 물론 그 가족들의 사는 곳과 아파트 평수, 보유 차량, 금융 내역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이를 분석해서 증감 변동 순위를 매기며, 그것도 모자라 고위공직자별 재테크 방법 분석 기사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재산공개 방식이 과연 그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도 판사들의 신변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요즘 보안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판사들에게는 본인이 요청할 경우 자택에 무인 경비시설을 설치해주고 있다.

셋째, 모든 자료의 원문을 친절하게 복사해서 첨부하는 우리나라의 달리 미국의 경우 책자로 발간된 저술, 판결문과 같이 공간된 자료는 인용정보만 표시하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다. 예컨대 소토마요르 판사의 재직 중 내린 판결문 전부의 제출을 요구받았지만, 답변서에서 판결문을 일일이 복사해서 첨부한 것이 아니라 사건번호와 검색에 필요한 인용정보만을 목록으로 첨부하였다. 이렇게 제출된 자료가 상원 법사위 홈페이지에 바로 공개된 것도 이러한 자료제출 방식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토마요르 판사가 2001년 버클리 대학에서 한 강연에서 한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진 라틴계 여성이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한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할 때가 많다”는 발언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서면답변서에 첨부된 그녀의 다른 강연 원고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급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와 그녀의 ‘인종적 편파성’을 둘러싼 논쟁은 점차 격화되는 양상이다. 백악관은 “그녀가 한 발언의 극히 일부만을 떼어내 오도하지 말고, 그녀가 판사로서 내렸던 모든 판결과 발언 전부를 종합하여 살펴본다면 그녀가 매우 공정하고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고 적극 해명하고 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인사청문회의 처리시한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청문회 준비기간도 매우 길고 혹독하다. 대통령의 지명 이후 인준까지 브라이어 대법관은 73일, 긴스버그 대법관은 50일,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72일, 얼리토 대법관은 92일이 걸렸다고 한다.

백악관은 소토마요르 판사가 가을 개정기부터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회가 74일 이내에 인준을 마쳐줄 것을 바라고 있다. 자신의 걸어온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74일 동안 매달려 샅샅이 분석하는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토마요르 판사에게 올 여름은 참으로 길고도 혹독한 계절이 될 것 같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