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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불충분한 증거로 판단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下)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1984년 7월8일 밤 루이지애나 주의 북쪽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인 매니에서 Sonja Merritt Knippers라는 43세 된 여성이 자택 욕실의 변기에 앉아 있는 채로 누군가로부터 칼로 난자당하여 살해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Herbert Knippers는 당시 침실에서 자고 있다가 “흑인이 나를 죽이고 있다”는 아내의 외침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하였다. 이에 경찰은 흑인 3명을 용의자로 체포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이 Dobie Gillis Williams였다. 그는 보호시설에서 절도죄로 복역을 하다가 모범수로 인정받아 주말에 할아버지 집에서 귀휴를 보내고 있었다. 밤 2시30분에 집에서 잠을 자다가 체포된 Dobie는 경찰서로 인치되자마자 곧바로 신문을 받았다. 신문을 한 경찰들은 Dobie에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하루 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계속 신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법정에서 3명의 경찰관이 증언을 하였다. 이에 따르면 Dobie가 자백을 하였고, 현장 욕실 커튼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분석 결과 7가지 특징점이 Dobie와 일치하며, 이는 통계적으로 흑인 1,000만명 중 2명꼴로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증인으로 나온 경찰관들은 욕실 밖 벽돌 모서리에서 검정 피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 점으로 보아 범인이 욕실 창문으로 들어왔다가 도망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하였다. Dobie에 대한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1주 만에 배심원들이 선정되었고 증거조사 후 불과 2시간 만에 유죄평결이 내려졌으며 이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배심원들은 9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배심원 선정절차에서 후보자로 나온 몇 안 되는 흑인들 모두를 검사 Don Burkett은 기피하였다. 배심원들이 백인 일색으로 구성된 데 대하여 변호인인 Michael Bonnette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써 나중에 항소심에서 1심판결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고 이는 Dobie의 운명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당시 Dobie의 나이는 30세였고, 지능지수가 65로 일반적으로 정신지체로 분류되는 70을 하회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는 류머티스 관절염이 있어 손가락 마디가 울퉁불퉁 하였고 특히 왼쪽 무릎이 안 좋아 천천히 힘들여 걸어야만 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침실에서 잠을 자다가 아내의 비명소리에 잠을 깨었는데 당시 뭔가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피해자가 “안 돼, 하지 마, 날 해치지 마, 날 죽이지 마, 죽이지 마, 죽이지 마, … 이 흑인이 나를 죽이고 있어, 도와 줘”라고 외치는 것도 들었다고 하였다. 그가 욕실로 달려가자 안에서 잠긴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나와 “어떤 흑인이 나를 죽이려 했어, 그는 창문으로 도망갔어”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이 아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를 거실 소파에 누인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이 Dobie를 체포하였을 때 그의 양쪽 다리에는 긁힌 상처가 있었는데 이는 욕실 창문으로 급히 빠져나갈 때 생긴 것으로 추측되었다. 부검의가 추정한 사망시각은 12시45분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의 부검보고서에는 사망시각이 11시45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Dobie는 사건 발생 전의 행적에 대하여 일관되게 Fred Harris의 가게에서 술을 마시다가 11시 30분경 집으로 향했다고 진술하였다. 그의 여동생인 Cheryl은 11시45분경 Dobie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는 샤워를 한 후 여자친구인 Debbie Sloan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그녀가 집에 없어 통화를 하지 못하였다고 증언하였다. Debbie의 사촌인 Johnny Sloan도 그날 밤 11시45분경에 Dobie의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하지만 Dobie와 면식이 있던 Clyde Gosey는 이와는 달리 11시30분에서 40분경에 Dobie의 할아버지 집에서 약 1마일이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Dobie를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경찰관들은 Dobie가 심문을 받기 시작한 지 약 2시간 반 만에 범행을 자백하였다고 증언하였지만 그가 어떻게 피해자의 집에 들어갔고, 살해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다만 살해방법에 대해서는 그가 욕실에 들어갔을 때 선반에서 칼을 발견하고 이를 집어든 채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피해자를 찔렀고 그 후 욕실 창문으로 빠져나가 뒷마당에 칼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자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Dobie는 자백진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자백을 녹음한 테이프도 없었다. 신문을 한 3명의 경찰관 Jimmy Kinney, Joe R. Byles, James D. McComic은 Dobie가 자백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내용으로 증언을 하였다. 그들 중 1명은 Dobie의 여동생인 Cheryl이 증언과는 달리 원래 자기에게는 Dobie가 1시가 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는 내용으로 증언하였다. 이는 전문(傳聞)진술로서 원칙적으로 증거로서 허용되지 않으나, 그가 경찰이기에 허용되었다.

피해자의 남편은 범행도구인 칼에 대하여 그날 자기가 닭고기 요리를 하면서 사용한 후 씻어서 부엌 건조대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기억되지만 요리를 마친 후 욕실로 가서 세수를 할 때 그곳 선반에 놓아두었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다. 검사는 욕실 창문의 방충망이 잘려진 것과 관련하여 밖에서 칼과 같은 물건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범인이 그 도구를 둔 채 굳이 집 안에서 칼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 밖에도 의문은 계속된다. 경찰관 Kinney는 Dobie가 거실로 들어가다가 소파에서 잠든 피해자를 보고는 욕실로 되돌아갔다고 진술한 것처럼 증언하였고 이와는 달리 경찰관 Byles는 Dobie가 욕실 창문을 통하여 피해자가 소파에서 잠을 자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한 것처럼 증언하였는데 실제로는 욕실 창문으로는 거실 소파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뒷마당에서 발견된 문제의 칼은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사람은 물론 짐승의 혈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Dobie가 범인이라면 피해자를 칼로 난자하여 욕실에 전체적으로 피가 튀었음에도 어떻게 Dobie의 옷에서는 일체 혈흔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지가 커다란 의문이다. 경찰관 McCormick은 Dobie의 다리에 난 긁힌 상처와 관련하여 그가 창문을 통하여 욕실을 빠져나올 때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McCormick은 Dobie의 왼손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있던 상처가 칼로 찌를 때 생겼을 것이고 거기에서 흐른 피가 욕실 커튼에 묻게 되었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이러한 증거들을 토대로 검사는 배심원들 앞에서 “피고인이 욕실로 들어가기 전에 옷을 벗었거나 또는 들어간 후에 옷을 벗어 밖으로 던졌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만약 피해자가 아닌 남편이 욕실로 들어왔더라면 어찌했을 것인가.

욕실 창문은 가로 50cm 세로 26cm 크기였다. 사건 발생 전에 이미 욕실 창문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 있었지만 피해자 부부는 창문이 아주 작고 땅에서 높아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사반장인 Ted Delacerda는 법정에서 증언하기를, 자신이 직접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 머리부터 빠져나가 보았는데 7초 만에 이를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실험장면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고도 증언하였지만 실제로 증거로 현출된 바는 없다.

항소심의 변호인들은 Stuart James에게 과학수사증거들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였는데, 그는 혈흔과 관련하여 Dobie가 결코 욕실 창문으로 들고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심층적인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항소심 판사들은 이러한 분석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Dobie를 구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들이 있었는데, 새로 도입된 DNA 검사도 그 중 하나였다. 1998년 11월에 Dobie는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분 앞두고 증거물상의 혈흔에 대한 DNA 검사를 위하여 검사 Burkett에 의하여 사형집행이 보류되었다. 이때가 Dobie에게는 10번째로 정해진 사형집행일이었다. 검사는 댈러스에 위치한 ‘GeneScreen’이라는 분석실험실을 선택하였다. 아울러 그는 변호인들이 동시에 다른 분석실험실에서 DNA 검사를 하거나 또는 GeneScreen에서의 분석과정에 참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하였다. Dobie의 변호인은 이러한 결정을 따르는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1998년 12월1일에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욕실 커튼의 혈흔에서 추출된 DNA가 Dobie의 것과 서로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즉시 이 사실을 공표하고 사형집행일을 1999년 1월8일로 다시 지정하였다.

Dobie의 변호인들은 급히 GreenScreen의 DNA검사결과를 분석할 전문가들을 물색하였으나, 검사는 사형집행일을 불과 3일 앞둔 1999년 1월5일까지 위 실험실의 검사자료에 대한 변호인 측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그 후 짧은 기간 동안 변호인 측의 DNA 전문가들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GreenScreen에서의 DNA 검사는 그 기법이나 질적 측면에서 매우 엉성하고 빈약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 게재되는 등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검사가 다시 실시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검사는 전문가들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999년 1월8일 오후 1시로 11번째 사형집행일이 정해졌고, 그날 Dobie는 모친을 비롯한 가족들과 이 책의 저자인 Helen Prejean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들, 그 밖의 많은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물주사방식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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