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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불충분한 증거로 판단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上)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1996년 미국 법무부 산하의 National Institute of Justice(NIJ)에서는 전국적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 DNA 검사를 통하여 무고함이 확인된 사례들을 28건이나 찾아내 ‘Convicted by Juries, Exonerated by Science’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형사사건에서의 DNA분석기법의 도입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위 보고서에서 다루어진 사례들은 1980년대 중반 및 후반에 발생한 관계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DNA 분석기법이 활용되지 아니하였다. 그들 중 대다수의 사건에서 DNA 증거 이외의 다른 과학수사증거가 있었다. 피해자의 신체나 옷, 기타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혈액, 정액 또는 머리칼 등의 샘플에 대한 분석이 그것이다. 검사측 전문가 증인은 배심원들에게 이러한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결과가 신빙성이 있다고 확신시켜 왔다. 하지만 DNA 분석에 기초하지 아니한 다른 과학적 결론들은 DNA 분석에 기초한 것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Mark Diaz Bravo 사건에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피해자는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범인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Bravo였다. 담요에 남아 있던 정액흔에 대하여 혈청분석을 한 결과 Bravo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인구 중 불과 약 3%에서만 발견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증거샘플에 대하여 DNA분석을 한 결과 Brovo는 그 출처가 될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과거 상당수의 사건에서 검사는 전문가의 분석과 증언을 통하여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칼이 피고인의 것과 동일하다는 점을 입증하곤 하였는데, DNA 분석결과 법원이 증거로 받아들였던 현미경에 의한 머리칼의 비교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증언이 ‘Daubert 기준’ 아래에서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연방지방법원의 판결례도 나오게 되었다. 

DNA 증거의 경우 그에 관한 과학적 이론 자체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다. 하지만 실험절차의 적합성과 검사자의 능력이나 자격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National Research Council(NRC)은 ‘DNA Technology in Forensic Science’라는 보고서에서 DNA 검사결과의 신빙성을 확실히 하는 일정한 기준을 추천하였다. Simon A. Cole은 ‘Fingerprint Identification and the Criminal Justice System : Historical Lessons for the DNA Debate’라는 논문에서 DNA 증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무리 과학적인 분석기법이라도 실험실에서의 분석과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분석가들의 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이 기준에 미달할 수 있으며, 나아가 경찰에 고용된 분석가들의 경우 무의식적으로라도 수사기관에 편향된 태도를 취한 나머지 분석결과의 과학적 확실성을 과장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숙련도의 테스트, 구체적인 분석결과에 대한 독립된 평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Fred Zain은 웨스트버지니아 주와 텍사스 주에서 혈청 등의 분석업무를 담당하였는데, 나중에 그가 130건 이상의 형사사건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대법원에 제출된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확실하지 않은 결과를 확실한 것처럼 증언하였고, 실험기록을 변조하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Zain의 감독자들은 그의 위법행위를 보고받고도 모른 체 하였음이 밝혀졌다. NIJ 보고서에 소개된 사례들 중 Gilbert Alejandro 사건에서 피해자는 야간에 캡모자를 쓰고 회색 티셔츠와 어두운 색깔의 짧은 반바지를 입은 범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하였다.

경찰은 그 일대를 순찰하던 중, 마침 범인과 같은 종류의 옷을 입고 있던 Alejandro를 체포하였다. 피해자는 용의자들의 사진첩에서 Alejandro를 범인으로 지목하였고, 1990년 10월 그는 유죄평결과 함께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90년 7월에 정액 샘플에 대하여 행해진 원래의 DNA 검사결과는 Alejandro의 DNA와 일치하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는데, 1990년 10월3일에 앞서와 달리 RFLP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증거물의 DNA가 Alejandro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Fred Zain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면서도 아무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동안 소개된 오판사례들은 유죄판결 확정 후 진범이 체포되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새로 발견된 증거에 기하여 종전의 유죄판결이 무효로 되거나 주지사에 의한 사면으로 피고인이 무죄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례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다음 호에 소개하는 사례는 피고인에 대한 사형 판결이 집행된 경우이다. 아직까지 그 피고인이 무죄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여기서 이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동안 무죄로 밝혀진 전형적인 오판사례 외에도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아니한 채 망각 속에 묻힌 사례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Helen Prejean은 원래 직업이 가톨릭 간호사이지만 1982년부터 종교적인 동기에서 사형수들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형폐지론을 주장하게 된 사람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1993년 ‘Dead Man Walking’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그녀 자신도 퓰리처상 후보자로 오르기도 하였다. 그녀의 두 번째 책이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The Death of Innocents-An Eyewitness Account of Wrongful Executions’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형이 집행된 Dobie Gillis Williams와 Joseph Roger O’Dell의 사례를 소개하였는데 그녀는 두 사람이 무죄라고 확신하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무죄방면을 위하여 그러한 노력들이 모두 무위로 돌아간 후에는 사형집행장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그들의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목격자이다. 그들이 진실로 무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사법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더라면, 피고인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변호와 조력을 받았더라면 과연 유죄판결을 받았을까 하는 질문 앞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죄 여부를 떠나 사법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사형집행장에서 저자가 느꼈던 감정과 품었던 생각들을 글로나마 공유하는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하여 본다. 이 부분은 나중에 책 전부를 번역하는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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