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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미국의 법원장회의에 다녀온 소감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두고 전국법관 워크숍이 열리고 있던 4월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필자는 미국 사법행정의 실제 운용 사례를 보기 위해 워싱턴 D.C.의 연방사법센터(Federal Judicial Center)에서 열린 연방지방법원장 회의(Conference for Chief Judges of United States District Courts)에 참석하였다. 사법부의 최고 정책 의결 기구인 연방사법회의(Judicial Conference of the United States)와 달리 연방사법센터 주관으로 1년에 한차례씩 열리는 연방지방법원장 회의는 연방사법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현안들을 법원장들에게 설명하고, 법원장들 상호간의 경험과 의견을 교환하며, 신임 법원장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열리는 행사로서 그 성격이 다르다.

미국의 연방지방법원은 총 94개이나, 차기 법원장으로 내정된 판사들도 자신의 취임이 예정된 연도에 실시되는 법원장회의에 현직 법원장과 함께 참가하여 미리 오리엔테이션을 받도록 되어 있으므로 올해는 총 104명의 법원장 및 판사가 참석하였다.

미국의 연방사법센터는 이례적으로 법원장들만의 행사에 한국의 판사인 필자에게 참석을 허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연방법원장들과 동일한 좌석과 명패를 제공하여 주었다. 그 동안 한미 양국간의 사법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법부의 국제적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느끼는 보람있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미국의 법원은 우리보다 좀 느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일과시간의 집중도와 생산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필자가 이전에 참석해 본 연방법관 연수도 아침 8시에 시작하여 별도의 점심시간 없이 배달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하루 종일 계속되었는데, 이번의 법원장회의도 아침 8시부터 시작되었고 대신 회의장 입구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비치되어 있었다. 회의는 마치 로스쿨 수업처럼 계단식 강의실에서 자유로운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회의장 밖에서는 항상 다수의 경호원들이 빈틈없는 보안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틀간의 회의를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점은 그야말로 ‘판사’가 사법행정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방사법센터 소장의 간단한 인사말과 법원행정처장의 금년도 연방사법회의 결과 설명에 이은 주제 발표는 모두 판사인 연방사법회의 산하 위원장들이 맡았다. 예산위원장이 사법부 금년도 예산안 및 대의회 접촉 결과에 관하여 현황 설명을 하고, 법원행정 및 사건관리위원장이 법정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정 배정 방침을, 공간 및 시설담당 위원장이 법원 공간 배치와 청사 신축 문제를, 법원경비 위원장이 미결구금자들의 유치공간 문제를 직접 설명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3년간의 임기 동안 해당 분야에 관하여 사실상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데 예상보다 뛰어난 전문성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한편 법원행정처 및 연방사법센터의 직원들은 회의 내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위원장이 구체적인 집행 방식이나 통계자료 등을 물을 때만 곧바로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으며, 판사들에 대하여 시종일관 철저한 지원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사법행정에서 대의회 업무의 우선순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틀 동안 논의된 법관보수 인상, 법관 증원, 재판과정 영상녹화, 법정부족 문제 해결방안, senior judge의 업무량 문제 등 대부분의 문제가 대의회 설득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위원장들은 법원장들에게 해당 지역구 상·하원의원들을 자주 접촉하면서 법원이 처한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고, 재판 이외에도 법원에서 수행하는 여러가지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 홍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의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한 답변 차원에서 만든 자료집은 웬만한 책 한권이 될 정도로 내용이 충실했다. 한편 의회와의 접촉을 중시하면서도, 특정 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초당파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모습은 사법부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로 보였다.

또한 법무부장관이 참석한 것도 눈여겨 볼만 했다. 최초의 흑인 출신으로 유명한 에릭 홀더 법무부장관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여 법원장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사전 각본 없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론 법원장들도 법무부장관의 입장과 퇴장시에 기립박수로서 예의를 갖추었다. 에릭 홀더 법무부장관은 최근 검찰이 스티븐스 상원의원을 기소하였다가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긴 사실이 드러나 사실상 공소가 기각된 사례를 언급하면서 검사들의 윤리의식 제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말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불러주면서 재판과정에서 검사의 불성실을 발견하면 자신에게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라는 농담성 당부도 덧붙였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법원장들은 주로 미결구금자 수용시설 및 호송, 경비인력 부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법무부에서 이런 부분의 예산확보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재소자들의 사회복귀 지원방안은 충분한지 등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속사정을 들어보면 걱정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참 법원장들이 신참 또는 차기 법원장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경험담을 알려주는 토론 시간에 법원장들은 법원내 각종 위원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판사들과의 식사, 티타임 또는 정례회의 등을 통한 의사소통 방법, 일반직원에 바람직한 관리 방법 등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빴다.

다음날은 전 참가자들을 비슷한 법원 규모별로 5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분임 토의를 실시하였다. 그룹별 참가자들끼리 미리 이메일을 교환하여 논의할 의제를 미리 정해왔기 때문에 곧바로 토론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주최측의 개입없이 철저히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법원장은 법관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 법관을 직무에서 바로 배제시킬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생했던 경험을 설명하면서 판사 부적격 심사절차는 ‘핵무기’와 같아서 위협용으로 갖고만 있을 뿐 막상 쓰기는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법원장은 국선변호인들의 불성실과 자질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역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건처리 지연으로 미제사건이 적체된 판사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모든 판사의 실적이 공개되는 월별 사건처리 통계를 회람시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일부 법원장은 다른 판사의 처리실적까지 알 필요는 없으므로 처리실적 평균치만 공개하고 자신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하면 족하다는 의견도 제시하였다. 그 밖에 변호사들의 불성실한 변론에 대한 대처방안도 논의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미국과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점이 주로 눈에 띄었는데, 요즘 와서 보면 볼수록 같은 점들이 눈에 띈다. 결국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본성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의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 나라가 어떠한 사법시스템을 갖느냐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제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판사들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반드시 강대국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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