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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선처를 약속하고 받아낸 자백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Kassin과 Wrightsman은 허위자백의 유형을 ① 자발적인 자백(voluntary confession), ② 강요에 따른 자백(coerced-compliant confession), ③ 강요로 내면화된 자백(coerced-internalized confession)의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였다. 그 중 강요에 따른 자백은 ① 엄벌 등의 위협으로 받아낸 자백, ② 선처의 약속으로 받아낸 자백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보다 후자의 경우에 용의자가 쉽게 자백에 대한 압력을 이겨내고 허위자백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에서의 실험 결과 양자의 영향력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에 있어서도 수사관으로부터 선처를 약속받고 허위자백을 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그 중 하나의 사례로 C. Ronald Huff, Arye Rattner, Edward Sagarin 共著 ‘Convicted But Innocent-Wrongful Conviction and Public Policy’에 소개된 Bradley Charles Cox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1979년 오하이오 주 랭카스터 시에서 2건의 강간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범행방법이 서로 유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잔혹하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었다. 범죄가 워낙 흉악하여 경찰에 사건을 빨리 해결하라는 압력이 빗발쳤다. 경찰은 1980년 2월초에 범행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Bradley Charles Cox를 용의자로 체포하였다. Cox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백인 청년으로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탈영을 한 상태였고, 비록 폭력적인 범죄는 아니었지만 자동차 절도 등의 전과도 있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보석 중에 행방을 감추는 바람에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범인을 빨리 잡아내라는 압력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는 손아귀에 든 용의자가 진범이고, 또한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 사회의 안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사건을 해결하면 담당 형사는 사회의 영웅이 되고, 이에 수반하여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Cox는 그 전에 노스캐롤라이나 잭슨빌에 위치한 민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법정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위 교도소에서의 수감생활이 그에게는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고, 학대가 끊이지 않으며, 수감자들 사이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없었다. Cox의 표현에 의하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미친 사람들로 보였다는 것이다. Cox는 노스캐롤라이나의 교도소나 해군 교도소로 보내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였다. 경찰 신문과정에서 Cox는 이러한 사정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경찰은 신문 내내 때로는 은밀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백만 한다면 전에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로 이송되지 않고 그곳에서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경찰 신문기록이나 Cox의 법정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Don Regan이라는 형사가 “우리가 자네를 돕고 싶다는 것을 알겠나”, “그런데 우리가 자네를 도우려면 자네는 정직해야 돼”, “자네가 협조만 해준다면, 내가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송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어“라는 말들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경찰 신문기록에는 Cox가 형사들의 도움에 감사한다는 표현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Cox는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지만 두 건의 강간범행을 자백하였고, 자백조서에 서명까지 하였다. 법정에서 피해자들과 그 남편들이 목격증인으로 증언하였는데, 비록 범행 당시 범인이 스키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하였지만, 이들은 Cox를 범인으로 확실히 지목하지는 못하였다. 검사는 이들 증인들로 하여금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상세히 묘사하다시피 증언하도록 하였다. 범행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 치욕 등이 적나라하게 배심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에 대하여 변호인은 범행의 구체적인 수법이나 내용은 쟁점이 아니므로 그러한 증언들은 관련성(Relevancy)이 없다고 다투었다. 실제로 상세한 범행 묘사는 배심원들로 하여금 Cox가 범인이라는 편견을 갖도록 할 위험이 있었다. 반면, Cox의 알리바이는 확실하지 않았고, 증명할 수도 없었으며, 자체 모순되기까지 하였다. 1980년 4월25일 오후 5시부터 약 3시간 반 가량 평의가 진행되었음에도 배심원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다음날 아침부터 속개된 평의가 오후 3시30분이 되어서야 종료되었다. 결과는 유죄 평결이었다. 이에 따라 Cox에게는 징역 50년에서 200년까지의 형이 선고되었다.

Cox의 변호인은 국선변호인이었는데, 그는 과도한 업무로 인하여 Cox의 사건에 제대로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무죄의 단서를 찾아내려면 반드시 독자적인 조사활동을 벌여야 하는데, 한정된 예산 사정으로 그러하지도 못하였다. 재판기록을 보면 변호인은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재판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놓쳤다. 그가 순발력 있는 유능한 변호사였더라면 이를 결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Cox가 체포되어 수감된 지 약 2년 후 루이지애나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John Berry Simonis가 오하이오 주에서 발생한 강간사건들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다. 그는 각 주를 돌아다니며 범행을 하였는데, 오하이오 주도 그가 거쳐간 곳 중 하나였다. Cox를 신문하였던 형사가 루이지애나로 가서 Simonis를 면담하였는데, 그는 진범만이 알 수 있는 범행의 상세한 내용들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Simonis는 Cox와 닮은 데도 없었다. Simonis는 오하이오 주에서의 범행들에 대하여도 유죄판결을 받았고, Cox는 실제 무죄라는 이유로 조건 없는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 이에 대하여 당초 Cox를 신문하였던 형사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Cox는 주 정부를 상대로 잘못된 구금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6자리 숫자의 배상금(10만불 이상 100만불 미만)으로 합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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