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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판사 선거제도의 명암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우리에게 친숙한 존 덴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에서 천국으로 묘사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웨스트 버지니아주는 석탄 채굴업 이외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어 평소 전국적인 관심을 끌만한 소송이 생길 여지가 별로 없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곳에서 벌어진 존 그리샴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제 사건이 연방대법원에 상고되면서 판사 선거제도, 나아가 재판의 신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원고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토박이 중소 탄광업자였다. 그러나 거대한 탄광회사인 피고의 방해로 주된 거래처를 잃어버리고 파산에 이르게 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웨스트 버지니아 주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주법원 배심원단은 원고에게 5,000만불(약 75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원고의 기쁨은 잠시였다.

피고는 곧바로 주대법원에 상고하는 한편, 주대법관 선거에서 자신에게 불리할 것으로 생각되는 현직 맥그로우 대법관의 재선을 막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무려 300만불(약 45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하였다. 참고로 웨스트 버지니아주는 1심 법원과 대법원만이 있는 2심제를 채택하고, 대법원은 5명의 선출직 대법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거자금은 맥그로우 대법관이 아동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하였다고 비난하는 자극적인 방송광고에 대거 투입되었고, 결국 피고가 후원한 벤자민이 대법관에 당선되었다. 원고는 피고로부터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받은 벤자민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할 경우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기피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주대법원은 벤자민 대법관의 캐스팅 보트에 힘입어 3:2로 이 사건을 관할위반으로 파기하였다. 원고는 이 판결이 적법절차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고, 연방대법원에서는 지난 3월3일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이 사건에 대한 구술변론이 열렸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언급한 바가 있듯이, 주법원 판사 선출방식의 개선은 현재 미국 사법부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또 심급별로 판사선출방식이 매우 복잡하게 세분되어 있지만, 크게는 주지사가 직접 임명하는 경우와 선거로 뽑는 경우로 구분된다. 법조인, 일반인이 참여한 후보지명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보자 가운데서 주지사가 판사를 지명하는 이른바 ‘미주리주 방식’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지만, 현재도 39개의 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판사 선거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판사 선거제도의 문제점은 역시 막대한 선거 비용의 조달에서 비롯된다. 통계에 의하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주대법관 선거에 소요된 비용이 총 8,700만불이었으나,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소요된 비용이 이미 그 두 배인 1만6,800만불에 이른다고 한다. 정치권보다 더한 자극적인 비난 광고가 TV에 넘쳐나는 혼탁한 판사 선거는 이미 ‘군비경쟁’이 되었다는 비판이 일 정도이다.

문제는 이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변호사들과 기업, 각종 이익단체들이 결국은 잠재적인 당사자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주에서 판사의 회피 여부는 스스로에게 맡겨져 왔을 뿐, 연방대법원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재판에 쏠린 관심을 보여주듯 대법정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고, 평소 판사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것으로 유명한 샌드라 오코너 전 대법관도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방청하였다.

원고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실제로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보일 개연성조차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피고가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하였고, 판사가 이로 인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관상 재판이 불공정하리라는 개연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적법절차의 침해는 실제로 불공정한 사례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며, 원고가 주장하는 기준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피고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적법하게 선거자금을 기부한 것뿐이고,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친분 관계는 물론 이 사건의 승소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도 없었으므로 회피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판사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던 언론사나 이익단체가 관련된 소송을 맡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간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소송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한계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관들도 자신들의 사법 철학에 따라 극명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췌장암 수술을 마치고 곧바로 재판에 복귀한 긴스버그 대법관을 비롯하여 스티븐스, 수터 대법관 등 진보 진영은 판사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연성만으로는 권리 침해가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였다. 수터 대법관은 “외관상 재판이 공정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에, 바로 국민들이 요즘 사법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사건에서도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케네디 대법관은 “우리 사법시스템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철저히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상고인의 이러한 주장은 일응 타당해 보인다. 다만 나는 좀 더 기준이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여 이들의 입장을 지지할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로버츠 대법원장과 스칼리아 대법관 등 보수 진영은 원고의 주장이 아무런 실체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개연성이라는 말은 너무 모호하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가능한 선거자금 기부의 시나리오를 단계적으로 열거하고는 “만약 광부노조에서 선거자금을 지원하였다면 그 판사는 노동 관련 사건을 전부 회피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였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나 자신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지만, 레이건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회피할 생각은 없다. 다른 모든 대법관들도 자신을 임명해 준 대통령이 관련된 사건을 무수히 처리해 왔다”고 반박하였다.

사실 스칼리아 대법관은 지난 2004년 연방대법원에 체니 부통령 관련 사건이 계류 중인 상태에서 오랜 친구인 체니 부통령과 함께 오리사냥 휴가를 다녀온 것이 공개되면서 언론으로부터 회피 압력을 강하게 받았던 적이 있다.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그는 과거 할란 대법관이 후버 대통령의 술친구였고, 빈슨 대법원장은 트루먼 대통령과 포커 멤버였으며, 화이트 대법관이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스키여행을 다녀왔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친구 개인의 재산이나 사적인 권리에 관한 소송이라면 친구라는 이유로 회피하는 것이 마땅하나, 비록 친구이더라도 정부를 대표하여 당사자가 된 경우라면 친구라는 이유가 회피의 사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덧붙여서 그는 “국민들이 이 나라의 대법관이 그렇게 값싸게 팔려간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는 부적절한 결탁이 많이 일어날지 몰라도, 법원은 절대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법관들의 진정성을 믿어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아마도 지난 3일, 스칼리아 대법관에게는 그때의 억울했던 심정이 다시 떠올랐던 것 같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90%는 판사 선거운동에 자금을 기부한 개인이나 단체가 당사자가 된 사건이라면 판사가 회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연방대법원은 올해 6월 안에 이 사건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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