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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대법원장이 애리조나에 간 까닭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지난 2월4일 애리조나 대학을 방문하였다. 우리에게는 그랜드 캐년이 있는 서부의 사막지대 정도로만 알려진 애리조나(Arizona) 주는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존 메캐인 상원의원의 지역구이고, 어린 시절을 이곳 목장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한 샌드라 오코너 대법관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버츠 대법원장이 애리조나를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로클럭 시절 대법관으로 모셨고, 또 자신의 직전 대법원장이기도 한 윌리암 렌퀴스트 때문이었다.

지난 2006년 애리조나 대학 로스쿨은 1994년부터 11년간 이곳에서 연방대법원에 대한 강의를 해 온 제16대 대법원장 윌리암 렌퀴스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그의 사법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상 통치구조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의 견제와 균형과 사법권의 독립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룬다고 한다. 이 연구소의 운영위원회에는 브라이어 대법관, 오코너 대법관 등 법조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소장은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수석보좌역이었던 샐리 라이더가 맡고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연구소에서 열리는 특별강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애리조나를 찾은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웹사이트를 통해 중계되는 가운데 로스쿨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렌퀴스트 대법원장이야말로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세명의 대법원장 중의 한분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대법원에서의 변론을 정치학과 정책학의 영역에서 순수한 법률적 토론의 영역으로 옮기는 지각변동을 가져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렌퀴스트가 47세의 젊은 나이에 대법관이 되었던 1972년만 해도 헌법은 오히려 정치학의 영역에 가까웠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중요한 사건들의 변론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거대한 정치 담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렌퀴스트가 대법관이 되면서 구술변론은 그 사건에 적용될 선례와 법조문의 구체적 의미를 분석하는 쪽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렌퀴스트는 정치학과 법학을 모두 전공한 경력이 있어 이러한 지각변동을 이끌기에 적임자였다고 한다.

아울러, 로버츠 대법원장은 렌퀴스트가 대법관이 될 당시에는 연방판사를 거친 대법관이 오히려 소수였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렌퀴스트 대법관이 취임 초기에 유일한 소수의견으로 전락하는 일이 계속되다보니 보다 못한 그의 로클럭이 ‘외로운 서부의 총잡이’ 인형을 선물했고, 렌퀴스트는 임기 내내 집무실 벽난로 위에 그 인형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렌퀴스트의 소수의견들은 법원의 다수의견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와 관련하여 현재의 대법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대법관이 연방항소법원 판사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책 지향적이기보다는 보다 법률 지향적이라고 설명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긴스버그, 브라이어, 스칼리아 대법관은 판사가 되기 전에 로스쿨 교수를 지냈고, 수터 대법관은 뉴햄프셔의 법무부 장관이었으며, 자신과 케네디, 스티븐스 대법관은 변호사로 일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어 도움이 된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렌퀴스트가 1986년 대법원장이 된 이후에는 동료 대법관들로부터 공정하고 효율적인 법원 운영으로 존경을 받았음을 회고했다. 실제로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합의 방식이나 주심 대법관 지정에 있어 다소 자의(恣意)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워렌 버거 전 대법원장과 달리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합의시 자신이 먼저 사건의 개요와 주요 쟁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 후, 서열에 따라 선임대법관부터 돌아가면서 간단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도록 하되 모든 대법관의 발언이 한 차례 이상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두 번의 발언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주심 대법관 지정에 있어서도 한 대법관이 현재 집필하고 있는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는 다른 사건을 배당하지 않으며, 자신이 소수의견일 경우 다수의견의 집필자 선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확고히 지켰다고 한다.

또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렌퀴스트의 소탈했던 인간적인 면모도 회고하였다. 정장 구두 대신 캐주얼 구두를 즐겨 신었고 구레나룻을 길렀던 렌퀴스트는 동네 YMCA에서 하는 25불짜리 수채화 수업에 단 한 차례도 결석하지 않기 위해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에 불참한 일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렌퀴스트는 로버츠 대법원장에게 가장 큰 스승이었다. 렌퀴스트가 33년간 대법원에 재직하는 동안 로버츠 대법원장은 39차례나 대법원에서 변론한 경력이 있다. 그는 매번의 구술변론이 수업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렌퀴스트는 변호사들에게 구체적 사건에 적용될 법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준비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었다고 한다.

아울러 로버츠 대법원장은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 중 한 학생으로부터 법관의 상원 인준절차에서 정당의 이해가 점점 강조되는 것이 사법권의 독립에 위협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법원 전체적으로 볼 때 사법부에 정치적 행태와 당파적 이해가 점점 스며들고 있는 것에 우려를 갖고 있다”고 답하면서 “법관직은 정치적 역할을 하는 자리가 아니고, 자신을 지명해 준 행정부나 인준해 준 상원을 대변하는 자리가 결코 아니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져야 하며, 자신이 법관으로 선서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이 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음도 곱씹어 볼만하다.

비록 전직 대법원장의 업적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거론된 것이지만, 바람직한 대법관상에 대한 대법원장의 과감한 언급은 미묘한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긴스버그 대법관이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치료 중에 있기 때문이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두 번째의 여성 대법관으로 지명된 그녀는 어느덧 75세로 스티븐스 대법관 다음의 연장자가 되었다. 다행히도 췌장암은 초기이고, 긴스버그 대법관은 2월23일 구술변론부터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멀지 않아 사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연방항소법원 판사출신들이 선례를 더욱 존중한다거나 정치적 관점을 배제한다는 전제는 자료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하며 대법관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등 벌써부터 차기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가인연수관」 기공식이 고향인 전북 순창에서 있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나아가 우리나라도 이제는 학계와 함께 전직 대법원장들의 사법철학과 업적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미국 연방대법원 구내서점에 들릴 때마다 즐비한 대법관들의 전기를 보면서 주눅 들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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