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증거의 오염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그 동안 오판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인 Edwin M. Borchard 著 CONVICTING THE INNOCENT(1932년)에 실린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번 회부터는 비교적 근래 밝혀진 오판사례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주된 출처 : Saundra D. Westervelt, Jonh A. Humphrey 공동편집 'WRONGLY CONVICTED - Perspectives on Failed Justice' 중 George Castelle, Elizabeth F. Loftus 공저 'Misinformation and Wrongful Convictions'>

오판은 대개 하나의 실수만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WRONGLY CONVICTED- Perspectives on Failed Justice’(Saundra D. Westervelt, Jonh A. Humphrey 編, 2005년)라는 책에서 George Castelle와 Elizabeth F. Loftus는 종전에 다루어져 온 오판의 원인들을 서로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증거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교차오염(cross-contamination)의 위험성에 대하여도 지적하고 있다. 즉, 하나의 잘못된 정보의 제공이 다른 정보를 오염시켜 결국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George Castelle 등은 대표적인 사례로 William O’ Dell Harris 사건을 들고 있다. 이 사건은 ‘Convicted by Juries, Exonerated by Science : Case Studies in the Use of DNA Evidence to Establish Innocence After Trial’(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刊, 1996년)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만큼 오판의 다양한 원인들이 게재되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일견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증거들의 교차오염에 대한 중요한 실례가 된다는 점이다. 아래에서는 주로 George Castelle 등의 분석을 토대로 위 사건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William은 대학을 나온 재능 있고 유망한 흑인 운동선수였다. 1984년 12월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William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한 젊은 여성이 귀가 길에 그녀의 집 부근에서 강간을 당하였다. 범행은 야간에 등 뒤에서 행해졌고 피해자는 범행 중, 그리고 범행 후 범인이 현장을 떠날 때 근처 창문에서 새어나온 빛을 배경으로 범인의 옆모습을 잠시 보았을 뿐이다.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정액이 검출되었고 이는 Fred Zain이 혈청분석파트 책임자로 일하는 주 경찰 감식실에 보내졌다. 재판에서 검사가 제시한 주요한 증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검출된 정액의 유전적인 표지가 William의 것과 일치하고, 이는 전체 인구 중 5.9%에 해당한다는 Fred Zain의 증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William을 범인으로 지목한 증언이었다.

라인업을 실시한 경찰관은 피해자가 라인업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바로 피고인에게 시선이 고정되었고, 이어 피고인을 지목하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바로 저 남자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고 증언했다.

William은 범죄 발생 당시 여자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주장하였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여자 친구의 증언뿐이었다. 1987년 10월18일 William은 2급 강간죄에 대한 유죄평결에 따라 10년에서 20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1993년 주 대법원은 Fred Zain의 증언이 있은 모든 사건들에 대하여 특별조사를 명하였다. 조사 결과 Fred Zain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검사결과에 대하여 거짓으로 증언한 다수의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William 사건의 증거물인 정액 샘플에 대하여도 DNA검사가 실시되었는데, 증거물에서 추출한 DNA가 William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검사의 신청에 따라 DNA를 증폭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재검이 실시되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William이 석방된 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경찰기록이 조사되었는데, 법정에서의 증언과는 달리 피해자는 1985년 3월4일 처음 실시된 사진라인업에서는 William을 범인에서 배제하였다.

당시 피해자는 William을 알고 있었고,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나중에 실물라인업에서 피해자는 경찰관의 증언처럼 처음부터 바로 William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 아니라 라인업에 선 사람들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나중에는 한 사람씩 앞으로 다가서게 하여, 그리고 뒷모습까지 찬찬히 살펴 본 다음에야 비로소 William을 지목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증거는 경찰이 개시(開示)하지 아니한 채 숨겼기 때문에 형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에게 제시되지 않았다.

처음 사진라인업에서 William을 범인에서 배제한 피해자가 나중에 실물라인업과 법정에서 William이 범인이라고 진술을 바꾸게 된 원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George Castelle 등은 잘못된 정보가 증인의 기억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피해자가 William의 이름과 사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기억에 변형이 일어나 나중에 법정에서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술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1985년 3월 하순에 William은 고등학교 레슬링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고, 그의 사진은 TV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해 6월에 경찰은 피해자에게 William의 고등학교 앨범을 사진 아래 이름을 가린 채 보여 주었는데, 이때 피해자는 처음으로 William을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William의 사진들이 반복하여 피해자에게 노출되자, 야간에 잠깐 보았을 뿐인 범인의 얼굴에 대한 흐릿한 기억 속에 William이 대신 들어서게 되었을 수 있다. 피해자의 바뀐 생각은 감식결과 범인의 정액이 윌리엄의 것과 일치한다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서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실험한 바에 의하더라도 라인업에서 누군가를 지목한 사람들은 우연히 그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주어지면 자신들의 기억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William Harris 사건은 다른 많은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보가 개시의무에 반하여 감춰졌음을 보여준다. 과학수사증거에 의문을 던지는 중요한 정보도 마찬가지로 숨겨졌다. Fred Zain을 보조하던 직원들은 Zain이 거의 100건에 달하는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 사실을 감독책임자에게 보고하였으나, 그 후로도 거의 10년간 이러한 사실은 은폐되었고, 그 동안에도 Zain은 강간 및 살인사건의 재판에서 계속 증언을 하였다.

교차오염은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과학수사에서 어떤 검사결과가 애매모호하게 나왔더라도, 검사자에게 목격자가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는 정보가 제공된다면 그로서는 자신의 실험결과가 확실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검사자가 자신을 수사팀의 일원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더 중립적이지 못하게 되고, 이에 따라 본래 중립적이어야 할 과학적 분석결과가 편견에 찬 비과학적인 증거로 전락될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Fred Zain 사건이다.

평범한 증인이 과학적 증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과학적 증거는 평범한 증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William Harris 사건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용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였다거나 자백하였다는 등의 정보는 다른 증인들의 인식이나 견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William Harris 사건에서 범인의 신장이나 연령, 입고 있던 옷들이 William과 달랐다는 기억은 증인의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리걸에듀